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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테러리스트 폭발물 분석센터 탐방기

테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미 연방수사국(FBI) 산하 테러리스트 폭발물 분석센터(TEDAC) 연구원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11년부터 2013년 사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의 급조폭발물(IED) 공격이 70% 늘었다. 66개국이 IED 공격을 받았고, 그중 일부는 거의 매일 공격당했다.





바그다드 북쪽 이라크의 최대 원유 정제시설이 위치한 바이지 마을 인근. 한 반정부 게릴라의 손에 대만산 세나오 무선전화기 복제품이 들려 있었다. 많은 연습 덕분에 전화기 개조 작업은 막힘없이 진행됐다. 그는 나사를 빼내고, 플라스틱 케이스를 제거한 뒤 전원코드를 떼어냈다. 그 자리에는 배터리를 넣었다. 그리고 전화기의 페이지 기능을 외부 릴레이 스위치에 연결하고, 다시 그 릴레이를 배터리와 폭발성 화학물질에 연결했다.

참고로 폭발성 화학물질은 경유와 비료를 채운 페트병이나 폭발물을 넣은 압력밥솥, 혹은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 흔해진 포탄이 될 수도 있다. 일단 회로가 완성되면 전화기의 페이지 버튼을 누르는 순간 릴레이가 작동, 폭발물이 터진다. 1.5㎞ 밖에서 원격 격발도 가능하다. 이른바 급조폭발물(IED)이 이것이다. 이런 IED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의 하나다. 이라크 파병 미군의 인명피해 중 최소 2분의 1, 최대 3분의 2가 IED 때문이며 민간인 희생자도 이미 수만 명을 넘었다.

현재는 IED가 게릴라들의 필수품이 됐지만 앞서의 게릴라가 세나오 무선 전화기를 개조하던 2005년에는 미군이 IED의 위협을 막 체감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해 8월 일단의 게릴라들이 개조한 세나오 전화기를 바이지 마을 남쪽의 자갈더미에 숨겼다. 그리고 수m 떨어진 도로에 포탄 3발을 묻고, 전화기와 연결했다. 그 도로를 자주 다니는 순찰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다행히 그 IED는 2005년 9월 1일 미군에 의해 발견돼 안전하게 제거됐다. 미군은 포탄과 함께 찾아낸 세나오 전화기를 미국 버니지아주 북부의 FBI 법의 학연구실로 보냈다. 당시만 해도 그 IED가 그동안 발견된 무수한 IED들과 다르다는 걸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그 IED는 FBI의 분석관이 한 테러리스트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게 된다.

TEDAC의 분석관들은 각 IED의 초고해상도 사진을 촬영해 디지털 자료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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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주 동부의 미 해병대 콴티코 기지. 유달리 눈길을 끄는 한 건물로 특수요원 그레그 칼이 들어갔다. 창문 없는 복도를 지나 두터운 금속 보안문을 통과한 그는 바코드가 찍힌 흰색 박스들이 잔뜩 쌓여 있는 커다란 창고에 도착했다. 이곳은 칼이 책임자로 있는 FBI 테러리스트 폭발물 분석센터(TEDAC)의 접수처 역할을 하는 창고로, 모든 흰색 박스에 IED가 들어 있다.

칼에 따르면 2003년 TEDAC가 문을 연 뒤 이곳을 거쳐간 IED만 10만개 이상이다. 사전에 발견돼 온전한 상태로 오기도 하고, 폭발한 뒤 잔해만 오기도 한다. 여기서 FBI 법의학연구실 연구자들이 모든 IED를 일일이 분석, TEDAC의 데이터베이스에 관련자료를 저장해놓는다.

