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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클 누구의 소행인가?

WHO MAY MADE MYSTERY CIRCLE?

하룻밤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하학적 문양이 논과 밭, 초원에 생겼다. 도무지 사람이 한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 흔적을 우리는 '미스터리 서클(mystery circle)'이라 부른다.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는 미스터리 서클을 놓고 혹자는 외계인의 소행, UFO의 흔적이라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짓궂은 인간들의 장난이라 말한다.

과연 진실은?


박소란 과학전문기자 psr@sed.co.kr

외계인이 보낸 싸인?
지난 2008년 6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주변의 한 갈대밭에서 지름 200m가 넘는 미스터리 서클이 발견됐다. 국내에서 미스터리 서클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 소식은 9시 뉴스로도 전해졌다.

한 무인 항공 촬영가에 의해 발견된 이 서클은 육안으로 봐도 엄청난 크기에 태양계를 연상케 하는 복잡다단한 무늬로 세간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외계인과 UFO에 관심이 많은 오컬트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원의 형태가 완벽하고 주변 잡풀이 쓰러진 라인도 칼로 도려낸 듯 선명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대중적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켰다. 어쩌면 외계인이 한국인들에게 보낸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식의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한달여가 흐른 뒤 의문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풀렸다. 이 미스터리 서클은 다름 아닌 가수 서태지가 새 음반의 콘셉트에 맞춰 진행한 프로모션의 일환이었던 것. 이후 서태지 측은 "지금껏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팬들과 함께 풀면서 새 음반을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이벤트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자작극(?)은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1년간 기획하고 2개월 동안 만들었다는 점도 밝혔다.

이 사건은 서태지 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줬다. 하지만 많은 미스터리 신봉자들은 맥이 빠졌다. 외계인의 흔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 가수의 퍼포먼스였다니 그럴 만도 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보고된 다른 미스터리 서클들도 이처럼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들의 장난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치부하고 지나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는 구석이 많다.

미스터리 서클은 식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누워 형성된 커다란 원형 문양을 의미한다. 대개 옥수수밭, 보리밭 같은 곡물 밭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크롭 서클(crop circle)'이라고도 불린다. 기록상 최초의 미스터리 서클은 1946년 영국 남서부 솔즈베리의 페퍼박스힐 지역에 나타난 두 개의 원형이다. 이후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를 비롯한 전세계 논밭에서 이와 유사한 형상이 잇따라 발견됐다.

1970~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영국 런던 남서쪽 스톤헨지, 에이브버리, 글레스톤베리 일대의 평원이 주요 거점이 됐다. 그 숫자도 한 해 기준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늘었고 형태와 크기 역시 점차 다양해졌다.











미스터리가 예술로!
미스터리 서클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을 넘어, 또 다른 미술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화가 안드레스 아마도르가 대표적이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막대기나 갈고리로 음영을 만드는 그는 "미스터리 서클에서 영감을 받고 모래사장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때문인지 꽃, 글자 등을 그리고 있는 지금과 달리 초기에는 기하학적인 패턴을 많이 그렸다.

또 다른 사례로 프랑스 몽블랑의 한 스키리조트 설원에 축구장 규모의 기하학적 패턴을 형상화시켜 주목 받은 스노우 아티스트 사이먼 벡이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지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야외 스포츠인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에 빗대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침반과 지도를 통해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자연적 징후들
이와 관련 작년 8월 중국에서도 최초의 미스터리 서클이 출현했다. 칭하이성 더링하시 주변 사막에서 발견된 이 서클은 직경이 자그마치 2㎞가 넘는다. 미스터리 서클의 직경이 통상 40~200m 정도라는 점에서 스케일이 남다른 경우였다.

모양도 매우 정교했는데 기계 등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작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타 미스터리 서클이 그렇듯, 이것도 단 하룻밤 사이에 하늘에서 떨어지듯 만들어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계인의 작품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미스터리 서클을 외계인의 메시지로 해석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는 곡물의 줄기가 넘어지면서 생긴 마디 부분이 살짝 부어 있다고 알려진 점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을 강제로 굽히면 꺾여서 훼손되기 마련이지만 미스터리 서클의 식물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들을 현미경으로 분석했더니 내부의 세포벽이 연장돼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어쨌든 이런 독특한 마디 구조로 인해 해당 곡물들은 90도 이상 꺾어진 채로도 시들지 않고 추수 때까지 정상적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한다. 상식적, 아니 과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인 탓에 오컬트 신봉자들은 UFO가 바이오에너지를 투사해 마디를 만들었거나 마디 사이의 간격을 인공적으로 넓힌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미스터리 서클은 식물의 마디 부분이 얼개처럼 서로 얽혀 한 방향으로 누워 있다. 단순히 꺾여 쓰러져 있는 형태와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대규모 장비와 인원이 동원되지 않는 이상 개인 또는 소수의 사람이 이렇게 하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두 번째 근거는 미스터리 서클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뒤 컴퓨터로 분석했을 때 마치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그린 듯 오차가 거의 없다는 부분이다. 사실상 완벽에 가까운 정교한 기하학 문양을 하고 있으며 이는 기계장치나 사람의 손으로는 흉내 내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미스터리 서클 주변의 토양이다. 여기서 의문의 철분이 다량 검출된다.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 미스터리 서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 같은 몇 가지 사안들은 미스터리 서클이 UFO의 착륙 흔적, 혹은 외계인이 남긴 메시지라는 설에 무게를 더한다. 만의 하나라도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서클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영화 '싸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의미를 풀어갈수록 예기치 못한 엄청난 결과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테리 서클의 곡물들은 90도 이상 꺾어진 채로도 시들지 않고 추수 때까지 정상적으로 자라난다고 알려져 있다.

