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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타기의 달인 : 스파이더맨 로봇

The Amazing Spider-Bot

SF 영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는 최첨단 흡착식 장갑을 끼고 현존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의 외벽을 거침없이 타고 오른다. 물론 아직 그런 장갑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그런 기기를 목격하게 될 날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전망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날지 모른다.

고층 빌딩을 맨손으로 오르내리며 도시를 활보하는 스파이더맨.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의 특출한 능력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방사능에 피폭된 거미에게 목을 내줘야하는 위험천만한 경험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스파이더맨의 외벽타기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세상을 열어줄 주인공은 미 항공우주국(NASA)도, 막스플랑크 연구소도, 하버드대학이나 MIT의 연구팀도 아니다. 다름 아닌 한국신기술연구소 오장근 소장이다. 지난 6월초 오 소장이 손과 발에 장착한 채 외벽을 타고 오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흡착식 스파이더맨 로봇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것.

‘스파이더맨 1차 실험 로봇’으로 명명된 이 장치는 손에 끼우는 두 개의 흡착장치와 동력 및 흡착력을 제공하는 백팩으로 구성돼 있다. 중량 10㎏ 남짓한 백팩이 바로 스파이더맨 로봇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1차 실험 로봇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장치는 기술적 타당성을 실증하기 위한 프로토타입 모델로 아직 디자인이나 시스템이 투박스럽다. 그러나 성능은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영화 속 스파이더맨처럼 손끝에서 거미줄이 발사되지는 않지만 성인 한 명의 체중을 지탱하며 수직 외벽을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실험 로봇이 고작 두 달여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년 전 잠깐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해외사이트를 서핑하던 중 우연히 영국의 한 대학생팀이 만든 ‘개인용 진공 보조 등반장치(PVAC)’ 동영상을 접하게 됐어요. 국내에는 이와 유사한 백팩형 스파이더맨 로봇 장치가 없으니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대부분의 발명이 그렇듯 참고할 만한 자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동영상에 나타난 모습을 분석해서 필요한 기술들을 떠올리고, 구체화시켜 나갔다.





진공상태를 유지하라!

제작에 본격 착수한 오 소장은 가장 먼저 진공청소기를 몇 대 구입했다. PVAC의 심장 구실을 할 진공 모터를 얻기 위해서였다. 흡입 성능을 일일이 테스트 한 뒤 흡입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1,400~1,600W급 모터 두 기와 전원공급장치를 백팩에 장착했다.

“진공흡입기로 진공도를 쟀을 때 -20토르 이상이면 충분히 성인의 체중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총 두 대의 로봇을 제작했는데 각각 두 기의 모터가 -22~-27토르(㎝hg)의 진공압력을 발생시킵니다.”

백팩이 완성되자 오 소장은 착용자가 손을 끼울 흡착판 제작에 들어갔다. 일단 진공청소기의 호스 두 개를 떼어내 백팩 속 모터와 하나씩 연결했다. 그리고 다른 쪽 끝을 일정 크기의 구멍이 뚫린 흡착판 두 개와 연결했다. 모터가 공기를 빨아들이면 흡착판과 외벽 사이에 진공 상태가 형성, 흡착판이 외벽에 붙게되는 메커니즘이다.

이 흡착판의 중심부에는 구멍을 개폐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구멍이 열리면 진공에 의한 흡착력이 발생하고, 구멍을 막으면 흡착력이 해제된다. 이렇게 착용자는 흡착판의 구멍을 여닫으면서 양손을 번갈아 이동시켜 외벽을 오르내릴 수 있다.

“시스템적으로 PVAC 착용자가 벽을 오르면서 흡착판의 공기구멍을 직접 여닫아야 해요. 조금 수고스럽기는 해도 어려움은 없습니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단해요.”

흡착판의 소재는 베니아 합판이다. 벽과 밀착되는 면의 외곽에 발포성 고무를 덧대어 벽과의 흡착력을 높이고, 외부 공기의 유·출입을 막아 모터가 생성한 진공 상태가 유지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착용자가 발을 걸칠 수 있도록 각 흡착판과 끈으로 연결된 발판을 만들면서 모든 제작이 완료됐다.

“발판은 고강도 경량 소재인 두랄루민으로 제작했어요. 공중에서 두 발을 지탱하는 역할을 할 뿐 PVAC의 성능과는 직접적으로 무관합니다.”



샌드위치패널과 유리벽 정복

오 소장이 모터의 성능에 기반해 계산한 결과, 현재 제작된 2대의 실험 로봇은 약 80㎏의 중량을 지탱할 수 있다. 고도비만이 아니라면 웬만한 성인들은 떨어질 위험 없이 안전하게 이용이 가능한 셈이다. 당연히 흡입력(진공압력)이 지금의 -27토르보다 센 모터를 장착한다면 더 무거운 체중의 사람도 문제없다.

특히 오 소장에 의하면 모터의 성능이 강하면 표면이 고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외벽을 오르는 데도 유리하다. 오 소장의 경우 일반적인 벽과 샌드위치패널의 등반(?)에 성공한 상태다. 혹시 유리로 된 외벽은 어떨까? 유리벽은 일반 벽보다 표면이 훨씬 고르기 때문에 더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건물의 외벽 유리가 깨지지 않고 체중을 버텨준다는 가정이 성립돼야 하겠죠. 아직 실전에서 직접 실험해 본적이 없어 이 부분은 장담하기가 어렵네요.”

