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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세상은 참 이상하다. 옷 색깔을 놓고도 떠들썩하다.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궜던 ‘드레스 색깔’ 논란. 어떤 사람에게는 ‘금색과 하얀색’, 어떤 사람에게는 ‘검은색과 파란색’ 줄무늬로 보이는 드레스를 두고 그야말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급기야 전문가들이 나서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유럽인을 참수하는 장면이 공개되자 온 세상이 분개하며, 그 야만성을 성토했다. 하지만 이슬람 정부군 100명을 한꺼번에 처형했다는 소식에는 오히려 무덤덤하다. 심지어 300명에 가까운 자식 같은 아이들이, TV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장된 일에는 “이제 그만 좀 하자”고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다. 참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은 인간관계나 회사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평소 소통을 강조하던 사장이나 상사에게 정작 문제점을 제기하면 화부터 낸다. 그토록 소통을 부르짖더니 제대로 소통을 해보려면 ‘건방지다’는 말이 돌아온다. 나중에야 상사가 말한 소통이 자기 말만 들으라는 얘기 였음 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괜히 미운털만 박힌다.

이처럼 온통 ‘이상한 일’로 가 득한 ‘이상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지 않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우리가 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면에서 요즘 가장 바빠진 분야가 있다. 바로 ‘뇌 과학’이다. 이 세상을 내 힘으로 바꾸지는 못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상한 일에 대한 해석 정도는 해가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뇌 과학의 눈으로 본 이상한 세상
뇌 과학에 관심이 집중되면 뇌 과학자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김대식 KAIST 교수 역시 최근 가장 바빠진 뇌 과학자의 한 명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책과 방송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은 김교수의 전작 ‘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상들과 결부시켜 한층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다 운그레이드시킨 책이다.

김 교수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 책은 뇌 과학자가 바라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요즘 사람들은 무 슨 생각을 하고 사 는 걸까?’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같은 질문들에 대한 뇌 과학적 고민이자 우리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단순히 이상한 나라에 사는 이상한 뇌 과학자의 이상한 이야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원래 이상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법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모르는 전문적 뇌 과학 용어는 별로 없다. 그조차 어렵다면 그냥 넘어가도 무방하다. 뇌 과학적 분석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철학 등 전 분야를 넘나드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흥미를 돋 운다. 그렇게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놀라게 된다. 세상과 나의 관계는? 죽음은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인가? 등의 철학적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드레스 색깔 논란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을 우려한다. 그는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에는 언제나 수많은 과거 경험과 미래 희망, 현재의 가설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새로 입력(input)된 것이 아니라 뇌의 해석을 거쳐 출력(output)된 것이라는 얘기다.

이 점에서 색깔이 달라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저자도 “같은 드레스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신기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르게보는 세상을 같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신기할 뿐”이라고 말 한다. 사회적 이슈, 현상도 다르지 않다. 동성애와 인종, 사상, 종교 등의 문제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동반하는 이유도 이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인간의 관점이 제각각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소통의 해법?!
소통의 문제도 뇌 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원인과 해법이 명료하다. 일단 공감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뇌도 본능적으로 공감을 갈망한다. 정보 교환을 위한 소통이라기보다는 단지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서다. 그런 공감의 본능이 관심과 배려로 나타나 각박한 이 세상을 그나마 따 뜻하게 해준다.

문제는 인간의 공감 본능이 조직과 기업, 정부 차원으로 확대되는 순간 발생한다. 결국 소통하자는 상사의 말은 주관적이고 형식적인 공감이다. 때문에 적극적 배려와 관심은 필요 이상의 참견이나 월권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내놓은 해법은 아들과딸, 직원, 부하, 제자를 객관적이고 독립된 주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조금씩 멀어져야 한다. 그것이 서로 진정 소통하고 공감하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인간과 세상, 삶과 죽음, 우주의 문제로 시야를 넓혀 보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동안 지구라는 행성에 대략 1,000억명의 사람이 발을 디뎠지만 그들 모두 죽었다. 어떻게 봐야 할까? 죽음이란 뭘까? 과연 그들은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 저자는 말한다. ‘나’는 죽지만 나의 ‘유전자’는 살아남는다고. 또한 그런 의미에 보면 ‘ 나’ 라는 존재는 유전자가 잠시 머물다가 가는 일시적인 정거장에 불과하다고.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역사에 행복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20세기 초 프랑스와 러시아, 독일, 영국의 청년 수백만 명이전쟁터로 향했다. 그들은 웃고 있었고, 사람들은 꽃을 뿌리며 환호했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확신했고,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전장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렇게 1916년의 솜 전투(battle of the Somme)에서 100만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나 가난, 학살, 쓰나미, 세월호, 고문, 테러, 성폭행, 자식의 죽음. 이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이다. 동시에 뇌가 예측하지 못한 경험이다. 이 같은 경험들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저자는 뇌 과학적관점에서 트라우마는 단순히 ‘세월이 약’일 수 없다고 피력한다. 뇌의 예측과 실제 현실이 불일치한데 따른 것인 만 큼 둘 사이의 괴리를 일치시켜야 극 복이 가 능하다는 얘기다.

뇌 과학과 인문교양을 아우른 유쾌한 여행
저자에 의하면 결국 세상은 항상 ‘갑’이고 개인은 세상에 맞춰 살아야 하는 ‘을’일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과 고통의 경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완전무결한 행복은 불가능하더라도 저자의 말에서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미래의 내가 과거를 떠올릴 때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면 집중과 몰입을 하자.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이 평생 나에게 괴로운 기억과 아픔을 줄 것 같다면 최대한 집중 하지 말자. 집중한 순간은 기억에서 늘어나지만 집중하지 않은 순간의 기억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아무리 세상이 갑이고 인간은 을이라도 집중과 선택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기억에 남는 우리의 인생을 편집할 수 있다.”

끝으로 저자는 우리나라에 지금 절실한것이 ‘제국적 마인드’라고 주장한다. 물론 약한 나라를 약탈하는 제국주의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나와 나의 감정이 아닌 장구한 역사와 종교, 정치, 경제, 사회, 과학적인 변수들을 동시에 고려해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것이 이 책의 궁극적 지향점이기도 하다.

현 세태를 감안할 때 뇌 과학이 조명 받고, 뇌 과학자가 바빠지는 상황을 바람직하게만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상식이나 사회적 시스템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물론 뇌 과학을 통한 분석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실천으로 옮겨진다면 이런 우려는 기우(杞憂)가 될 것이다. 이 점만 고려한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뇌 과학은 물론 인문교양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유쾌한 여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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