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IT기업 소프트뱅크 Sof tbank가 출시한 ‘페퍼 Pepper ’는 가정과 사무실에서 이용할 수 있는 로봇이다.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페퍼는 말, 목소리의 음조, 얼굴 표정, 몸짓 언어 등을 통해 사용자의 감정을 읽은 후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을 한다. 손과 자세의 표현력이 특히 눈에 띈다. 로봇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은 과거에는 분명 옳았지만 이제는 틀렸다.
가장 위험부담이 크고, 정교하고, 부담스러운 업무, 예를 들어 수술은 영원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한 연구진은 현재 암세포 조직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로봇을 조련 중이다. 현재 의료용 로봇이 인간 의료진의 도구에 불과한 것과는 달리, 이 로봇은 독자적으로 수술을 진행한다. 기술 발달이 대단하긴 하지만 전체 일자리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을 법하다. 외과의사는 흔치 않은 직업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난 5월 독일 다임러 Daimler는 네바다 주에서 자율주행 세미트레일러 트럭의 시험주행을 시작했다. 트럭 운전사는 현재 290만 명으로 미국 남성 직업 가운데 종사자 수 1위에 올라있다. 여성도 안전하지는 않다. 기술은 사무직 업무도 시나브로 침범하고 있다. 행정보조원은 현재 300만 명으로, 미국 여성 직업 가운데 종사자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근로자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 우리 인간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최근 대중문화의 인기 주제이기도 하다. 케이블 채널인 AMC는 최근 ‘휴먼스 Humans’ 라는 드라마의 방영을 시작했다. 소재는 소름끼칠 정도로 인간을 닮은 인간형 로봇 신스 synth에 잠재된 가능성과 위험이다. 할리우드에게 2015년은 로봇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엑스 마키나 Ex Machina(인간형 로봇이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어 살인을 저지르고, 인간으로 사회에 잠입한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Terminator Genisys(인간형 로봇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다시 한 번 세상을 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Avengers: Age of Ultron(인간형 로봇이 인류 몰살을 시도한다)’ , ‘ 채피 Chappie(악당이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된 인간형 로봇을 공격한다)’의 줄거리를 보라. 이야기 전개는 늘 똑같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진 다음 인간을 넘어선다.
인간이 불안해할 이유는 충분하다. 경제에서도 이상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핵심노동인구(역사적으로 가장 실업률이 낮은 계층)의 취업률이 역대 최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표 참조). 요인은 여러 가지다. 경제학자 대다수는 기술 발달을 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공장, 사무실, 건설 현장, 마트 계산대 등 다양한 곳에서 기술이 인간보다 더 많은 일을 더욱 잘 수행하고 있다.
기술적 실업의 두려움은 기술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늘 근거 없는 공포로 밝혀지곤 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기술 발달처럼 일자리를 몇 배로 늘리고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요인은 별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경제학자와 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 기술이 더 이상 혜택을 가져다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로런스 H. 서머스 Lawrence H. Summers 미 전 재무장관이 “이 문제가 우리 시대를 결정짓는 경제적 요인”이 될 것이라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 인간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까? 정답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잘못된 방식으로 답을 찾아왔다. 우리는 흔히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해왔다.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이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컴퓨터가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섣불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틀린 예측의 역사는 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중반의 컴퓨터 번역 기술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연구자들은 컴퓨터 번역이 그 수준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다는 데 매우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구글이 무료로 제공하는 번역 서비스는 인간 사용자의 피드백에 힘입어 점점 개선되고 있다. 