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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마션

식물학자의 화성 생존기





일단 영화 얘기부터 하자. 영화 ‘마션’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화성 자체의 모습에는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영화 개봉을 기다린 듯 때마침 미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에서 액체상태의 물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슈로 부각됐음에도 말이다.

이는 이미 다수의 탐사선과 로버가 보내온 영상에 의해 화성의 실제 모습이 공개돼 신비감이 많이 사라진 탓이리라.

필자 역시 화성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 때문에 영화에 주 목했다. 스콧 감독이 누군가. 블레이드 러너와 에이리언1, 프로메테우스 같은 수작을 남긴 SF영화의 대가가 아닌가. 게다가 주인공이 맷 데이먼이니 기대감이 커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영화 마션은 기대에 못 미쳤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주인공의 유머와 ‘그래비티’에 이어 또 다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중국이 잔상으로 남아 스토리에 빠져들기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관을 나서며 원작을 읽어 봐 야겠다고 결심했다.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생존기
“아무래도 ×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됐다.”

원작은 이처럼 다소 노골적이면서도 자조 섞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 번째 유인 화성탐사선 ‘아레스 3호’의 대원들은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후 본격 탐사에 나선다. 하지만 착륙 6일 만에 예기치 못한 시속 175㎞의 초강력 모래폭풍이 불면서 임무는 중단되고, NASA의 복귀 명령이 하달된다. 그렇게 모래 폭풍을 뚫고 대원들은 화성 탈출에 성공한다.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마크 와트니 박사만 빼놓고 말이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될 줄 알았던 한 달이 겨우 엿새 만에 악몽으로 바뀌어 버렸다. (…) 나는 화성 6일째 죽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은 분명히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잘못이 아니다. 조만간 나의 장례가 치러질 것이고 위키피디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이렇게 나 올 것이다.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사망한 유일한 인간이다’라고.”



그렇게 최초의 화성 사망자로 남지 않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지구에 구조를 요청할 수도, 화성을 떠날 수도 없는 그가 믿을 것은 화성 곳 곳에 흩어져 있는 NASA의 기술력과 자기 자신의 식물학적·기계공학적 지식, 그리고 어떤 위기에서도 수그러들지 않는 유머뿐이었다. 참고로 원작에서도 마크는 정말 끈질기게 유머를 구사한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공기와 물과 식량이다. 때문에 마크는 스스로 공기와 물을 만들고, 감자까지 생산해낸다.



2억4,800만㎞밖 외톨이의 고단한 삶
영화에선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았지만 화성에서의 생존은 정확한 계산과의 싸움이다. 모든 것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계산하고 대비해야 한다. 지구에서야 계산이 틀리면 다시 계산해 오차를 바로잡으면 그만이지만 화성에서의 계산 실수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크는 끊임없이 계산한다.

“나는 하루에 1,500㎉를 섭취해야 한다. 이미 확보된 식량은 400일분이다. 아레스4호가 도착할 때까지 약 1,425일을 버티려면 하루에 얼마의 칼로리를 만들어내야 할까? 답은 약 1,100㎉다. 농사로 하루 1,100㎉를 생산해야 한다.”



계산이 끝난 뒤 남은 것은 노동이었다. 마크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막사 안팎을 오가며 일을 한다. 주말과 휴일은 언감생심이다. 끊임 없이 만들고, 부수고, 고치고, 이동하고, 싣고, 내리고를 이어간다.



“나는 한시적으로나마 생존법을 알아냈고, 이곳의 섭리에 익숙해졌다. 생존을 위한 필사의 투쟁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고, 농작물을 돌보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점심을 먹고, 이메일에 답장하고, 저녁을 먹고, 수면을 취한다. 현대 농부의 삶과 다르지 않다.”

화성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산소 발생기, 동력 추진기, 물, 통신, 탐사, 이동, 심지어 마지막 랑데부까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한다. 그의 귀환을 돕기 위해 NASA도 같은 일을 한다. 이 책이 단순한 SF소설을 넘어 과학교양서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같은 노력과는 별도로 화성에 혼자 남아 죽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한 힘은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유머였다. 아무래도 작가 앤디 위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낙관적 유머가 필수 생존 조건의 하나로 여긴 것 같다. 여기에 누군가를 도우려는 인간 본연의 본능이 더해지며 그의 생존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자 원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인류가 수 세기 동안 꿈꿔온 행성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노벨상보다 마션이 부러운 이유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필자는 진짜 괴짜 과학자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저자 앤디 위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앤디 위어의 부친은 입자물리학자, 모친은 전기기술자였다. 또한 어렸을 적부터 아서 C. 클라크나 아이작 아시모프 등의 작품을 탐독했고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다가 15세의 나이에 샌디아국립연구소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한 실로 꾀짜스러운 경력의 소유자다.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2’ 게임 개발에도 참여했던 이 천재 프로그래머는 어느 날 취미 삼아 재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자신의 블로그에 ‘마션’을 연재하기 시작하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전자책을 출판한 것이 원작 소설의 탄생 배경이다.

영화가 개봉할 무렵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맘때가 되면 국내 과학자들은 한없이 작아진다. 일본은 노벨상을 20여개 이상 받았는데, 우리는 아직 유력한 후보조차 없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연례행사처럼 나온다. 올해도 그랬다.

하지만 필자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보다 괴짜 과학자가 마션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그 책이 영화로 제작되고, NASA라는 걸출한 국가연구기관이 홍보에 열을 올리는 문화가 더 부럽다.

화성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전 국민적 관심이 있어야 중단 없이 추진할 수 있다. 어쩌면 미국 혼자로는 버거울지도 모른다. 책,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진 마션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화성 탐사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데 상당히 기여할 것이라 여겨진다.

아레스3호 탐사대가 착륙했던 아시달리아 평원을 출발해 마우르스 협곡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스키아페렐리에 도착하기까지 3,200㎞의 대장정. 화성은 고사하고 아직 달조차 잘 모르는 필자도 책의 맨 앞장에 있는 화성 지도에 경로를 그려가며 마크의 탈출 과정을 숨죽여 지켜봤다. 언젠가 화성에 사람의 발자국이 찍힐 때쯤 이 책의 지도를 다시 펴볼지도 모르겠다.

25억 달러
NASA가 큐리오시티 로버를 화성에 보내기 위해 사용한 비용. 즉 유인 우주탐사는 과학기술에 더해 막대한 돈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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