현재까지 오 소장은 자신의 스파이더맨 로봇을 활용해 약 5m 높이까지 올라가는 실험을 마쳤다. 유선으로 백팩의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그리고 혹시 모를 안전상의 이유로 그 이상은 올라가지 않았다. 향후 안전장치를 완비해 놓고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볼 계획이다.



“이론적으로 전기만 끊기지 않고 공급된다면 얼마든지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어요. 1m를 오르든, 20m를 오르든 필요로 하는 힘은 동일하기 때문이죠.”

향후 기술 고도화와 디자인 개선 등을 거쳐 이런 PVAC가 상용화된다면 레저용으로 매력적인 제품이 될 수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처럼 매력적인 취미 활동으로 각광 받을 개연성이 크다. 당연히 군사적 용도의 활용성도 상당히 높다.

오 소장은 앞으로 부품을 업그레이드 해서 총 3대의 실험 로봇을 추가 제작할 예정이다. 이들 2세대 PVAC를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흡착판의 내구성 증진을 위해 베니아 합판 대신 두랄루민 소재를 사용할 생각이며, 모터의 구동 소음을 줄이는 게 그것이다. 1~2개월 내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런데 굳이 백팩의 동력을 유선 전기로부터 얻어야만 하는 걸까. 배터리나 엔진을 이용할 수는 없을까.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착용자의 이동성도 한층 자유로워질 것이고, 꽁무니에 기다란 전선을 늘어뜨려야 하는 모양새만큼은 개선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모델들도 구상하고 있어요. 단지 엔진 방식의 경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부속장치가 필요해 연구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아직 갈 길은 남아있다. 그럼에도 이번 오 소장의 스파이더맨 1차 실험 로봇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분명히 유의미한 성과를 올렸다.

“진공의 힘이 이렇게 세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가장 만족스럽고, 가장 큰 성과라고 여깁니다. 과학꿈나무들에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도전 과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 만들 수 있니까요. 다들 한 번 도전해 보면 좋겠어요.”

오장근 소장이 운영하는 한국발명과학교실 사이트(cafe.daum.net/ojgzoa)에서 ‘스파이더맨 1차 실험 로봇’의 테스트 영상을 볼 수 있다.



[HOW IT WORKS]

백팩 [A]
두 개의 진공 모터와 전원 장치가 장착돼 있다. 중량은 총 6㎏이며, 모터를 통해 흡착판과 외벽 사이에 -22~-27토르의 진공 압력을 만들어낸다.

흡착판 (외측) [B]
소재는 베니아 합판이며 크기 35×45㎝, 중량은 약 1.5kg이다. 흡착판 중심부에 구멍을 여닫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구멍을 닫아 진공 상태를 해제한 뒤 손을 다음 위치로 옮긴 다음 다시 구멍을 열어 외벽에 흡착하는 방식으로 이동한다.

흡착판 (내측) [C]
외벽과 맞닿는 흡착판 내측면의 가장자리에 발포성 고무를 덧대어 마감했다. 발포성 고무는 사람의 살갗처럼 섬세해 외벽과의 흡착력을 높여주며, 흡착판과 외벽 사이의 밀폐력을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발판 [D]
고강도 경량 소재인 두랄루민으로 제작했다. 공중에서 착용자의 두 발을 지탱하는데 활용된다.



[INVENTOR] 첨단과학계의 ‘마이더스의 손’

오장근 소장은 첨단과학 분야에서 시쳇말로 ‘아시는 사장님은 다 아시는’ 유명 인사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혁신적 발명품이 80여종에 이르며, 그중 30여종의 발명품 앞에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1987년 국내 최초 패러비행기를 시작으로 에어보트, 호버크라프트, 태양전지 자동차, 태양전지 보트, 태양전지 비행기, 위그선 등을 개발했으며 탈것 이외에도 2족 및 4족 보행 로봇, 로봇 물고기, 촬영용 바이오 인공 눈 등이 오 소장의 포트폴리오에 들어있다. 대한민국 발명계의 초고수이자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공군사관학교가 개발한 국내 최초의 인간동력항공기(HPA) ‘스카이러너(Sky Runner)’ 또한 오 소장이 공군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동체의 제작을 맡았다. 스카이러너는 조종사가 페달을 밟아 발생시킨 약 0.3마력의 동력을 프로펠러로 전달해 비행하는 글라이더로서, 2009년 9월 조종사 한 명을 태운 채 1.5m 정도의 고도에서 약 100m의 비행에 성공했다.

“스카이러너는 100% 국내 기술과 자재를 사용했어요. 항공기의 거의 모든 부분을 수작업으로 제작한 하나의 작품이죠.”

개인용 진공 보조 등반장치(PVAC) Personal Vacuum Assisted Climber
토르 (torr) 압력 단위. 대기압 하에서 길이 1m의 유리 시험관에 수은을 채우고, 그 시험관을 수은이 들어 있는 용기에 거꾸로 세우면 시험관 속 수은의 높이는 항상 76㎝가 된다. 그래서 1기압은 76토르(㎝hg)다. 즉 -20토르는 높이 76㎝의 수은 기둥을 56㎝까지 낮출 수 있는 흡입력(진공 압력)을 뜻한다.
두랄루민 (Duralumin) 구리, 마그네슘 등의 원소를 알루미늄에 첨가한 고강도 경량 알루미늄 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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