스카이프도 무료 실시간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IT의 허버트 드레이퍼스 Hubert Dreyfus 교수는 1972년 저서 ‘컴퓨터의 한계(What Computers Can‘t Do)’에서, 컴퓨터 체스 실력이 당시의 평범한 수준에서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IBM의 수퍼컴퓨터 딥 블루 Deep Blue는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Garry Kasparov를 꺾었다. 2004년 출간된 명저 ‘노동의 새로운 분업(The New Division of Labor)’의 공동저자 프랭크 레비 Frank Levy와 리처드 J. 머네인 Richard J. Murnane도 주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가 짧은 순간 얼마나 복잡한 판단을 내리는지를 설명하면서, 컴퓨터가 이를 수행하기란 극도로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6년 후 구글은 자동주행 자동차를 선보였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는 2007년 ‘스스로 다 닦은 접시를 내놓는 식기세척기나 계단을 오르는 진공청소기가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 환경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신체를 움직이는 건 공학적으로 놀랄 만큼 복잡한 행위’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로봇 개발업체 아이로봇 iRobot이 가구, 애완동물, 어린아이를 건드리지 않고 혼자 이동하는 진공청소기와 물청소기를 출시했다. 아이로봇은 수요만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제품도 내놓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 독일의 카를스루에 기술연구소(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가 개발한 아르마르 IIIa Armar IIIa 로봇은 식기세척기를 (채우거나) 비울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례들의 공통적인 패턴은 무엇일까. 운전처럼 인간이 별 노력 없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경우에도,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선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최고의 석학이 이를 깨닫고선 컴퓨터가 이를 흉내 내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컴퓨터의 해당 과제 습득은 시간 문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때론 그 누구의 예상보다도 빨리 성공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컴퓨터의 처리속도가 2년마다 2배 증가한다’ 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이 개념대로라면, IT기술은 40년 내에 수백만 배향상될 수도 있다. 컴퓨터과학자 빌 조이 Bill Joy는 도보보다 100배 빠른 여객기가 세상을 바꿨다는 점을 즐겨 지적하곤 한다. 인간의 그 어떤 경험도 100만 배 빠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알고리즘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요즘 컴퓨터는 예전보다 적은 에너지로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기계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반복해서 저질러왔다.
그렇다. 인간이 미래에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알고 싶을 때, 컴퓨터의 한계를 파악하려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보단 컴퓨터가 할 수 있더라도, 인간의 본성과 일상생활의 현실적 요인을 고려해 인간이 수행하는 게 더 좋을 활동이 무엇인지를 찾는 편이 더 낫다.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
인간의 역할로 인식되는 영역 중 한 가지 큰 범주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활동’ 이 있다. 한가지 좋은 예가 법정 판결이다. 아마 인간 판사가 앞으로도 오랜 동안 이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러나 사법 부문에선 ‘인간 대 컴퓨터’의 구도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이스라엘 등 몇몇 국가에선 판사가 가석방을 결정한다. 이스라엘의 한 연구진은 가석방 결정이 점심이라는 ‘ 인생의 중요 행위’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살펴보았다. 판사들은 매일 재소자의 가석방 신청 중 약 35%를 허가 하지만, 점심 식사 전 2시간 동안은 이 허가율이 꾸준히 떨어졌다. 점심 시간 직전에는 거의 0%에 가까웠다. 점심 식사 직후에는 65%를 기록하고, 이후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재소자 입장에선 판사가 자신의 가석방 신청서를 점심식사 직전과 직후 중 어느 때에 읽느냐에 따라 감옥에서 보내는 기간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재범 가능성 예측은 사실 인간 판사나 배심원단보단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의 정확성이 훨씬 높을 수 있다. 때문에 가석방 신청을 컴퓨터 분석으로 심사하면 더욱 효과적이면서도 인간의 변덕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하지만 컴퓨터가 판사 대신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날이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컴퓨터의 능력과 상관없이, 중요한 결정에는 누군가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CEO, 장군, 정부의 각급 정책결정자 등 책임을 지는 지위는 앞으로도 계속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공동의 목표 설정을 위한 협력은 인간의 몫
