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그 질문의 의도가 다른데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누이는 허리를 굽혀 34파운드(약 15kg)짜리 생수 팩을 들어올렸다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뜨렸다. 그녀는 “이걸 사려고 남자를 데려오나요? 대답 좀 해보세요” 라며 “지게차라도 있어야겠네요. 물론 싸니까-3.99달러-사람들이 사서 고생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옳은 말이었다. 인드라 누이의 매장 방문은 의례적인 CEO 행사가 아니라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매출 667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회사 책임자가 하루 종일 시카고의 피츠 프레시 마켓, 쥬얼-오스코 Jewl-Osco, 타코벨 Taco Bell, 세븐일레븐 7-Eleven 등 소매점, 식당 같은 곳을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강조한 것은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었다. 그리곤 긴장한 경영진에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책임자들에게 전송했다.
문제점들을 자세히 묘사하면 이렇다. 음료 진열장의 빈 자리, 절반씩 정확히 맞추지 않은 펩시 로고의 진열, 냉장고 안 상품을 가리는 스티커, 펩시와 전혀 소비층이 다름에도 나란히 진열된 스테이시스 Stacy’s 와 롤드골드 Rold Gold의 프레츨 등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한 나라, 한 도시, 한 가게 내 진열대 한 곳의 펩시 캔이 잘못 놓인 것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이는 이런 사소한 점들이 차이를 만든다고 보고 있다. 누이는 “무결점 상태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 세워야 한다”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결점을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홍색 자켓을 입은 누이는 통로를 휘젓고 다니며 본사에 가져갈 경쟁사 제품도 골라 담았다. 이 일은 펩시코의 홍보책임자 존 배너 Jon Banner에게 맡겼다. 그는 속도를 맞추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마트를 나올 때쯤 누이의 카트는 직원들이 맛보고 분석 ? 평가해야 할 제품들로 가득 채워졌다. 무결점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할 일은? 누이는 그날 밤 쯤이면 뉴욕 인근의 사무실에서 90% 혹은 그 이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펩시코 직원들이 최근 몇 년간 위급함이나 전투 상황처럼 느끼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주요 상품인 탄산음료와 감자칩은 최근 담배 다음으로 해로운 음식으로 치부되고 있다. 탄산음료 판매량은 지난 9년간 14% 하락했고, 펩시의 시장 점유율도 함께 떨어졌다. 매출과 이익을 4년 동안 유지하기 위해 힘에 부치는 싸움을 펼쳐왔다.
그러나 서서히 녹색 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펩시코의 유기농 상품 매출액 증가율은 4%에 달했다(회사가 가장 선호하는 비일반회계기준(non-GAAP)을 따른 것으로, 인수 및 환율 변동으로 인한 영향을 제외했다). 펩시코 측은 이를 회복의 좋은 조짐으로 보고 있다. 펩시콜라와 프리토-레이 Frito-Lay가 합병된 지 50년이 된 올해에 축하할 만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한때 거의 죽어 가던 펩시코 주가도 기사회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 3년간 S&P500을 따라잡지는 못했어도, 경쟁사 코카콜라의 주가는 떨어뜨렸다).
펩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미국 브랜드 중 하나지만,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경영을 맡은 지 8년 차에 들어선 인드라 누이에게 올해는 한 숨 돌릴 시기가 될 수도 있다. ‘ 해명의 시간’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임기 시작 때부터 누이는 외부인들은 다 알고 있지만 내부에선 말조차 꺼내지 않던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바로 불량식품 때문에 사람들이 건강을 해치고, 살이 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감자 칩이나 탄산음료보다 조금이나마 건강한 제품들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몇몇 외부인들은 이 때문에 회사가 힘들어질 것이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소비자들을 보면 그녀의 선견지명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젊은 소비자들은 건강한 음식을 찾고 있다. 그러나 ’건강하다‘라는 말은 좀처럼 정의하기도 어렵고 일관성도 없다. 여전히 불량식품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지난 분기 가장 크게 성장한 부문도 글로벌 과자 사업부였다. 때문에 누이의 임무는 미스터리에 둘러 싸인 수수께끼보다 어려워졌다.
