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두 개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자신의 대선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시리아까지 더해 세 개의 전쟁을 후임 대통령에게 넘겨주게 됐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등으로 쌓아온 '오바마만의 외교적 유산' 남기기 작업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에서 아프간에서 미군의 완전 철군을 연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임기 내 완전 철군을 통해 양대 전쟁을 끝낸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2008년 대선 핵심 공약이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서도 2011년 말 미군을 완전히 철군시켰다가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 국가(IS)' 격퇴를 위해 지난해 3,000명을 재배치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이라크·아프간전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거쳐 차기 행정부까지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전쟁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며 차근차근 병력을 줄여왔다. 그는 아프간 침공 13년 만인 지난해 종전을 선언하고 미군 9,800명만 남기고 철군시키는 등 취임 당시 거의 18만명이던 이라크·아프간 복무 군인을 1만3,000명 수준으로 줄였다.
하지만 이라크 철군 이후 현지 치안 불안, 종파 간 갈등 등으로 IS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태가 꼬였다. 아프간 철군 연기도 '이라크의 교훈' 때문이라는 게 뉴욕타임스(NYT)의 설명이다. 미군 철수 때는 아프간도 또다시 탈레반·알카에다 등 테러 조직의 근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 국무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를 지낸 제임스 도빈스는 "이라크에서 가장 놀라웠던 일은 IS의 등장이 아니라 이라크 정부군의 붕괴였다"며 "(철군) 시간표가 지켜진다면 아프간에서 심각한 위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철군 연기는 일종의 고육지책이지만 오바마 외교정책에도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더구나 오바마 대통령은 IS 격퇴를 위해 시리아에서 반군 지원 작전과 공습까지 벌이면서 '시리아 수렁'까지 빠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 지원을 위해 반군을 공습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대리전 위험이나 직간접적인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커진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3대 전쟁에서 승리할지, 언제 철군할지가 모두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부담을 떠넘기면서 후임 대통령이 의회와 국민들 간의 철군 찬반 갈등, 중동 정세 불안 등에 시달리며 국정운영의 에너지를 소모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바마는 임기 초반부터 종반까지 전쟁을 수행한 몇 안 되는 미 대통령 가운데 하나"라며 "각각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끝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같은 (역사적) 평가는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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