인간이 미래에도 여러 영역에서 컴퓨터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는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도 들어있다. 컴퓨터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서가 아니다. 현실, 특히 조직생활의 현실에선 문제가 무엇이고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생각이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인간이 직접, 특히 여럿이 모여 답을 찾아내야 한다. 조직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의견을 반영해야 할 당사자의 수가 많고, 개인보단 그룹의 문제 해결 능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심층적 대인관계 상의 필요는 인간만이 충족 가능
앞에서 언급했던 것들보다 더 중요한 ‘인간 전용’ 범주가 있다. 표현하기조차 쉽지 않은 인간의 근본적 특성 때문에 기계에 위임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인간의 두뇌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인간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굳혀왔다. 이런 사회적 본성 때문에 인간은 문제를 해결할 때 다른 인간과 협력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이런 행동이 바로 10만 년 전 아프리카의 대초원에서 인류가 생존한 비결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여러 능력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인간다운 능력으론 타인을 세심하게 살피는 능력, 스토리텔링, 협업,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 관계 맺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감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 뛰어난 개인들이 모인 그룹은 효율성도 높다는 명백한 증거도 있다. 기계가 아무리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인간의 상호작용 대상은 기계가 아닌 다른 인간이다. 페퍼 로봇이 아무리 흥미로워도, 우리는 로봇과의 상호작용 능력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하지는 않았다.
미래에는 이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해 컴퓨터가 올바른 정답을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 리더를 따르길 원한다. 진단을 컴퓨터가 내렸더라도, 환자는 진단 결과에 대해 인간 의사와 상의를 하고 싶어한다. 내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길 원하는 심리 탓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계약을 하기 위해 협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목소리의 떨림이나 팔짱을 끼는 행동을 눈치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을 직접 바라보며 대화할 수 있는 인간과 협상 하는 걸 선호한다.
미래에는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보는 행위가 상징성이나 빈도 수 측면에서도 경제적 가치가 높은 임무의 핵심으로 꼽힐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직업의 세계에서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행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옥스퍼드 경제 연구소(Oxford Economic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용주는 앞으로 5~10년 동안 업무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비즈니스 감각, 분석, 손익관리 같은 컴퓨터가 대체할 수 있는 좌뇌적 사고 능력을 꼽지 않고 있다. 이들은 관계형성, 협업, 창의적 협동, 브레인스토밍, 문화적 섬세함, 개성이 다른 직원들을 관리하는 능력 등 인간관계와 관련된 우뇌적 능력을 원했다.
이 조사 결과는 미국인의 직업분포가 70년대와 비교해 현재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대규모 데이터 분석 결과와도 일치한다. 전체 일자리에서 교육과 보건서비스 관련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배 이상 늘어 가장 큰 성장률을 보였다. 전문직 및 비즈니스 서비스 부문은 80% 가량 늘었고, 레저와 숙박은 50% 대 성장률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 간의 교류를 기반으로 한 산업에서 일자리가 대규모 창출된 셈이다. 오라클
Oracle의 메그 베어 Meg Bear 부사장이 21세기의 핵심 업무능력으로 ‘공감’을 꼽은 이유라 할 수 있다. 다른 연구 결과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1년과 2009년 사이 미국의 거래 관련 일자리 (은행 창구 직원, 계산대 직원 등)는 70만 개, 생산 관련 일자리는 270만 개 감소했다. 그러나 의사· 교사 등 타인과 교류하는 일자리는 480만 개나 증가했다. 이런 흐름은 현재진행형이다. 매킨지 연구소는 교류 관련 일자리가 ‘선진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직업군’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새삼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윌리엄 H. 보서트 William H. Bossert교수는 하버드대 전설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수학과 생물학에 폭넓은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70년대 초반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버드대 역사상 최초의 컴퓨터과학 강좌를 개설한 선각자였다. 보서트 교수의 마지막 강의 주제는 ‘ 컴퓨터의 미래와 그로 인한 파급 효과(the future of computi ng and its likely effects)’ 였다.