프로펠 일렉트로라이트 워터 Propel Electrolyte Water 처럼 제로 칼로리 음료가 성공했다면 그녀를 쉽게 극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적이 가장 좋은 제품이 마운틴 듀 같은 ‘설탕 덩어리’ 탄산 음료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 편히 그 실적을 즐길 수 없다. 마운틴 듀는 심지어 ’마운틴 듀 이빨‘이라는 치아 건강 문제를 지칭하는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지금이 인드라 누이(59)가 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의 전략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특히 탄산음료 의존도가 높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카콜라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누이는 여성이자 외국인, 전략 컨설턴트 출신으로 업계의 다크호스였다. 또 펩시코의 다섯 번째 경영 책임자로 전임자 중 한 명을 제외하곤 누구보다 장수하고 있다. 아울러 적어도 지금까진 주주행동주의자 보습을 보이고 있다. 또 언제나 활기차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움은 남아있다. 과연 그녀는 적응기와 설명이 필요한 상대적 성공(가령 고전하는 코카콜라보단 무조건 실적이 좋아야 한다든지, 아니면 취약한 제품군에서도 중간 이상의 성적은 거둬야 한다는 식의 성공)을 뛰어 넘어, 순수하게 회사 수익이 급증하는 호시절을 구가할 수 있을까?
모든 CEO는 장기적인 경영을 약속하지만 대부분은 그 약속이 깨질 때 더 환영을 받는다. 누이 역시 ‘목적이 있는 성과’ 라는 우아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영인과는 달리 누이는 실제로 원칙을 갖고 이 규칙을 지켰다. 예컨대 2007년 누이는 물 소비량을 20% 절감할 것이라 밝혔고, 예정보다 3년 빨리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누이의 가장 큰 포부 중 하나는 회사를 곤궁에 빠뜨리기도 했다. 펩시를 가장 좋아하는 소비층을 살리기 위해선 회사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한번은 “차세대가 최초로 이전 세대보다 단명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또 한번은 펩시가 전 세계 공중보건의 최대 난제이자 우리 산업에 근본적 연관성을 지닌 비만을 해결해야 한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장기적으로 수익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이기도 했다. 소비자가 날씬해지면 펩시코의 장기 이익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솔직한 인정은 충격적이었다.
누이는 펩시코의 제품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즐거움 (fun for you)”(감자 칩과 일반 탄산음료 등), “좀 더 좋음 better for you)”(다이어트 혹은 저지방 과자, 탄산음료 등), “좋음(good for you)”(오트밀 등)이다. 그리고 자신이 공표한 내용에 투자했고, 불량 식품에 쓰이는 자원을 건강한 대안 쪽으로 옮겨 활용했다. “즐거운” 제품에 건강성 측면을 늘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럼에도 애널리스트, 투자자, 그리고 일부 동료들은 누이의 우아한 슬로건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펩시코의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월마트의 CEO 더그 맥밀런 Doug McMillon은 누이에 대해 “그녀는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어느 정도의 비난도 감내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며 “한 분기 동안만 펩시를 운영한다면 그런 전략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 위기가 닥치고 실적이 가라앉았을 땐 비난이 거셌다. 베버리지 다이제스트 Beverage Digest에 따르면, 펩시의 주력 사업인 탄산음료의 시장점유율은 2006년 31,2%에서 2010년 29.3%로 거의 2퍼센트 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회사 주가는 S&P 지수와 코카콜라 주가보다도 성적이좋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누이의 광고 및 마케팅 비용절감을 탓했다. 78억 달러나 들여 병 제조사들(bottlers)을 재인수하는 바람에 투하자본수익률이 낮아졌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2012년 2월 주가는 6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누이는 이때 자신의 전략을 수정했다. 탄산음료와 감자 칩마케팅 비용을 늘리고, 주식은 다시 사들이고, 3년 동안비용을 30억 달러 가량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책임은 전부 내가 진다”고 말했다. 그 직전에 그녀는 음료 사업부 대표가 주요 제품 리브랜딩에 실패하자, 능력이 뛰어난 프리토-레이 책임자 알 케리 Al Carey로 교체한 바 있었다.
