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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형제는 왜 등을 돌렸나


한일 양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롯데가(家) ‘왕자의 난’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통합 대권 승계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비교적 순탄한 관계를 유지하는 줄로만 알았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일본 쪽은 형님(신동주 전 부회장)께서 잘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요 언론에 소개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관계는 비교적 돈독해 보였다.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을 깍듯이 대한다는 언론 보도도 여러 번 있을 정도였다. 한일 두 나라에 걸쳐 있는 롯데그룹은 오래전부터 ‘일본은 신동주, 한국은 신동빈’ 식으로 승계 구도가 확정되어 있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도 비교적 평탄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정황은 묘하게 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12회에 걸쳐 롯데제과 주식을 매입했다. 롯데제과는 롯데 순환출자 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초창기 롯데그룹 부흥의 원동력이 된 사업부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롯데제과 주식을 신전 부회장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매입하자, 경영권 분쟁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롯데 측은 ‘ 개인적인 투자’ 라고 선을 그었고, 당사자인 신 전 부회장은 말이 없었다.

결국 올해 일이 터졌다. 지난 1월 8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 해임된 것이었다. 신 전 부회장은 모든 힘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7월 27일, 신 전 부회장이 반격하면서 롯데는 ‘왕자의 난’ 격랑에 휩쓸렸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등에 업고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신 회장 측 주요 인사들을 축출하려는 시도를 했다. 신동빈 회장의 빠른 수습으로 이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충격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신동주, 신동빈 두 형제. 이들은 언제, 어디서부터 틀어졌던 것일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롯데 주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두 형제의 관계는 예전부터 그렇게 각별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신동빈 회장이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을 깍듯이 대했다는 그간의 언론 보도는 신동빈 회장 특유의 젠틀한 성격이 반영된 것일 뿐,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을 더 애틋하게 대한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신동빈 회장이 가까운 임직원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도 존칭과 경어를 사용할 정도로 점잖은 성격이다 보니, 신동주 전 부회장을 지칭하면서 나온 형님이라는 단어와 부드러운 표현이 언론으로부터 오해를 샀을 것이란 추측이다.

복수의 롯데그룹 관계자들은 오히려 ‘그간 두 형제의 관계가 나빴다고 보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두 형제는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경영을 따로 맡으면서 관계가 매우 악화됐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그룹 주요 관계자는 말한다.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가 서로 협업해야 하는 일이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시너지는커녕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서로 충돌하는 일도 많았고요. 특히 해외사업의 경우는 서로 협조가 잘 안돼 방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여러 사건이 있었던 터라 지금의 상황(왕자의 난)이 벌어진 게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리글리 껌과 ‘왕자의 난’
두 형제 사이의 마찰과 관련된 일화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중요한 사건이 하나 나온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00년대 들어 진행된 미국의 유명 껌 제조사 리글리Wrigley의 아시아 확장 정책이었다. 당시 리글리사는 오래 씹어도 껌의 탄력이나 맛이 지속되는 롱래스팅 껌 제품으로 세계 껌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롱래스팅 제품으로 미국과 유럽 껌 시장을 석권한 리글리사는 2000년 아시아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한일 양국 껌 시장에서 70%대 점유율을 자랑하던 롯데그룹을 긴장하게 했다.

당시 한국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지시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했다. 흔히 업계에서 ‘분탕질’이라고 불리는, 리글리사의 롱래스팅 껌과 비슷한 상품을 만들어 대량으로 유통 매장에 깔아버리는 ‘적극적인’ 방어 전략을 펼쳐 시장을 사수했다. 리글리사의 롱래스팅 껌은 2000년 말 크라운제과와의 제휴를 통해 한국에 상륙했으나, 이미 롯데에서 비슷한 제품을 시장에 출시했던 탓에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리글리사는 2002년에도 국내시장 정착을 시도했지만, 역시 롯데의 벽에 막혀 다시 철수하고 말았다.

하지만 일본 롯데의 상황은 달랐다. 일본은 아무런 방어 전략을 취하지 않고 있다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리글리사에 쉽게 빼앗겨버렸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롯데를 껌 사업으로 일으킨 이후, 롯데는 일본에서 껌과 동의어처럼 쓰일 정도로 상징적인 기업이었다. 2000년대까지 수십 년간 시장점유율 1위를 내준 적이 없을 정도로 일본시장에서 롯데껌의 위상은 대단했다. 게다가 리글리사와는 과거 깊은 악연이 있었다. 리글리사는 1956년 일본에 상륙해 배수의 진을 친 신격호 총괄회장과 무려 10년 동안이나 ‘껌 전쟁’을 벌인 기업이었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악전고투 끝에 10년 만인 1966년 리글리사를 일본에서 철수시키며 시장을 지켜냈고, 이는 일본 재계에서도 신화로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롯데그룹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껌 시장에서 리글리사가 롯데를 밀어내고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동빈 회장은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롯데 경영진과 주주들에게 ‘ 일본 롯데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느냐’며 쓴소리를 했는데, 이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보기에 신동빈 회장의 월권이자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무시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신동빈 회장은 자주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을 찾아 자신의 의견을 수시로 피력하며 신동주전 부회장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해외사업에서의 잦은 마찰
이 사건은 이후 한일 롯데의 협업 사업에서 양사가 잦은마찰을 빚는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형제는 특히 해외 제과 사업에서 유독 많은 마찰을 빚었다. 롯데그룹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롯데제과와 롯데(일본에서 제과 사업 부문을 맡고 있다) 합작사를 통해 해외 제과 사업을 진행했는데, 2000년대 초중반부터 사사건건 의견이 엇갈렸다.

