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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돈-은행-사람'의 인문학적 고찰

금융오디세이
차현진 지음/ 인물과 사상사/ 1만5,000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은 ‘냉혹하게 이익만 추구하는’ 탐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기업금융은 물론 소매금융에서 선보였던 각종 금융기법은 ‘약탈’을 위해 화려하게 포장된 도구로만 평가됐다. 요소 요소에 돈을 공급하고, 위험을 분산하고, 유동성을 만들어 경기를 조율하는 금융의 긍정적 역할은 뇌리에서 잊혀졌다. 따뜻한 금융 역시 결국은 탐욕이라는 금융의 본질을 가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순간이다. 금융은 한때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대체할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기도 했다. 금융 등 고급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플랜도 세웠다. 하지만 이제는 뒤로 밀렸다. 오죽하면 미국 뉴욕의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됐을까.

이런 와중에 금융을 통사적으로 풀어놓은 매력적인 책 한 권이 나왔다. 경제학과 인문학의 보물창고라는 평가도 받는다. ‘숫자 없는 경제학’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저자는 미국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써나간 칼럼에 살을 붙여 ‘금융오디세이’를 내놨다. 돈의 탄생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은행을 둘러싼 사건과 인물들을 소재로 한 대항해(Odyssey)다.

책은 돈의 본질부터 묻는다. 저자가 직설적으로 묻지 않고 적절한 인용을 통해 접근한다는 게 이 책의 매력. 이런 식이다. 『“아빠, 돈이 뭐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아버지 돔비는 잠시 뜸을 들였다. “돈이 뭐냐고, 폴? 지금 돈이 궁금하다는 거니?”…(중략)… 돔비의 머릿속에는 지급수단, 시중자금, 화폐가치, 주화, 지폐, 환율 등 수많은 단어가 지나갔다. 이 중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해서 한참 동안 아들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금화, 은화, 동전, 기니, 실링, 펜스…이런 것들이 돈이지. 너도 다 알고 있지 않니?”“그건 저도 알아요.” 아들 폴이 대답했다. “저는 그게 궁금한 게 아니고요. 아빠, 그래서 돈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는 거예요. 돈이 무엇을 하는 거지요?”』 (찰스 디킨스 <돔비 부자(父子)> 중에서 재인용) 저자는 돔비의 어린 아들 폴의 입을 통해 지금까지도 경제학자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를 예리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돈은 무엇인가. 그리고 은행은 어디서 어떤 이유로 탄생했고 중앙은행은 어떻게 돈을 발행하게 되었는가.

저자는 돈을 놓고 동양과 서양이 접근하는 철학의 차이, 대금업부터 중세의 징세도급인과 상인 그리고 지금의 은행이야기까지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러면서 법률가와 경제학자, 사기꾼과 은행가, 대통령과 은행원 등 돈과 은행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돈-은행-사람’으로 엮인 그림을 완성한 것인데, 시간순으로 사건을 배열했기 때문에 역사학과 경제학을 섞은 경제사학 서적에 가깝다. 서사적인 서술에 흥미가 떨어질 때쯤 저자는 유명인들의 숨겨진 일화를 하나씩 던져 다시 집중시킨다.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을 넘나드는 탁월한 능력이다.

저자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 비제도이사회 의장에 대한 색다른 평가를 내린 것도 주목할 부문. 그린스펀 전의장과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유대인 소년 헤르만 그린츠판의 삶을 비교하면서 그의 삶이 왜 비판 받아 마땅한지 결론 낸다. 2008년 그린스펀 전 의장이 하원 청문회에 참석해 모기지 시장 규제 실패의 책임을 묻자 사망한 그램릭 전 연준위원을 들먹이며 해명한 것에 대해 ‘역겨운 처신’이라고 표현하거나 ‘경제가 정치를 만나기 위해 앨런 그린스펀이 오히려 닉슨을 이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변덕스러움을 묘사하는 데 많은 분량을 썼는데, 그를 ‘케인스 경제학’으로서만 접했던 이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그의 진단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5월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일각에서는 압박에 밀렸다는 평가도 내린다. 자연스럽게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재차 불거지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저자는 물론 직설화법을 쓰지는 않았다. 대신 독자들에게 중앙은행의 시발, 그리고 역할이 어떤 과정을 통해 퇴색되고 흥망에 이르는지 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납득을 시킨다. 예컨대 이런 방식이다.