즉 TEDAC의 데이터베이스는 세상에서 가장 큰 폭발물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IED에는 제작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도, 사진이 붙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TEDAC에서는 IED가 발견된 위치와 디자인, 소재 같은 물리적 증거를 꿰어 맞춰 제작자를 특정할 연결고리를 찾는다. IED 제작 공장이나 전문 제작자를 추적하기 위해 특징이 유사한 다수의 IED를 분석하기도 한다. 특히 오랜 기간 많은 증거들을 연구하다보면 새로운 IED 제작기술과 트렌드 변화를 파악할 수 있으며, 특정 제작자나 그 제자들의 행적 추적도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TEDAC가 출범하기 이전까지 펜타곤은 전쟁터에서 법의학이 가져다줄 이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반정부 게릴라와의 전쟁은 조직범죄와의 전쟁과 닮았죠. 보이지 않는 적들과 맞서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지금껏 이렇게 분석관들이 지난 12년간 TEDAC의 데이터를 활용해 색출한 테러 활동 용의자가 2,700여명에 달한다.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에도 350여명을 추가했다. 또한 법의학연구실은 8만개 이상의 지문을 확보, 전 세계 법집행기관과 공유하고 있다. 이런 눈에 띄는 실적에 힘입어 FBI는 그동안 콴티코의 임시본부에 머물렀던 TEDAC 직원 250여명을 1억3,200만 달러를 들여 앨라배마주 헌츠빌 지역에 건설한 신청사로 올 여름 이주시켰다.

지금은 이렇듯 위상이 높아졌지만 2003년의 TEDAC는 신생기업에 가까웠다. 업무의 초점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맞춰져 있었고, 불과 수 십명의 분석관이 직원의 전부였다. 그나마 상당수는 FBI의 다른 연구실에서 빌려온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이라크에서의 게릴라 활동이 폭증했다. 한 달에 몇 건 없었던 IED 테러가 수백 건으로 치솟더니 월 2,400건까지 발생했다.

“TEDAC가 창고형 공간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수집된 IED를 놓아두고 분석하기 위해 최대한 넓은 공간이 필요했어요.”

2005년 바이지 마을의 인근도로에서 발견된 세나오 전화기가 TEDAC에 도착했을 무렵 분석관들은 쇄도하는 I ED 증거물들에 치어 죽을 지경이었다. 검사 를 대기 중인 IED가 수만 개에 달했다. 때문에 2010년이 되도록 세나오 전화기는 흰색 박스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의학자 케이티 수크마의 책상 위에 특이한 요청서가 날아들었다. 요청서의 발송지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도, 이라크의 키르쿠크도 아닌 미국 켄터키였던 것. 그곳의 FBI 요원들은 최근 볼링그린 지역의 대학촌에 정착한 와드 라마단 알완이라는 이라크 난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난민으로 위장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 소속 요원이었기 때문이다.

FBI 요원들의 요구는 간단하지만 긴급했다. 그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달라는 것이었다.

TEDAC에는 폭발 전에 발견돼 온전한 상태로는 도착하는 IED도 있지만 폭발 후의 잔해만 박스에 담겨 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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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 미 국무부는 수만 명의 이라크인을 미국에 정착시킨다는 야심찬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대상자의 상당수는 미군의 통역사나 해결사로 일하다가 현지 민병대에게 보복을 당한 사람들로, 미국 내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거주지를 마련해준다는 취지였다. 와드 라마단 알완도 바로 이 프로그램에 신청해 국무부의 심사를 통과한 뒤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2009년 4월 켄터키로 정식 이주했다.

그는 볼링그린의 한 검소한 아파트에 아내와 함께 살며, 닭고기 가공공장에서 일했다.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2009년 9월 FBI가 알완이 AQI 요원일 수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도 그 정보의 정확성을 선뜻 믿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FBI의 켄터키주 루이빌 지사 요원들이 알완을 대상으로 일반 감시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FBI는 전면 수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정보원을 AQI에 동조하는 이라크 난민으로 가장해 알완에게 접근시켰다. 알완은 처음에는 정보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2010년 초부터 조금씩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FBI 루이빌 지사의 선임 특수요원인 팀 빈에 의하면 알완은 자신이 이라크 주둔 미군을 공격했었고, 폭탄 제작에도 관여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앞서의 첩보를 뒷받침하는 언급이었지만 FBI는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첩보의 내용처럼 고도로 훈련을 받은 AQI 요원일수도, 새로 사귄 친구에게 잘난척하는 평범한 허풍쟁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알완이 정말 AQI 요원이라면 단독으로 활동 중인지, 미국 내에서 테러를 준비 중인 팀의 일원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래서 FBI는 함정수사를 실시했다.