그러나 곧 누이에게 더 큰 압박이 가해졌다. 주주행동주의자 넬슨 펠츠 Nelson Peltz 와의 논쟁이 그것이었다. 펠츠는 펩시코가 자사주를 사들이고, 펩시와 프리토-레이의 합병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펠츠의 압박으로 크라프트 Kraft가 몬델리스 Mondelez를 분사시킨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그건 귀찮은 일이긴 했다. 누이는 그때 “솔직히 말해 ’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주주행동주의자는 필요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펠츠와 합의를 이끌어냈다. 올해 초 양 측은 ’중립적인‘ 하인츠 Heinz의 전 CEO 빌 존슨 Bill Johnson를 이사로 선임하는 데 동의했다. 빌 존슨은 펠츠의 트라이언 파트너스 Trian Parners의 고문이기도 했다. 누이의 전임 CEO 스티브 레인먼드 Steve Reinmund는 “누이는 자신의 전략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고, 이를 끈질기게 주장했다”고 평가했다.
펠츠의 압박에 따라 펩시코도 행동을 취했다. 샌퍼드 번스타인 Sanford Bernstein의 애널리스트 알리 디바드예 Ali Dibadj는 “사업 전략적인 측면에서 누이를 칭찬할 일은 많다. 그런데 행동주의자들의 압박 없이 그 전략을 실제로 수행했을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누이가 다시 마케팅을 강조하기 시작한 부분을 예로 들어보자. 소비재 회사는 무엇보다도 브랜드 인지도와 이미지가 상품 인지도나 이미지만큼 중요하다. 누이는 2012년 펩시코의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해 3M의 수석 디자이너 출신의 마우로 포치니 Mauro Porcini 를 영입했다. 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된 재킷과 뾰족한 슬리퍼를 신은 이탈리아 출신의 포치니는 “브랜드는 사람이나 유명인과 마찬가지”라며 “브랜드에도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치니의 지휘 아래 디자인은 상품 개발 및 마케팅 과정에 통합됐다. 요즘은 맨해튼 소호에 있는 펩시코의 화려한 디자인혁신센터에서 나온 네모난 펩시 액슬 Axl’ 병도 나오고 있다. 펩시는 밀라노 디자인 박람회 Milan’s Design Week 에서 ‘콜라 하우스 Kola House’를 열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디자인 콘셉트를 다른 기업에 판매도 하고 있다. 콜라 하우스는 펩시에서 영감을 받은 하이엔드 패션 제품을 판매하면서, 레이즈 Lay’s 같은 다른 제품도 멋진 느낌으로 리브랜딩을 시도하고 있다. 펩시에는 아이폰에서 영감을 받은 탄산 음료 제조기 스파이어 Spire도 있다.
탄산 음료 제조기 시장에 먼저 뛰어든 건 코카콜라였다. 하지만 펩시는 최근 아름다움으로 이 부문에 승부를 걸고 있다. 검정과 하얀 테두리를 가진 심플한 디지인의 제품에서 터치스크린으로 1,000가지가 넘는 맛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식당 측이 추가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코카콜라 제품과는 달리, 기능보다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비자들이 눈으로 직접 보는 부분에 변화를 꾀한 것이다. 게다가 값비싼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아도 된다. 펩시의 경영진은 버펄로 와일드 윙스 Buffalo Wild Wings 체인점이 2013년부터 음료를 코카콜라에서 펩시로 변경한 데 스파이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펩시코의 또 다른 변화는 양대 축인 음료와 과자를 더 가깝게 통합하는 것이다. CFO 휴 존스턴 Hugh Johnston은 “소비자의 절반 이상은 음료와 과자를 함께 구매한다”며 “(이 같은 전략은) 우리에게 큰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 플라노 Plano에 있는 프리토-레이와 뉴욕 퍼처스 Purchase의 펩시 아메리카스 베버리지 Pepsi Americas Beverages는 한때 전혀 다른 경영진과 문화를 지닌 두 개의 회사였다. 그러나 현재는 마케팅 전략을 함께 조율하고 있다. 크로거 Kroger의 CEO 로드니 맥멀런 Rodney McMullen은 “과자 계획이나 음료 계획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펩시 브랜드 전체로 프로모션을 구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펩시코는 제품 판매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거대 체인과의 관계 향상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CEO 조 디핀토 Joe DePinto는 “예전엔 거래 관계였다면 이제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작업은 2011년 세븐일레븐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맛의 게토레이를 제안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펩시는 6개월간 세븐일레븐 전용 쿨 블루 체리 게토레이 Cool Blue Cherry Getorade를 생산하는 데 동의했다. 