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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이다

<128> 자이이타(自利利他)의 원리

전 연세대 교수

감염병 예방 위해 착용하는 마스크

나를 위하는 동시에 타인에도 이득

리더는 이기심을 이타적으로 활용

조직에 도움되는 선순환 구축해야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일이다. 세미나 시간에 화두가 하나 던져진다. “인간 행동의 근본 동기는 이기심인가 아니면 이타심인가.” 마치 선승들이 선문답하듯이 치열한 토론이 이어진다. 결국 결론 없이 다들 지쳐갈 무렵 교수님이 한 말씀 하신다. 여기 두 이타적인 사람, A와 B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고 가정하자. 막대기처럼 길쭉한 빨간 등이 장착된 모자를 쓰고 있다. 기분이 좋을 때마다 한 단계씩 빨간불이 켜지게 돼 있다. A 모자에 1단계 빨간불이 들어온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걸 바라보는 B 모자에도 1단계 불이 들어온다. 왜냐고. 이타적인 사람은 상대방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니까. 그랬더니 그것을 본 A 모자에 2단계 불이 들어온다. 또 왜냐고. B가 기쁘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불이 계속 들어올까. 마치 영구운동이 불가능한 것처럼 어느 시점에는 불이 멈출 것이다. 교수님 말씀의 핵심은 이타심이 인간행동에 약간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 지인을 만나러 급히 집을 나섰다. 늘 그렇듯이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스크를 안 쓴 거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가까운 전철역에서 내려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살까. 이미 약속에 늦을 것 같은 시간이라 그러면 점심 약속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그냥 가기로 했다. 대신 말을 한마디도 안 하기로 작심했다. 전화가 와도 안 받는다. 끄고 나서 문자로 상황을 알리기로 한다. 마스크를 안 쓰고 말을 안 하면 나는 위험에 노출되지만 적어도 남에게 민폐는 끼치지 않는다. 앞으로 전철 안에서 마스크 안 쓴 사람을 봐도 안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마스크 안 쓰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서양 사람들은 마스크 쓰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싫어하는 것 같다. 총 들고 시위하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조금 이해가 안 된다. 우리라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나도 피해 보기 싫으니까 쓰는 거다. 요즘 나는 우리 동네에서 볼 일 있어 다닐 때는 가급적 자전거를 이용한다. 집에서 한강까지 왕복 2시간 반을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도 하고 경치 구경도 하고 코로나바이러스도 멀리하고 일석삼조다. 자전거 타면서 마스크 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약간 ‘오버한다’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적당히 마스크를 둘 곳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는 관찰 포인트 하나. 마스크는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있을 때 쓰는 거고 오픈된 공간으로 나오면 벗는 거다. 그런데 반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당에 들어가서 밥 먹을 때는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컷 떠든다. 그러다가 계산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시 마스크를 쓴다. 이건 남보라고 마스크 쓰는 것밖에 안 된다.

한 병원에서 의료진에게 화장실 갔을 때 손 씻기를 의무화했다.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벽에 경고문을 붙였다. ‘적발 시 처벌하겠음.’ 그래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CCTV를 화장실에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장은 경고문 대신에 호소문을 붙였다. ‘여러분이 손을 열심히 씻으면 환자의 병을 더 잘 낫게 할 수 있습니다.’ 명령은 거부하지만 호소에는 설득된다.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타심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 제자가 찾아와서 회사 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해달란다. 두 가지만 말해줬다. 하나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할 때 남의 돈으로 내 일한다고 생각해라”, 또 하나는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하라”. 시켜서 하면 고통이고, 하고 싶어서 하면 즐겁다. 진정한 리더는 이기심을 이타적으로 활용하고 이타심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선순환을 구축할 줄 안다. 이것이 자이이타(自利利他·남을 이롭게 하면 자신도 저절로 이롭게 된다)의 정신이다. 마스크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쓰는 것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써야 한다. 나를 위하는 행동이 남을 위하는 행동도 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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