다음날 정보원은 알완에게 다가가 자신의 친구들이 이라크의 반군 게릴라들에게 돈과 무기를 지원하고 싶어 하며, 이를 성사시킬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알완은 기꺼이 중개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2010년 상반기 알완은 볼링그린의 한 창고를 정기적으로 찾아갔다. 창고에는 러시아제 PK 기관총과 대전차 로켓발사기, 저격 소총, C-4 폭약, 심지어 지대공 스팅거 미사일도 있었다. 물론 이 무기들은 FBI에 의해 사전 무력화된 것이었으며, 창고에 설치된 몰래카메라가 알완이 이라크로 대량의 무기를 보내려하는 모습을 낱낱이 포착했다. 알완을 테러단체 지원 혐의로 기소할 증거가 확보된 것이다.

또한 2010년 늦은 봄, FBI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공격했었다는 알완의 발언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게 됐다. 녹취된 대화에는 그가 수십 개의 IED를 제작했으며, 미군 병사를 저격하기도 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FBI는 그 죗값도 치르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미군을 직접 공격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증거만 찾아내면 훨씬 무거운 죄로 기소가 가능했고, 그럴 경우 그가 사전형량조정제도(plea bargain)를 통해 미국에게 더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나 올 수도 있었다. 문제는 알완의 죄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수년 전 벌어진 일이라 찾아낸다는 보장도 어려웠다. FBI 요원들이 TEDAC에 도움을 요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IED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며, 무선 방식도, 유선 방식도 있다. FBI의 TEDAC는 이 모든 IED들의 정보센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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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AC에 도착하는 모든 IED들은 통과의례처럼 몇 가지 절차를 거친다. 일단 전문 기술자가 포장을 제거한 뒤 I ED의 유형과 확보 가능한 증거의 종류에 따라 검사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IED의 외부와 내부 사진을 마이크로칩에 찍힌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초고해상도로 촬영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이렇게 저장된 사진은 FBI와 협력관계에 있는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요원들도 볼 수 있다.

칼 센터장은 이런 시각 자료들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부품을 납땜하는 방식이나 전선을 꼬는 방법만 보고도 IED 제작자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특한 제작 기술이나 기법은 IED 제작자 혹은 제작팀을 특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IED를 누가 만들었다라고까지는 단정 짓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느 단체에서 만들었다고는 확실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촬영을 마친 IED는 앞서 세워진 검사계획에 맞춰 FBI의 다른 연구실로 옮겨진다. 제작과정에서 IED에 남겨진 공구나 기계의 흔적을 찾는 공구흔적연구실, 지문이나 DNA 검출이 이뤄지는 생체인식연구실 등이 그것이다. IED가 부분적으로나마 멀쩡한 상태라면 공학전문가들이 해체해 제작자 를 알려줄 구조적 단서를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TEDAC의 케이티 수크마가 FBI 요원들의 요청을 받았던 2010년은 이런 고등 분석절차가 정립되지 않은 때였다. 요원들은 TEDAC가 확보한 모든 지문과 알완의 지문을 대조해주길 원했는데, 이는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아 달라는 것과 같았다.

이에 수크마는 35명의 분 석관으로 팀을 꾸려 조금씩 검사 대상을 좁혀나갔다. 특히 정보원이 제공한 정보에 기반해 알완이 2004년부터 2006년 사이 어디서 활동했는지 파악한 뒤에는 해당지역에서 발견된 IED로 대상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이윽고 분석관들은 1,300건의 IED 사건에 관련된 170개의 박스를 꺼내 검사에 들어갔다.

11월이 되면서 FBI 요원들은 알완의 지문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확보했다. 알완이 정보원에게 IED 제작법을 알려주겠다며 여러 장의 설계도를 그려준 것. 대충 그린 것이었지만 TEDAC분석관들이 어떤 종류의 IED에 집중해야하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충분했다.

