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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적' 박정민 "가족에 못한 말···대신 해주는 영화 같아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떤 캐릭터를 입혀도 맞춤옷을 입은 듯 딱 맞아 떨어졌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천재 피아니스트도, 가출 청소년도, 성 소수자까지 비슷한 캐릭터도 없었다. 장르 불문, 캐릭터 불문, 독보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그가 이번에는 목과 어깨에 힘을 빼고 이야기에 온전히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강물에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그 흐름과 하나가 됐다. 이야기는 빛났고, 관객의 눈엔 눈물방울이 맺혔다.

15일 개봉을 앞둔 영화 ‘기적’은 1988년도에 지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 ‘양원역’의 실제 설립 이야기에 상상력을 입힌 작품이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인생 목표인 준경(박정민)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원칙주의자 아버지 태윤(이성민)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사연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준경은 간이역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수학경시대회, 퀴즈대회 등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모습 뒤에는 눈물과 공감어린 사연이 숨어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박정민도 많이 울었다.

“준경이 갖고 있는 마음들, 준경이 처해 있는 상황들은 사실 많은 분들께서 자기 자신에 대입해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저는 비록 기차역을 세우려고 노력해본 적은 없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한 적도 있고,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죠. 꿈을 이루기 위해선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에요. (준경이) 장애물에 다다랐을 때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포기를 해야 하는가’ 등의 고민들에 참 마음이 많이 움직였고 그렇게 느낀 말 못할 감정들, 표현하기 힘든 마음들이 예쁘게 담겨있어 시나리오가 좋았던 것 같아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30대가 훌쩍 넘은 박정민에게 고등학생 역할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부담은 있었지만 그냥 ‘하면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시는 분들이 인정해주실 수 있을까?’, ‘과연 영화를 보면서 박정민이라는 배우와 준경을 매치시키는 데 얼마나 걸리실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감독님은 여러 대안을 제시해주셨죠. 30대 준경으로 시작해 고등학생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지, 마지막에 준경이 나이를 먹어서 등장하는 것은 어떨지 등 사소한 대안들을 많이 제시해주셨어요. 하지만 결국 감독님과 합의를 이뤘던 것은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 시나리오대로 그냥 가자는 거였어요. 같은 반 친구들이 진짜 고등학생들이 아니면 관객분들도 납득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장르를 불문하고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한 박정민의 이면에는 노력이 있었다. ‘기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상북도 봉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 속 준경의 사투리 연기를 위해 “촬영 전 여러 방법을 써봤다”며 사투리 연기에 대한 노력을 회상, 여러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을 밝혔다.

“사투리 선생님이 항상 현장에 있으셨어요. 또 촬영 전에는 여러 방법을 써봤어요. 영주에 있는 문화원에서 오래 사셨던 분들에게 제 사투리를 들려드리며 잘못된 것은 없는지 검수도 받았고, 해마다 열리는 경북 안동 사투리 경연 대회에서 1등을 하신 분이 계신다는 대구를 찾아 부탁도 드렸어요. 또 그분들이 추천해 주신, 경북 사투리라고 치면 나오지 않는 영상들도 찾아봤어요.”

간이역 만들기에 진심인 준경은 그 목표만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박정민은 그런 준경의 성격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전하며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했다.

“고집스러운 부분에서는 싱크로율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무모한 면도 조금 닮은 것 같고요. 그런데 전 준경이보단 유순해요. 좀 순한 스타일이에요.(웃음)”



“실제 고등학생 땐 굉장히 과도기에 가까운 학생이었어요. 사춘기가 늦게 왔다고 해야 할까요. 중학생 때까진 반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공부 잘하는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그런 제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나도 인기가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고등학교는 동네에 있던 학교가 아니라서 중학교 때의 제 모습을 아는 동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턴 제가 좀 외향적으로 변했죠. 축제에 나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추고 랩하고, 영화도 찍어 상영하고. 공부 빼고 학교 일은 다 챙겼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만 하던 모범생은 명문고를 졸업,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런 그가 돌연 자퇴서를 내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일화는 유명하다. 처음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는 한예종 입학 이후 친구 별장에서 우연히 차이무 극단의 박원상 배우를 만났다. 이를 계기로 극단에서 스태프로 활동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골든타임’을 통해 이성민과도 짧은 인연이 있었던 그는 이번엔 비교적 긴 호흡을 맞추게 된 것에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당시 제가 짧게 있었고, 막내 스태프였다 보니 극단 차이무 선배님들 중에 저를 잘 모르는 선배들도 많으세요. 그런데 성민 선배는 그래도 저를 기억해주는 선배님이셨어요. 차이무 극단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꼬마가 드라마 ‘골든타임’에 잠깐 나가게 돼서 응급처치하는 걸 배워야 하는 날이 있었어요. 그 때 사실 저는 좀 뻘줌했어요. ‘나를 잊으셨을 텐데’, ‘기억을 못하실 텐데’라는 마음에 가서 우물쭈물 기다리고 있는데 이선균, 이성민 선배님이 모두 제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기억을 못 하실 수도 있지만 저한텐 엄청 큰 사건이었어요. ‘큰 선배님들께서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불러주시지’하는 굉장히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는데, 이번에 아버지, 아들로 만나게 돼서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나눠 뜻깊었어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적’ 속 준경은 무모해 보이는 간이역 짓기에 도전해 기적을 선사한다. 또 마음속 진짜 꿈을 찾는 그의 모습은 작품 속 의미를 배가시킨다. 준경의 기적을 그리는 영화인만큼 박정민 또한 영화를 만나고 변한 모습이 있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뭔가를 혼자 해내야 되는 성격이었어요. 남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이 사실 유쾌하지 않았어요. ‘내가 잘해야지 남이 도와줘서 잘하면 무슨 소용이야’라는 강박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 ‘도움이라는 건 기꺼이 받아도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으로 좀 변했어요. 제가 살고 있던 동굴에서 한발자국 정도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 세계가 깊은 사람인데 그런 것을 좀 벗을 수 있게 만들어준 이 영화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요.”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박정민은 ‘동주’, ‘시동’,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계속해왔다. 코로나19 시기에도 그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공개도 앞둔 그는 자신의 원동력으로 ‘재미’와 ‘사람’을 꼽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뭔가를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재밌는 것 같아요. 그게 원동력이라면 원동력이겠죠. 감사할 따름이에요. 저 같은 사람에게 계속 제안을 해주시고 캐스팅을 해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해서 그 마음으로 열심히 합니다”

‘기적’은 코로나19로 한차례 개봉이 연기된 바 있다. 그 덕분에 적기에 개봉 소식을 알렸다. 한 소년의 기적 같을 일뿐만 아니라 가족애를 그리는 이 작품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추석 연휴 직전에 개봉한다. 박정민은 추석에 ‘기적’을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가족들이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 영화가 대신해 준다”고 설명했다.

“사실 저도 가족들과 영화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제가 만약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면 ‘기적’같은 영화를 보고 싶을 것 같아요. 보고 할 얘기도 많아질 것 같아요. 엄마, 아버지, 동생이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 영화가 대신해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아도 공유가 되는 그들 사이의 감정들을, 그런 순간들을 선물해드리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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