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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가 주는 교훈

FORTUNE’S EXPERT | 서울대 인문학 강좌 지상중계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재계에서도 창조경제를 달성하고 기업 역량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인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국내 최고 지성을 자랑하는 서울대학교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을 직접 청강하고 이를 요약·소개하는 코너를 만든 이유다. 첫 번째 주제는 배영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전하는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는 고전에 속한다. 서구 문명과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저서다. 200년이 지난 요즘에도 자주 거론된다. 미국 민주주의를 보며 한국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정치에는 리더십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 문화가 과거 권위 중심에서 창의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업도 정치처럼 민주적 문화가 절실하다.

책이 처음 나온 건 1835~1840년이었다. 처음에 2권으로 출간됐다. 미국문명과 근대정치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이었다. 1830년대 서양 세계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미국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은 과도기였다. 토크빌은 미국 사회를 관찰하며 민주주의가 대세가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토크빌은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 혁명이 필연적이며 때문에 새로운 정치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서양의 정치적 변화를 관찰하고 대처 방안도 모색했다.

책은 두 권으로 나뉜다. 먼저 1권에선 미국이 북미대륙의 자연환경 속에서 평등한 사회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살폈다. 이어 미국의 인민주권론을 정의하고, 행정체제와 연방제 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민주정치가 가진 문제점과 견제책을 주목했다. 2권은 미국 민주주의를 심사숙고하는 에세이로 정서와 풍습 등에 미치는 영향을 적었다.

오늘 우리는 1권 2부 7~8장, 다수 지배에 따르는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해보자. ‘다수의 의지가 절대적 우위를 지닌다는 것은 민주정치의 요체이다. 민주정치에선 다수에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p.331, 한길사).’ 미국은 제도적으로 다수 지배를 보강해왔다. 모든 정치권력 중에서도 특히 입법부가 다수 의사에 순응하도록 구조화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제도는 치명적인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막강한 세력, 다수의 횡포에 대비할 보장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론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모두 다수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다수가 전능하기 때문에 입법부가 법률을 통해 횡포를 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부 고위관리도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p.340).’ 그렇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미국이 ‘막’ 나가지는 않는다는 걸 발견하고 토크빌은 안심했다. 이를 근거로 민주주의가 유럽에서도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고 내다 봤다.

핵심은 법률가에서 찾았다. 토크빌은 법률가가 다수의 횡포를 제어한다고 생각했다. 법률가는 고대로부터 전문지식을 습득하며 대중과는 다른 성향을 보여왔다. 본능적으로 질서 관념이 강하고 조리가 정연했다.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혁명 정신이나 무분별한 감정에 반했다. 유럽 귀족과 비슷해 대중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률가가 일부 역할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제어는 아니다. 연방제가 더욱 중요한 기능을 한다. 토크빌 역시 어느 정도 이를 언급했다.

8장에서 토크빌은 연방헌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개요, 권위와 구조, 기능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미국 연방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는 다르다. 미국에서 연방제가 확립된 건 교육 수준이 높고, 지리적 여건이 갖춰져 있고, 영토가 매우 넓고, 다양한 관행과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지방마다 다른 관습과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 넓은 영토를 하나로 묶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지방별로 제도와 관습을 만들고, 보다 큰 틀에서 이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 토크빌이 이 책에서 지적한 ‘연방 의회는 주요 양상을 규제하는 반면, 세부 사항은 지방 입법부가 담당한다(p.228)’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미국 헌법은 다른 연방제와 다르다는 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연방은 주권을 가진 지방이 하나로 연합한 기구다. 오늘날 UN과 비슷하다. 독립 당시 미국은 지방국가가 하나하나 모여 연합체를 이뤄나갔다. 13개 식민지가 각기 따로 독립을 선언했다. 13개 주권국가가 만들어진 다음,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하나의 협의체로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운영이 잘 안 됐다. 세금, 군대 등이 엉망으로 돌아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헌법을 만들고 하나의 연방으로 강력하게 결합시켰다. 이 과정에선 논란도 많았다. 미국은 시민이 통치자 집단으로서 함께 나라를 움직였다. 그런데 ‘또 하나의 기구가 있다고? 대서양 너머에 있는 영국이 우리를 지배한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사람들은 권력기구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론적으로 주민이 통치권을 각 주 정부에게 부여했는데, 유니언을 또 만들면 주권행사 최고기관은 누가 되는 것일까? 연방 정부·주 정부 두 기관이 모두 최고기관으로 양립할 수 있을까? 둘 다 최고권력이 되지 않는 건 아닐까? 주권국가 속 주권국가가 가능한가? 그렇게 수많은 논란 끝에 시민권 중 일부를 유니언에게, 일부를 주 정부에 주었다. 조약 체결, 선전포고, 화폐의 제작 및 유통 같은 단일 국가와 관련한 기능은 연방 정부에 주고, 나머지는 주 정부가 가져갔다.

여기서 토크빌이 놓친 것이 있다. 연방제를 설명하면서 연방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론적 토론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주목하지 않았다. 유럽의 왕권은 신이 부여했다. 주권 재민 사상이 없었다. 통치권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 로크 같은 이들이 이 같은 인식을 깨고 ‘우리가 원래 양도 가능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계약을 맺어 사회와 정부를 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치권이 주민에게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는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미국은 독립 이전에는 영국 군주정의 일부였다. 독립한 뒤 새로운 공화정을 만들었다. 다수가 주체가 되는 정치형태였다. 시민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 움직였다. 그리고 영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대중의 발언권이 더욱 높아졌다. 이들은 전쟁에 직접 참여해 나라를 지키는 주체였다. 때문에 귀족의 힘이 약해지고 기존 위계질서가 무너졌다.

독립을 인정 받았지만 미국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전쟁은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다. 시민들이 부채에 시달렸다. 그래서 정부에 탕감을 요청했다. 돈 찍어내라, 세금 깎아달라 요구했다. 살기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더 강조했다. 그 결과 정부가 제대로 안 돌아갔다. 미국인들은 이를 해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결국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새로운 헌법이 나오고 나라가 연방으로 구성될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 이전이었다. 그때 가장 진화했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혼합정부를 이루고 있었다. 궁정이 행정, 귀족이 입법을 맡고 평민은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권력이 치우치면 자칫 전제정, 과두정, 무정부로 타락할 수 있다. 세 권력이 균형을 꾀하며 당시 가장 이상적인 정부 형태를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도 그렇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왕족이나 귀족 없이 평민만 있었다. 그래서 왕족이나 귀족과 비슷한 기구를 만들었다. 왕 대신 임기제 대통령을, 귀족 대신 상원을 만들었다. 상원은 주민과 거리를 두었다. 하원이 주민 의사에 따라 한방향으로 움직일 때, 상원은 이를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

미국 제도의 안정이 여기서 비롯된다. 다른 말로 하면 바꾸기 어려운 체제, 보수적 체제다. 이 같은 체제가 200년 넘게 지속되며 안정화를 이뤄왔다. 그러나 한국 체제에는 상호 기구가 없다. 다수 의사를 제어하지 못한다. 국회도 대통령도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여론조사를 해서 정책을 결정한다. 미국과 확실히 다른 점이다. 미국인은 ‘제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권력을 잡는 순간 타락할 수 있다’는 인간관을 갖고 있다. 인간을 매우 나약한 존재로 본다. 때문에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도록 세심하게 제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도와 문화로 사회를 제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고전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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