그후 6개월 간 총 25만 병이 판매됐고, 쿨 블루 체리 게토레이는 가장 인기가 좋은 맛이 됐다. 지난해 세브일레븐은 도리토스 로디드 Doritos Loaded 와 마운틴 듀 솔라 플레어 Mountain Dew Solar Flare세트를 독점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타코벨 Taco Bell 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개발한 도리토스 로코스 타코Doritos Locos Taco 가 타코벨 사상 최대 출시 판매고를 기록하며 1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타코벨은 현재 퀘이커 Quaker 의 캡틴 크런치 Cap’n Crunch 등 펩시코의 다른 브랜드와 캡틴 크런치 딜라이트 도넛 홀 Cap’n Crunch doughnut hole을 개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아직도 타코벨에서 나온 캡틴 크런치 도넛홀을 좋아할까? 그렇지는 않다. 일부는 여전히 좋아하고 있지만,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게 됐다. 누이는 물론 이것을 예견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변덕스러운 입맛은 전통적인 식품 및 음료 기업에겐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최고 과학책임자인 메무드 칸 박사 Dr. Mehmood Khan가 주의 깊게 제품을 살펴보고 있었다. 필자는 그 와중에 펩시 R&D센터 내부에서 개발된 최신 제품을 맛보고 있었다. 누이가 경영을 책임진 이후, R&D 투자가 두 배로 증가했다. 필자는 그 결과물을 시음하고 있었다. 사내 테스트 부엌 옆에 있는 회의실에서 필자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 쉬고) 브라질 축구 대표팀이 테스트 한 주문형 게토레이 파드를 맛보았다. 이 파드는 물과 섞여 신체에 필요한 전해질 균형을 맞춰주는 상품이었다. 이 외에도 녹색 식품을 좋아하는 고객을 위한 네이키드 Naked 의 케일 블레이저 Kale Blazer 주스, 과일 맛의 저칼로리 음료 마운틴 듀 킥스타트 Mountain Dew Kickstart, 최초로 3D 프린터로 만든 바삭바삭하고 두꺼운 딥 리지드 Deep Ridged 감자 칩 등을 맛 보았다. 칸 박사는 “디자인, 과자 틀, 입맛에 모두 특허를 출원했다. 복수의 특허권을 겹쳐놓았다”고 설명했다.
과학을 접목한 것은 특허권 전략만큼이나 훌륭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신선 식품에 열광하고 인공적인 것은 뭐든 공격하는 요즘의 추세와 잘 맞지 않아 보였다. 비만 전공 내분비학자 출신인 칸 박사의 목표는 두 가지다. 히트상품 개발과 현재 펩시코 제품들의 건강성 향상이다. 음료사업부 책임자 케리는 “현재 개발 중인 제품의 90%에서 건강성을 높이고 싶다고 팀원들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건강성이 향상된 제품은 신선식품을 원하는, 가공식품을 거부하는 신세대들 덕분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크레딧 스위스 Credit Suisse의 애널리스트 로버트 모스코 Robert Moskow에 따르면, 지난 5년간 25대 식음료 회사들의 시장가치는 180억 달러나 축소됐다. 실로 엄청난 규모다.
펩시코에서 일한 적이 있는 타깃 Target의 CEO 브라이언 코넬 Brian Cornell은 지난 5월 포장 공급업체들에게 제품 프로모션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연에서 온 진짜 재료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 업계에서 30년 동안 일했지만 이렇게 급변하는 건 처음 본다. 모든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탄산음료에 대한 소비자의 외면이다. 좋은 소식은 펩시코가 요거트 같은 제품으로 다양화를 하면서 탄산음료가 차지하는 매출의 비중이 25% 이하로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소식도있다. 펩시코는 에너지 드링크처럼 성장하는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건강’에 대한 기준을 정의하기가 훨씬 까다로워졌다. 누이도 최근 어닝 컨퍼런스콜에서 요즘처럼 소비자들이 급변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예컨대 소비자들이 고 과당을 회피하면서 오렌지 주스 소비량이 급감했다. 그 결과 펩시코의 트로피카나 Tropicana 브랜드 실적이 떨어졌다. 한편으로, 다이어트 펩시 Diet Pepsi는 설탕 대체재(아스파르탐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 4월 회사는 더 이상 이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에 대한 거부감으로 실적이 나빠졌다. 그렇다면 실적이 떨어지지 않은 부문은? 놀랍게도 ‘설탕 덩어리’ 마운틴 듀다. 젊은 층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밖에도 사탕수수당으로 만든 새로운 콜라의 매출이 지난해 50% 증가했다.
