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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日 외쳤지만…올 첨단 장비 수입 78% 급증

일본산 반도체 장비·전자회로 등

7월까지 2조 221억어치 사들여

재계 "고품질 제품 대체 어려워"

올해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장비 규모가 지난해보다 8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정부는 대일(對日)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품질 수준이 높은 일본 제품을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한일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터라 재계의 수급차질 우려도 여전하다.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일본에서 수입된 ‘반도체 장비 및 전자 집적회로 제조용 기계’는 17억달러(약 2조221억원)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7.2% 증가했다. ‘프로세서와 컨트롤러’ ‘감광성 반도체 디바이스’ 수입도 같은 기간 각각 8.6%, 3.7% 늘었다. 올 들어 대일 수입은 지난해보다 약 10% 줄었지만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 수입은 오히려 급증한 것이다.

반도체 장비 수입이 늘어난 것은 삼성전자가 올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5월 평택 2라인에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구축 계획을 밝힌 데 이어 다음달 3라인 착공에도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지난해 7월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하면서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장비 등의 수급처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셈이다. 실제 전체 반도체 공정용 장비 수입에서 일본 제품의 비중은 25.7%로 지난해(27.4%)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대응해 정부와 기업들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경쟁력 강화에 나섰지만 산업현장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정부의 지원에도 소부장 업체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을 맞추기 어려운데다 납품업체 변경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수요업체들도 좀처럼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소부장을 추진하되 일본 총리 교체 시기를 맞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이 늘어난 것은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업체들이 글로벌 업체들의 수요와 품질을 단기간에 맞추기 쉽지 않은데다 여전히 생산상황도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소부장 자립을 위해 내놓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성능평가지원사업’ 실적을 보면 올 6월 기준 130개 기업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수요업체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은 기업은 올 6월 기준 19곳에 그쳤다. 어렵사리 인증을 받고도 수요기업과 납품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3곳에 불과하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소부장 경쟁력도 지난해보다 소폭 올라갔을 뿐이다. 업계에서는 품질에 민감한 반도체 공정에 국내 업체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이제 막 임상 1상 시험을 통과한 백신을 사람한테 바로 주입하는 격”이라는 평가다. 다만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8월 기준으로 품질인증을 받은 업체가 105건에 달해 사업 계약 건수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대체 수입처를 발굴하는 일도 여의치 않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미국·유럽·일본에서 첨단 장비를 들여오는데 나라마다 전문 영역이 다르다”며 “타국 제품으로 바꾸기 쉽지 않을뿐더러 바꾼다 한들 기존 수준의 효율을 낼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장비 의존은 인력 의존으로 이어진다. 관련 장비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탓에 일본산 설비를 새로 들일 때면 제조업체의 엔지니어가 한국 사업장을 직접 찾아 설치한다. 반도체 장비 수요가 급증하던 지난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일본인 엔지니어에 대해서는 14일 자가격리를 면해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일본은 한국인을 향해 입국 문턱을 높여두고 있는데 우리만 빗장을 푸는 것은 상호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었다”면서도 “반도체 공장이 멈추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냐는 재계의 우려를 뿌리칠 수 없었다”고 했다.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수출 규제를 단행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반도체 공정 전반에 스며든 ‘일본 물’을 빼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두고 한일 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업계로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자국 수출 업체의 피해를 고려해서라도 일본이 당장 추가 수출 규제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업계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현실 자체가 부담인데다 일본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조치가 시행되면 수출 규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바이어 입장에선 리스크를 안고 있는 기업에 물량을 발주하길 꺼릴 수밖에 없다”며 “공급 계약을 단기로 체결하거나 한국과 엇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반도체 공급업체가 있다면 그쪽에 물량을 더 맡기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물러난다지만 자민당 내 누가 후임으로 온들 한국에 대한 강경 전선을 유지할 것”이라며 “일본과 ‘갈때까지 가보자’며 밀어붙이기보단 절충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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