당시 인텔은 첫 프로세서 제품을 막 출시한 상황이었고, 사람들은 컴퓨터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보서트 교수는 컴퓨터가 인간의 일자리를 없애긴 하겠지만, 그 덕분에 인간이 자신의 본질,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컴퓨터에 일자리를 뺏길까 두려운가. 뺏길 수도 있지만 그걸 순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랜 변화 끝에, 사고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가 대량으로 컴퓨터에 넘어가고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업무인 상호 교류가 인간의 몫이 되고 있다. 그런 모습이 광범위한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업혁명(기계 시대)의 여명기를 기점으로, 기계적인 행동은 인간 성공의 한 가지 필수 요소가 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공장의 육체노동과 사무실의 정신노동 모두가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업무를 지향했고, 노동자들도 이를 충실히 따랐다. 헨리 포드는 “나는 손이 필요할 뿐인데, 매번 머리가 딸려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계가 해야 할 일이지만, 당시 기계는 수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계는 점점 진화했다. 처음에는 느렸지만 IT의 발달이 점점 가속화되면서 점점 빨라졌다. 이제는 기계에 어울릴 일은 거의 다 기계가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훌륭한 성과’라는 말의 정의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이 말이 기계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이제는 사람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의 본질에 충실해야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조건으로 단순 지식이 아닌 성격적 특성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래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커리어 설계에 대한 기존의 관념도 재검토할 필요가 생겼다. 학생들이 과학·기술·공학·수학(일명 STEM)과 프로그램 코딩 능력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그 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금까진 분명 올바른 충고였다. 대학 졸업자 연봉순위 상위 10개 전공 중 8개가 공학 관련이었고, 앞으로도 공학은 경제에 꼭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월급이 높거나 금전적 가치가 큰 것은 아니다. IT 기술이 점차 고난이도 업무 능력까지 장악하게 되면 금전적 가치는 다른 방면으로 이동할 것이다. 물론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천재보다 관계 형성, 브레인스토밍, 협업, 리더십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경제구조의 변화로 인해 인간 능력의 가치가 재평가되는 현재의 흐름은 장기간의 변화가 만들어낸 최근의 트렌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는 지난 수백 년간 삶의 질을 향상 시킨 새로운 업무능력을 익혀왔고, 이는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인적 교류 능력은 다른 능력과 대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수 공부, 선반 다루는 법, 블로그 사이트 ‘워드프레스 WordPress’에서 블로그 만드는 법을 배우듯 사람 대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적응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평균적으론 남성보다 여성의 대인관계 능력이 우수하다. 공감능력과 세심함을 측정해 보면 보통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점수를 나타낸다. 대인관계 능력이 가장 뛰어난 집단이 성과도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만큼, 여성이 많은 집단이 성과도 더 높을 수 있다는 걸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전원이 여성인 집단이 한 명이라도 남성이 섞인 집단보다 더 높을 효율성을 보였다.
그렇다고 남자가 쓸모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성별이라도 대인관계 능력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는 성인이 되기 전, 대인관계능력 향상 훈련( 한 번이라도 받아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을 받지 않았을 때부터 드러난다. 누구나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이지만 어려워하는 사람도, 원치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과 관련된 부분을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한가지 사례를 보자.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은 IT 운영을 맡을 임원을 새로 영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사람을 잘못 고른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새 임원이 온 지 약 1주일 후, 최고인사책임자가 그에게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었다.
그 임원은 “여기 사람들 좀 이상하던데요”라고 답했다. “복도에서 저한테 말을 걸더군요!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묻는데, 심지어 진심이 더라니까요! 전 어서 사무실로 가서 일하고 싶은데 말이죠.” IT 전문가가 책상 앞에 혼자 앉아 있고 싶어하는 건 그리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전형적인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에선 큰 문제였다.
