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문화는 주류문화에서 벗어난 하위문화(sub-culture)를 의미한다. 고상한 주류문화가 채울 수 없는 가려운 구석을 긁어줘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특히 기존 틀을 깨부수고 문화의 빈틈을 메우기 때문에 전체 문화에 다양성을 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지난 196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히피 문화'는 대표적인 B급 문화다. 꽉 막힌 사회질서를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을 주장한 히피는 자유의 상징이 돼 20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반전운동을 전개하며 정치세력으로 발전하는가 하면 '우드스톡' 등 세계적인 록페스티벌을 탄생시키며 새로운 문화의 등장을 알렸다.
'콘텐츠 강국' 일본의 힘도 B급 문화에서 나온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지만 '오타쿠'라는 용어는 원래 하위문화를 깊숙이 추종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취미에 열중하고 각자 세상을 침범하지 않는 오타쿠 문화 덕분에 일본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일본 콘텐츠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은 이런 오타쿠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창의성의 원천이면서 기성질서에 저항하고 균열을 찾아 개혁시킨다는 점에서 B급 문화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며 "B급 문화의 움직임이 얼마나 활발한지가 (해당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생명력 있고 역동적이고 지속력이 있는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런 B급 문화는 비주류의 벽을 넘어 'A급'으로 화려하게 귀환하기도 한다. 1960년대 히피, 1970년대 '펑크' 등 시대를 상징하는 B급 문화는 주류 문화계 영감의 원천이 됐다. 쿠엔틴 타란티노, 박찬욱 등 영화감독은 '피가 튀는 거친 화면'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 B급 영화의 감성을 표방해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도 한때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모든 B급 문화가 주류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특유의 저급함과 거친 모습을 버리지 않고서 비주류라는 한계를 벗어 던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항ㆍ창조 등 'B급 정서'는 유지하되 포장만큼은 품격을 높여야 비로소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전씨는 "B급 정서와 가치관을 B급처럼(수준 낮게) 만들어 대중에게 어필하려고 하면 안 된다"며 "제대로 된 '만듦새'를 갖춰야, 즉 B급 정서를 포장하는 수준을 높여야만 수용자를 상대로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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