누이가 건강 관련 추세를 읽은 건 옳았지만, ‘ 즐거움’ ,'좀 더 나음’, ‘좋음’으로 제품을 분류한 건 의미가 없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펩시는 한때 ’좀 더 나음‘으로 분류됐지만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누이도 최근 9달러짜리 케일칩 과자를 보고 “지방 폭탄”이라며 깜짝 놀란적이 있다. 그녀는 “고객들이 생각하는 ‘건강’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제품, 유기농 제품이기만 하면 소금과 설탕 함유량이 높거나 지방이 많아도 건강한 제품이라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이렇게 변하자 누이는 기존의 카테고리를 버리고 ‘통로(corridors)’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과일, 채소, 단백질, 탄수화물에 역점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구성원리에 불과할 뿐, 전략은 아니다.
누이가 좀 더 건강한 제품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지만, 펩시코는 여전히 수익 대부분을 불량식품에서 올리고 있다. 2014년 북아메리카의 프리토-레이에서만 이익의 36%가 발생했다. J.P 모건의 애널리스트 존 포처 John Faucher는 “’즐거움‘에 해당하는 사업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런데 실상은 그와 달랐다”고 설명했다.
펩시코는 건강에 해로운 제품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2006년부터 설탕량을 40만 톤 가량 줄였고, 레이즈와 러플즈 Ruffles 칩의 소금과 포화지방도 줄였다. 퀘이커의 리얼 메들리 Real Medleys 오트밀 프리믹스처럼 훨씬 건강한 제품도 출시했다. 이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설탕은 줄이고 과일, 견과류, 통곡물 함유량은 늘렸다.
탄산음료 판매량 감소를 상쇄하면서 판도를 뒤엎을 만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지난 2년간 개발된 신제품이 현재 펩시코 매출의 9%를 차지하고 있다. 2012년 7%에 비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같은 라인을 조금 변경한 것에 불과하다. 도리토스 룰렛 Doritos Roulette처럼 5개 중에 하나는 엄청 매운 맛이 들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능성을 보이는 제품도 있다. 특히 마운틴 듀의 매출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출시 2년차에 3억 달러 매출을 기록한 킥스타트 Kickstart가 대표적이다. 킥스타트는 현재 펩시코 탄산음료 브랜드 중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공물질이 적게 들어간 음식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3D 프린터로 제조했고 특허까지 등록했다’고 선전을 해봐야 오늘날의 소비자들에겐 어필하기가 어렵다.
누이는 시장 변화를 통제하진 못했지만 사내 문화를 바꾸는 데는 성공했다. 예전에는 분산형 조직이라 지역 관리자가 본사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경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간소화 된 반면 좀 더 하향식으로 바뀌었다. 누이가 ‘ 하향식 경영인’ 이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녀는 “최고 경영진은 모든 사소한 부분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며 “경영진이 세세한 것을 더 확실히 챙겨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직원들이 찾아와 ‘일 하기 너무 어렵다’고 얘기 할 때 이해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누이는 까다로운 상사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그녀는 “나 스스로 하길 원하지 않는 일은 시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에 동의했다. 누이가 질문을 잘하는 이유는, 전략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이는 모든 의사결정의 함의를 파악하고, 깊고 넓게 이해를 한다. 그러나 일부 전임 경영진은 정보에 대한 집착이 주요 의사결정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고 꼬집고 있다. 예컨대 스파이어는 코카콜라의 프리스타일 Freestyle보다 시장에 늦게 진입했다. 번스타인의 디바드예는 이에 대해 “펩시에는 분석 불능의 신호가 분명히 있다”고 비판했다.