항공업계는 세상에서 가장 암울한 업계 중 하나다. 사우스웨스트는 경영진이 내외부적으로 인간 간 상호작용의 가치를 이해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머, 에너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는 직원들의 능력이 없었다면 겉으로 봐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고객 경험으로부터 가치를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고객과의 대면 없이 동료만 상대하는 직원들의 경우, 여느 항공사가 그렇듯 업무가 결코 한가롭거나 편안하지 않다. 경쟁사들을 상대로 한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농담을 던지는 직장 동료들의 존재는 이탈자 없이 조직이 계속 전진하게 해 주는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니 인간관계에 관심 없는 직원들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해당 직원 주변 인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더 멀리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퍼지지 않는다 해도 문제가 되긴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사우스웨스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중요한 원인 어쩌면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기업문화다. 그 문화 때문에 3,000명 채용계획이 공표되면 이력서가 10만 장씩 들어온다. 젊은 신입사원이 출근첫날 앞에서 언급한 그 임원을 만난다면, 사우스웨스트의 기업문화가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분이 상하고, 화도 나서 이를 퍼뜨릴 것이다.
결국 사우스웨스트의 경영진은 새 IT 담당 임원이 자질은 뛰어나지만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임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이 임원 같은 사람들의 상황은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과거에는 공장과 사무실 등 중산층의 안정적인 일터에 이들의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최신 기술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대인 관계를 중시하는 흐름이 계속되면서, 사람을 대하는 데 서투르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사람은 신규채용에서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 기존직원이라도 그런 사람은 조직에 해가 되니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Cleveland Clinic도 비슷한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이 병원은 지난 5년간 전 직원 및 용역 직원의 공감 및 대인관계 형성능력 향상을 위해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 선구적인 프로그램은 놀랄 만큼 효과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제임스 멀리노 James Merlino 박사에 따르면, 클리닉은 직원 중 상당수가 일을 잘못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조직에 흡수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조직이나 목표 달성을 지원하지 않는 무관심한 직원 한 명은 전체 부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는 직원들은 주변에 무관심한 직원이 있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인간의 경험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선 잘못된 사람 한 명도 좌시해선 안될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 진행 중인 가치 창출 방식의 변화는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1만 2,000년 전 농경이 시작된 이후 18세기 중반 산업혁명 태동기까지, 대부분의 인간이 꼭 갖춰야 할 기술적인 면면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후 약 100년간, 서구 국가가 산업 경제로 이행하면서 기술의 가치도 그에 따라 진화했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년 빨라지면서 공감, 협업, 창조, 리더십, 인간관계 형성 능력의 가치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기업, 정부, 교육제도 혹은 대부분의 개인이 따라잡기에 너무 속도가 빨라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 이제는 개인이 보유한 지식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성격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 등 가치의 본질적 특성이 변화하고 있다.
경제가 진화를 거듭한 지난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외부로 눈을 돌려왔다. 노인이나 학교, 교육자, 고용주 등이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내고, 이를 가르칠 수 있는 이들로부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고자 했다. 하지만 역사상 최초로 안으로도 눈을 돌려야 하는 때가 왔다. 미래가 필요로 하는 기술의 구성 요소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 간 교류의 기술을 배우는 게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충족 기준도 오를 것이다. 때문에 배워야 할 내용의 난이도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이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도 계속 자기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미래가 어둡다고 느낀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좋은 소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지워진 임무는 ‘인간적 본질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과거에도 변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과거와 비교해 보면 의미 있는 변화다. 선진국에선 300년간, 여러개 도국에선 그보다는 짧아도 상당 기간 동안, 성공이란 말은 기계적인 일을 기계보다 잘 하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기계는 기계적인 업무에서 인간을 넘어서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선 최소한 새롭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기회가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에 우리의 미래를 거는 행위는 위험하고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려워 말라. 관점을 바꾸고,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자. 미래가 필요로 하는 곳은 변함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가장 심층적인 관점에서 보면, 필요한 것은 이미 마음 속에 있다. 이제 행동은 당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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