미스터리 서클 메이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계인 메시지 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앞선 서태지의 사례처럼 '인간 조작설'에 타당성을 두고 있는 부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먼저 미스터리 서클을 이루는 식물의 마디 부분이 부어있는 형태며 계속 생장한다는 말은 애당초 거짓이다. 어느 미스터리 서클에서도 그런 식물이 발견된 바 없다. 실제로는 대다수 줄기들이 뜯겨져 있거나 꺾여 있다. 결국 마디와 관련한 의문은 극소수의 멀쩡한 줄기를 오컬트 맹신자들이 자신의 논리에 유리하게 확대 해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미스터리 서클은 불과 하룻밤 사이, 순식간에 형성되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다는 이야기 또한 꾸며진 것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집앞 농장에 의문의 서클이 생겼다"와 같은 목격담은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간혹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런 목격담 역시 조사 결과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 과학분야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은 1990년대 들어 UFO와 외계인 붐이 일면서 그와 관계된 담론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미스터리 전문가들이 어쩌다 생겨난 문양을 의도적으로 외계인과 연결시켰다고 진단한다. 여기에 호사가들의 갖가지 추측이 더해지면서 미스터리 서클이 오늘날의 입지를 굳히게 됐다는 추정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미스터리 서클 전문 제작팀을 자청하는 영국의 '서클메어커스(Circlemakers)'를 들 수 있다. 이 팀은 영국에서 발견된 많은 미스터리 서클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걸작이라 주장한다. 1960년대에 언론을 통해 처음 미스터리 서클의 존재를 접하게 된 이후 재미삼아 영국과 호주 등지에 수십 개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

이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몇 가지 제작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현장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얇은 봉을 이용, 장대높이뛰기를 하듯이 이동한다던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오직 달빛에만 의지해 작업을 한다는 것 등이다. 1990년대 초에 작업했던 한 미스터리 서클은 밝은 보름달 때문에 나무 그림자 뒤에 숨어서 작업하기도 했었다고.

그런데 이들의 말이 설령 진실이더라도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전 세계의 미스터리 서클 메이커들을 이 세계로 끌어들인 초기의 미스터리 서클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한 미스터리 서클 연구자는 자체 조사를 통해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전 세계의 미스터리 서클 중 단 10%만이 괴짜 지구인의 솜씨며 90%는 여전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켈트족과 13일의 금요일
13일의 금요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하다. 켈트족의 전설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여러 나라를 정복한 켈트족의 한 왕은 어느 날 12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돌아보니 왕을 따르던 장군이 모두 13명이었다는 것. 왕이 13번째 장군의 이름을 묻자 그는 자신의 이름이 '죽음'이라 답했고 불과 며칠 뒤 왕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13번째가 죽음을 의미하면서 13이라는 숫자가 불길함을 상징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 세계 미스터리 서클 중 단 10%만이 괴짜 지구인의 솜씨며 90%는 여전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범인은 회오리바람?
항간에서는 미스터리 서클의 근원을 외계인과 사람이 아닌 자연현상으로 풀어낸다. 이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발표한 가설에 근거한다.가령 기상학자들은 회오리바람 때문에 식물들이 시계방향으로 누웠다는 '회오리 바람설'을 제기하고, 물리학자들은 땅 속 자기장의 영향을 받았다는 '지자기설'을 피력한다.

특히 미스터리 서클 관련 연구가 비교적 활발히 전개됐던 일본에서는 다양한 담론이 오갔다. 이중 가장 신빙성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1990년대 초 니혼대학의 한 교수가 유체역학과 전자기학 방정식을 연결시켜 제시한 '소용돌이설'이다.

영국에서 발생한 미스터리 서클을 소용돌이설로 해석해 보자. 이는 영국 남동쪽과 프랑스 북서쪽 사이에 위치한 도버해협을 발원지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도버해협에서 불어온 바람이 언덕을 넘으면 많은 먼지와 티끌을 만난다. 그리고 공기의 교란에 의해 먼지와 티끌들이 서로 마찰을 일으켜 전기적 성질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이 경우 폭 10m 정도의 소용돌이가 탄생하게 되고, 소용돌이가 지면과 대기 사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1m당 60V 정도의 전압에 이끌려 낙하하면 논과 밭의 식물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가설에 따르면 맑은 날과 흐린 날에는 지표면의 전기적 성질이 각각 양(+)과 음(-)으로 달라져 맑은 날에는 좌회전, 흐린 날에는 우회전의 서클이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정확히 증명되지 않은 상태다. 고로 이 가설은 글자 그대로 가설로 남아 있다.

이외에 학자들이 정전기설, 중력설, 조류설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설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오랜 기간에 걸친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서클은 과학적으로 명확히 정체를 파헤치지 못한 존재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신비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미스터리 서클이 고대 유럽의 유목민족인 켈트족의 상징과 흡사하다는 점에 착안, 새로운 해석을 꾀하고 있다. 이는 많은 미스터리 서클들이 13일의 금요일에 자주 발견되며 스톤헨지 등 성스러운 유적지에 형성됐다는 점 등과도 유관하다. 그러나 정확히 켈트족과 서클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름 자체에서도 드러나듯 미스터리 서클은 적어도 지금은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외계인의 소행이든, 지구인의 장난이든, 아니면 또 하나의 신비로운 자연현상이든 상관없이 미스터리 서클은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볼거리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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