특히 2004년 진출한 중국시장에서의 초기 적응 실패가 둘의 관계를 되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멀어지게 만들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합작사의 경영권을 일본 롯데가 쥐고 있었는데, 일본 롯데는 자사의 브랜드 파워를 과신한 나머지 중국시장 초기 마케팅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일찍이 중국 유통시장 진출을 위해 중국시장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던 한국 롯데는 ‘롯데라는 이름이 중국에선 무명에 가까우니 초기 마케팅 및 프로모션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롯데그룹의 한일 제과 합작사는 중국 초기 시장 적응에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는 한일 롯데가 서로의 사업능력을 불신하게 된 주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생긴 부실의 상당 부분을 덩치가 큰 한국 롯데에서 처리하면서 중국사업부 등 합작사 경영권의 일부가 한국 롯데로 넘어왔다.

중국 사건을 계기로 롯데제과와 롯데는 합작사라는 이름만 걸었을 뿐 거의 독자 노선을 걷게 됐다. 이후 진출한 지역에선 거의 별개의 기업으로 활동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선 원재료 소싱까지 따로 했을 정도였다. 통합 소싱으로 원가를 절감하고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건합작사 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지만, 두 기업은 이마저도 안 할 정도로 등을 돌렸다는 얘기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사이의 사업 관련 마찰은 대부분이 해외 제과 사업에 집중돼 나타났는데, 이는 ‘롯데와 롯데제과 사이의 갈등이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사이의 관계를 대리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롯데제과와 롯데는 2013년부터 합작 해외법인 지분을 정리하는 수순에 들어갔다가 최근 신동빈 회장이 롯데의 원 리더로 떠오르면서 다시금 협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본에서도 ‘형보다 아우’
두 형제가 자주 부딪히면서 한일 롯데의 그룹 내 분위기도 미묘하게 흘러갔다. 한국 롯데는 신동빈 회장에 대한 지지를 공고히 하며 결속을 다졌지만, 일본 롯데는 오히려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이번 롯데가의 ‘형제의 난’에서 일본 롯데 경영진이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닌 신동빈 회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가시화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를,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책임지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의외의 상황으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신동빈 회장이 10년 가까이 일본 롯데 측 경영진과 지속적인 스킨십를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신동빈 회장은 꾸준히 자신의 경영 능력을 입증해 왔다. 두 형제가 한일 롯데를 맡은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현재 한일 롯데는 매출에선 17배, 영업이익에선 14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일 양 롯데그룹의 경영진들은 신동빈 회장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분위기다. 롯데그룹 주요 관계자는 “비단 숫자상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일본 롯데 경영진의 상당수가 한국 롯데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확장 정책을 동경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이들은 형(신동주)보다 나은 아우(신동빈)라는 생각을 수년 전부터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 롯데의 마음을 얻어 통합 대권을 손에 넣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그는 한일 경영진의 신뢰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먼 미래에 일본 경영진은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통합 롯데의 미래가 사뭇 궁금해진다.



2선으로 물러나는 신격호 창업주
이번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신격호 창업주가 경영 2선으로 물러나는 모습이다. 93세의 고령에도 직접 경영을 챙긴다던 신격호 창업주였지만, 최근 건강이상설이 제기되면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내려진 결정이다. 신격호 창업주는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던 총괄회장직에서 힘이 제한된 명예회장직으로 직함이 바뀔 예정이다. 겉으로 보기엔 추대이지만 사실상 유폐에 가까운 결정이다.

왕자의 난 사건 이전만 해도 신격호 창업주가 비교적 정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신격호 창업주는 이미 수년 전부터 건강이상설이 제기되어 왔다. 다만 롯데그룹 측의 완강한 부정 때문에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그룹 주요 관계자는 전한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셨습니다. 직접 보고를 하는 이들은 다 알고 있었죠. 직원들 사이에서도 그리 쉬쉬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1시간 보고에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반복하는가 하면, 이미 십수 년 전에 고인이 된 지인의 근황을 아직까지도 물어보십니다. 매번 ‘그분은 이미 십수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려도 계속 물어보세요. 지금도 정기적으로 보고는 드리고 있는데, 보고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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