또 12월에는 FBI 요원들이 알완의 과거를 더 캐낸 덕분에 바이지 마을 인근에서 발견된 IED를 중심으로 정밀 검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확실한 증거가 발견됐다. 2005년 바이지 마을 인근에서 발견된 IED에 찍혀있었던 지문 두 개가 알완과 일치한 것이다. 이듬해 1월 수크마는 워싱턴 D.C.의 FBI 본부에 조사결과를 통보했다. 더 이상 알완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현재 TEDAC에 도착하는 모든 IED는 최대 150일 이내에 분석이 완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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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는 알완을 즉각 체포하지 않았다. 대신 2011년 봄 내내 그를 계속 감시했다. 알완과 AQI 사이의 연결고리, 여타 IED 공격과의 추가적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5월이 되고,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다고 판단한 FBI는 작전 종결을 결정했다. 그리고 특수기동대(SWAT)가 출동, 가짜 무기 운반에 나섰던 알완과 그의 공범을 체포했다.

AQI의 IED 제작자가 켄터키주의 교외에서 체포됐다는 이 소식은 며칠간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더 큰 뉴스에 밀려 사라졌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잊혀지기는 했지만 알완의 체포는 분명 엄청난 승리였다. FBI는 그를 23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해외에서 미국인 살해 모의, 해외에서 미국인 대상의 대량 살상무기사용 모의, IED 제작 기술 전파 등 이 포함돼 있었다.

TEDAC의 증거를 본 알완도 유죄를 인정했다. 자신이 AQI 소속임을 밝혔고, 감형을 전제로 FBI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FBI가 알완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범이 종신형을 선고 받은 반면 알완은 40년형에 그쳤다.

칼에 의하면 TEDAC의 입장에서도 알완의 사례는 큰 소득이었다. 그로 인해 법의학 수사기법이 상당한 진보를 이뤘기 때문이다. 수크마 팀이 알완사건을 위해 개발했던 기술 덕택에 박스를 뜯지도 못한 채 대기 중이던 IED 증거물 수만 개의 신속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10년 이상 걸리는 방대한 양의 IED 분석이 5년 만에 끝났으며, 요즘은 모든 증거물이 TEDAC 도착 후 150일 이내에 분석 완료되고 있다.

“알완 사건을 통해 가급적 빨리 분석을 마쳐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죠. 저희가 신속히 IED를 처리할수록 미국과 다른 국가의 법집행 기관들이 IED 재공격을 받기 전 제조자들을 체포할 확률도 높아집니다.”

창고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흔적을 지운 것도 TEDAC에게는 상징적 사건이다. 현재 TEDAC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지원에 중점을 두던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 관심의 대상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필리핀이나 터키에서 발견되는 IED도 바이지 마을에서 발견됐던 알완의 IED와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다. 현지 법집행기관과 공조해 전 세계를 무대로 폭탄 제작자를 색출하고도 있다. 작년 9월 영국 런던경찰국이 런던 북서부에 거주하던 AQI의 폭탄 제작 용의자를 체포한 게 그 실례다. 2007년 이라크에서 발견된 IED를 분석한 TEDAC의 정보 덕분이었다.

콴티코 기지의 창고를 벗어나 헌츠빌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TEDAC가 활력을 얻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근무 환경이 좋아진데다 미 항공우주국(NASA)와 펜타곤이 이 지역에 대규모 연구시설을 운용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무엇보다 TEDAC는 그 자체로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전쟁의 양상이 대규모 전면전보다는 게릴라전과 테러리즘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도 TEDAC의 역할과 중요성이 지속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TEDAC가 더 많은 폭탄을 분석할수록 데이터의 양이 많아지고, 그만큼 테러리스트와 범죄자 색출의 효율성도 높아질 테니 말이다.

오늘날의 국제분쟁은 국경을 넘어 여러 전장을 왕래하는 국적 없는 전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TEDAC은 바로 이들에 대한 확실한 기록을 제시한다. 이 기록들은 그가 현재 어디에 있던 상관없이 과거의 행위를 알려준다.

리비아와 시리아, 이라크, 나이지리아, 예멘, 필리핀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10년 뒤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수도 있다. 세상은 계속 변하겠지만 TEDAC 만은 사람들이 모두 잊어버린 과거의 점들 을 이어 하나의 선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TEDAC의 책임자인 그레그 칼은 TEDAC의 주 활동무대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세계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BY Clay Di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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