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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칼럼] 비정규직 위한 정치적 해법은 없다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공정성논란·무기계약직 비대화 등

비정규직 정치적 해법 한계 부딪혀

디지털경제선 더 늘수밖에 없는 구조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해소에 힘써야





비정규직을 정치의 중심 의제로 불러들인 첫 정치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지지를 호소했고 취임과 동시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매진했다. 성과도 컸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보호법 제정 등 온갖 노력을 다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은 이런 정치적 해법의 꼭짓점에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제로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상품이기는 하지만 오래 기억될 치적이 되기는 어렵다. 3년 만에 20여만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그중 75%가 본사 직고용이라는 실적은 자랑할 만하지만 뚜렷한 한계도 드러냈다. 첫째, 공정성 시비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채용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인천국제공항공사나 서울교통공사 등 유수한 공공기관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문 대통령도 지난 19일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해법이 취업준비생들에게는 기회의 문을 닫는 것으로, 본사 정규직들에게는 채용의 공정성을 해치는 정치적 결정으로 보였다. 앞으로 이런 정규직 전환은 공공부문에서조차 쉽지 않을 것이고 민간으로의 확산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둘째, 무기계약직의 비대화다. 2004년 이후 누적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공무직)은 40여만명에 육박하지만 대부분 인사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이들은 본사 직원이지만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트랙을 도는 이질적 집단이 돼 있다. 이들을 위한 일관된 임금체계나 직급체계·경력관리 시스템은 없다. 4월부터 노사정 3자 구성의 공무직위원회에서 처우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해법이 마련될 턱이 없다. 조직 내 갈등의 불씨는 커지고 정규직과의 차별 시비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정치적으로 성공이었는지 모르나 경제적으로는 실패다. 이제 단칼의 정치적 해결보다 복잡하지만 근본적인 시장 친화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비정규직은 오히려 증가 추세다. 자회사 용역을 확대하거나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한 형태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증가하면서 비정규직 보호법의 약효도 떨어졌다. 디지털 경제로 갈수록 비정규 형태의 노동은 증가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비대면 서비스가 늘면서 영세자영업자들이 대거 비정규직 노동시장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이 그랬다. 1988년 25%에 육박하던 자영업자 비중이 5년 만에 15% 정도로 줄고 비정규직은 20%에서 30%로 점프했다. 한국도 그러기가 쉽다.

이제 비정규직을 정부 정책이나 법으로 줄일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나의 길은 정부가 비정규직을 위한 인적자원관리와 사회안전망에 투자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기업 인사관리에서 열외로 취급되기 때문에 능력개발이나 임금인상의 기회가 별로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인력의 질과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거시적으로는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다. 비정규직의 남용은 개인이나 기업, 국민경제 모두에 손해다. 비정규직의 직종별 경력관리 시스템과 직무형 임금체계를 잘 만들어주고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없애면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하는 셈이다. 공공기관이나 업종협회를 통해 직종별로 표준적인 직무정보와 임금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능과 경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깔아주면 어떨까.

이런 접근법의 좋은 사례로는 고용노동부가 오는 11월 시행 예정인 건설 일용직의 고용개선 방안이 있다. 건설 일용직들의 경력과 자격·교육훈련 등에 관한 데이터를 전자카드로 취합하고 이를 기초로 통합적인 경력관리 시스템과 기능등급별 적정임금 체계를 만드는 방안이다. 이는 기업 밖에 건설 일용직을 위한 통합 인사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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