『1587년 베니스에서 지급결제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은행이 탄생했다. 이전의 민간 금융업자들과 달리 당국이 공식적으로 설립을 허가한, 인류 최초의 공공 은행이었다. 베니스는 국제무역의 중심지여서 상설 장터가 개설되어 있었다. 상거래나 선적과 관련한 결제 수요가 어느 곳보다 컸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베니스 당국은 상인들에게 돈(금)을 받아 예금 범위 내에서 은행권을 발행하는 은행을 세웠다. 대출이 금지된 채 오직 예금 받은 범위 내에서 은행권을 발행했던 이 은행은 독점 은행이었다. 그러나 베니스 정부도 결국은 대출이 필요했다. 그래서 1619년 독점 체제를 깨고 두 번째 은행을 허가했다. 그 은행은 이름이 ‘결제은행’이었지만 이름과 달리 결제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대출까지 담당했다. 1637년에 이르러서는 원래 있던 발권 전문 은행까지 흡수해버렸다. 이 은행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 대출을 점점 늘린 결과 상당 기간 고객의 예금 인출 요구를 수행하지 못하는 사태를 맞았다. 그 사이에 찬란하던 베니스의 상권이 기울어갔다. 이 은행도 1806년 문을 닫았다.…(중략)…발권은행이 수익성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함께.』(145~146쪽) 한국은행에 몸 담고 있는 저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의도된 돈의 타락(디베이스먼트)과 의도되지 않은 돈의 타락(가격혁명)을 모두 경험한 끝에 인류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반듯하면서도 따뜻한 철학을 가진 전문가들이 권력자들에게서 한걸음 떨어져 긴 안목으로 토론을 통해 돈의 가치를 결정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중앙은행제도에 담긴 이런 지혜를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고 부른다.” 물가안정을 중앙은행의 주요한 책무로 강조했다는 점에서 여타 한국은행 직원들과 비슷한 시각이다. 하지만 결론을 풀어내는 방식은 눈에 띈다. 역사 속에서 돈의 가치를 흔들었던 디베이스먼트와 가격혁명이 나타난 배경을 설파한다. 은연중에 돈이 왜 단순한 자산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돈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납득시키고 있다.

이 책은 경제학은 물론 금융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해도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다. 흥미로운 사례들과 다양한 구성으로 독자층을 넓혔다.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금융지식을 쌓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저자는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화폐 단위가 ‘원’으로 굳어진 배경을 설명하며 일침을 가한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분개하는 국민들이 일본식 명칭인 ‘원’이 화폐의 단위가 된데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면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알맞은, 누가 우리 돈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다오.”


새로운 디지털 시대

에릭 슈미트 지음/이진원 옮김/알키/2만원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의 회장인 에릭 슈미트의 첫 책. 이 책을 통해 그는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온라인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각 개인이 몸담은 계층과 사회가 디지털 기술로 모두 연결되면서 권력이 어떻게 재분배될지, 그 과정에서 새롭게 떠오를 분야가 무엇인지, 새롭게 닥칠 위험과 도전이 어떠할지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스마트한 선택들

롤프 도벨리 지음/엘보초 시몬 슈텔레 그림/두행숙 옮김/걷는나무/1만4,000원
무엇이 우리의 성공과 행복을 파괴 하는지. 52가지 생각의 오류들이 실려 있다. 오류들은 우리 일상과 깊이 관련된 것들이다. 때로는 심사숙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결정을 망칠 때가 있다. 사람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직관의 지혜를 차단하게 된다. 직관은 합리적인 생각과 종류가 다른 정보이다. 이 책은 최소한 우리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게 해주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라진 실패

신기주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화려한 성공 사례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무수히 실패를 반복해 왔다. 자세히 살펴보면 성공 신화는 곧 실패 신화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은 지난 5년 동안 한국 주요 기업들이 어떻게 실패해 왔고 왜 실패해 왔으며 무엇에 실패해 왔는지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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