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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 시대의 한국경제 대응법

[FORTUNE'S EXPERT] 윤창현의 글로벌 전망대

전 세계적인 저유가 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하락의 영향은 전체적으론 긍정적이지만 개별 국가로 보면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 경제에는 단기적으로 부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코드 그린’이라는 저서에서 “돌이 모두 없어져 석기시대가 끝난 건 아니다”라는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석기시대 주요자원인 돌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보다 유용하고 강한 재료인 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철기시대로 급격히 이행했다는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화석연료인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현재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석유판매를 통해 부를 축적하며 힘을 과시하고 있지만, 신재생에너지로 전환될 경우 힘이 약화되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문제는 경제적 차원을 떠나 정치·외교·군사적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중동에서도 석유매장량이 많은 국가들이 배타적이고 화합하기 힘든 정통 이슬람을 따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석유 문제는 그 의미가 매우 커진다. 석유매장량이 많은 베네수엘라와 러시아도 미국에 매우 적대적인 국가들이다. 이들은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을 석유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주변국에 석유를 싼값으로 공급하는 지원프로그램까지 운영하면서 반미 전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집권 당시 반미 성향의 ‘볼리바르동맹(ALBA)’을 맺어 미국에 대항했다. 또 2005년에는 카리브 해 연안국이 포함된 중남미 17개국과 석유동맹, 즉 ‘페트로카리베’를 맺고 석유를 시세의 반값에 공급했다. 이 같은 모습은 노르웨이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산유국 노르웨이는 석유를 판매해 수입을 올리지만 그렇게 번 돈 대부분을 국부펀드에 투입해 운용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GPFG는 세계 1위 운용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땅속에 있는 자원을 끌어올려 판매하고 이 수입을 모두 써버리면 후손들은 이로부터 이득을 전혀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석유를 판매해서 번 돈을 기금화해 펀드로 운용하면 나중에 석유가 고갈되더라도 기금이 남아 후손들도 석유판매 이득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석유판매 대금을 거의 다 써버리거나 심지어 주변국에 지원해버리는 경우와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올해 1월 26일에 미국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하나 열렸다. ‘제1회 카리브 해 에너지 안보 이니셔티브(CESI)’라는 모임이었다. 이 행사에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을 위시해 카리브 해 연안 20개국 정상과 대표단이 모두 참석했다. 이 모임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최근 저유가 상황에서 베네수엘라가 타격을 입어 모라토리엄 상황까지 거론되고 반값 석유공급에 차질을 빚자 베네수엘라를 주축으로 한 반미동맹체제에 균열이 생겼고 이를 감지한 미국이 그 틈새를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국이 먼저 발 빠르게 움직였다. 1월 8일 중국에서 ‘제1회 중국-라틴아메리카 포럼’을 개최한 것이 대표적이다. 카리브 해 연안국과 라틴아메리카 30여 개국이 참석한 이 모임에서 중국은 각종 투자프로젝트를 공개해 이들 국가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저유가 상황이 오면서 미국과 중국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러시아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카리브 해 소국들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저유가로 인한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저유가 국면은 신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대체에너지 공급이 일반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가 본격화되기 전에 셰일가스와 타이트 오일이라는 대형 변수가 등장하면서 에너지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부족한 줄 알았던 화석연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이 확인되면서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원래 석유가 많았음에도 개발을 자제하고 수입에 의존하던 미국에 셰일가스와 타이트 오일이 상당히 많이 매장되어 있고, 이를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이 진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적인 불황국면이 나타나면서 석유에 대한 수요까지 줄어들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동 산유국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감산을 통해 석유 가격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거부하면서 유가는 2014년 7월부터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동의 영향력이 감소했고, 미국에 적대적인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도 직격탄을 맞았다. 더구나 미국은 가장 먼저 금융위기에서 벗어났고 유럽은 아직도 금융·재정위기 영향권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석유 가격이 10% 하락할 경우, 세계 경제 성장률이 0.2%P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 하락이 전반적으론 세계 경제에 긍정적이지만,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산유국 가운데 베네수엘라처럼 재정의 60%를 석유에 의존하는 국가들에겐 대재앙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유가하락의 영향은 세계 경제 전체에겐 우호적으로 작용하지만, 개별 국가로 보면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바닥을 치고 반등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일부에선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중반에서 안정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약간의 반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시간이 지나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유가가 다시 반등할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저유가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유가 국면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석유화학, 조선, 해외 건설 등 일부 산업에 대한 타격이 워낙 커서 우리 경제에는 단기적으로 부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3.4%로 전망했고, 한국금융연구원은 3.7%로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저유가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같은 성장률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모든 산업과 가계에 영향이 골고루 미치는 변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다양한 대비가 필요하다.

저유가 국면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전략 가운데 주목할 만한 주장은 에너지 공기업의 공급가격을 대폭 떨어뜨리지 말고 어느 정도 유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공기업의 막대한 부채를 저유가 국면이 가져온 공급가격 하락에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해소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공기업 부채가 잘못되면 국민 세금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부채를 국가재정으로 감당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보단 개별 기업의 이익 규모를 늘려서 처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이 같은 부분을 포함해 다양한 경제부양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저유가가 초래할 세계 경제 질서 개편에도 주목해야 한다. 저유가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도록 정책 당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윤창현 원장은…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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