누이는 섬세하고, 위트가 있고, 따뜻하고, 충성심도 많다. 실제로 직원 한 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최고 수준의 의사를 불러준 적도 있다. 크게 성공하거나 승진한 경영진의 부모에겐 칭찬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언제나 여성 관련문제를 옹호하고, 자녀 이야기나 야한 농담도 꺼리지 않으며, 설탕이 많은 과자도 즐기고 있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누이의 딸들은 어렸을 때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었을까? 누이는 “절대로 아니다. 입맛이 고급스러운 딸들이 콜라를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무뚝뚝하고 단호한 면도있다. 특히 직속 부하직원에게 그렇다. 전임 경영자 중 한 명은 “절대로 그녀를 만족시킬 순 없다. 우리끼리는 그녀가 병도 주고 약도 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펩시가 인재양성소라고 알려졌기 때문인지-아니면 누이에게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인지-그녀가 취임한 이후 경영진에 잦은 변화가 있었다. 실질적으론 잠재적 후임자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펩시를 떠났다. 최근에는 샘즈 클럽 Sam’s Club 출신의 코넬Cornell이 미주 음식 사업부를 맡았지만 2년도 안돼 타깃으로 이직했다. 전임 사장 존 콤프턴 John Compton 도 파일럿 플라잉J Pilot Flying J를 운영하기 위해 2012년 잠깐 사임했지만 일이 잘 되지 않자 돌아오지 못했다. 후임자 제인 앱댈라 Zein Abdalla도 작년 12월 갑자기 사퇴했다. 현재 R.J. 레이널즈 타바코 R.J. Reynolds Tobacco의 데브라 크루 Debra Crew, NFL의 CMO 돈 허드슨 Dawn Hudson, 아라마크 Aramark 의 CEO 에릭 포스 Eric Foss등 부상하던 스타들도 모두 떠났다. 얼마 남지 않은 독립 펩시 병 제조사 중 한 곳의 대표는 “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스맨’들 밖에 없다”며 “아부 문화가 팽배해 있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누이가 너무 똑똑한 경영자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펩시코의 홍보담당 베너는 “누이는 의지가 강하고 능력이 입증된 인사들로 경영진을 꾸렸다. 우리 문화는 전체 경영진의 솔직한 대화와 토론을 권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녀는 경영진 탈출 현상을 무시하고 있다. 누이는 “떠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정말 좋은 직위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부류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미래에 좋은 CEO가 되기에는 부족하고) 이사진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이유 때문에 펩시코를 떠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그녀는 떠난 사람 중 일부와는 최근까지도 연락을 했다면서 필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누이는 “브라이언 (코넬)은 2주에 한번씩 이메일을 보낸다. 존 (콤프턴)은 사진을 보낸다. 딸 사진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펩시의 인재 개발과정은 본 받을 만하다. 미국 내음료 사업부 책임자인 케리는 가죽으로 제본된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고위 경영인 100인의 리스트를 만들고, 각각에게 어울릴 만한 다음 직위를 적어둔다. 누이는 몇 개월에 한번, 이틀 반씩 유망한 경영진 14명과 휴가를 즐긴다각각은 자신에 대해 35분씩 소개할 기회를 갖고, 마지막에는 누이가 모든 사람의 부모와 배우자에게 개인적으로편지를 쓴다.
그러나 최고 자리는 더 복잡하다. 누이와 이사진은 최고직으로 승진할 경영진이 음료와 과자 사업부를 모두 경험하고, 글로벌 직책도 맡기를 원한다. 좋은 의도지만 이조건을 만족시키는 후보자는 얼마 없다. 예컨대 최근 후계자 후보로 자주 언급되는 CFO 존스턴 Johnston도 해외에서 일한 경험이 한 번도 없다.
이사 대니얼 베젤라 Daniel Vasella는 펩시코가 의도적으로 후계자 후보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다음 후계자를 지정하는 건 회사에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지지를 더 이상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누이에게 떠날 생각이 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이사진도 앞으로 몇 년간 더 그녀가 회사를 이끌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누이는 최근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 같다. 얼마동안은 펩시에 잔류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다. 나이도65세가 되려면 5년 이상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정치에 관심이 있는그녀에 대한 루머가 다시 화젯거리로 떠오를지도 모른다그러나 여전히 1년 반 가까이 남았고, 누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펩시코의 고객사인 한 대기업 CEO는 “누이와 그녀가 이끄는 회사가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까?또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를 계속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을까? 그것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챕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누이 본인은 직접 완성하길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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