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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경제 더욱 심각(체감경기)
입력1997-03-17 00:00:00
수정
1997.03.17 00:00:00
◎자동차/밀어내기식 무이자할판 한계 비상경영 선포『통상 1∼2월이 비수기인점을 감안해도 올해는 심각하다. 전체적인 시장의 파이가 줄은 느낌이다.』
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은 최근의 자동차시장 동향을 이렇게 요약했다. 각사 마케팅 담당자들도 지난해 밀어내기식 무이자할부판매에 힘입어 전년도 수준은 유지했지만 『올해는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기도 힘든 것 같다』고 밝힌다.
특히 올 1월 노동법 파문에 따른 각사의 파업여파로 「1년=11개월」이라는 자동차업계의 달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지난 2월까지 자동차 판매는 18만5천4백76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6.9%가 줄어들었다.
자동차에서 체감경기가 얼어붙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예는 많다. 가능한 자동차 구입시기를 늦춰 사용기간이 길어지고 있는게 그중 하나. 한국능률협회컨설팅과 대우자동차가 전국의 남녀 5천6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소비자조사를 실시, 최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들이 새차를 사기전에 탔던 승용차(중고차는 제외)를 사용한 기간은 평균 47개월로 95년의 43개월보다 4개월 늘어났다. 이는 또 지난 89년 조사때의 평균사용기간인 34개월에 비해서는 13개월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판매부진과 함께 이 기간이 50개월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은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이다. 보통 3월부터 자동차시장이 성수기에 들어가지만 호재는 없고 악재만 기다리고 있다. 4월부터 노조에서 춘투에 들어가는데다 5월 1일부터 무상보증기간이 1년 2만㎞에서 2년 4만㎞로 늘어남에 따라 소비자들도 구매를 5월 이후로 연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따라 현대 기아 대우 등 자동차업계는 잇따라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있다. 더구나 2월중 예약도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의 경기불안에 대한 인식은 현대가 지난 80년초 이후 15년만의 위기론을 들고 나왔고, 김영귀 기아자동차 사장은 『앞으로 판매가 시원찮을 경우 정기월급도 지연지급 하겠다』는 선언, 라노스, 누비라 등 잇따라 신차를 내놓고 있는 대우도 2월말 현재 라노스 재고가 1만대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지는데서도 확인된다.<박원배·정승량>
◎중소기업/한보사태 이후 1,152개사 부도/불안한 정국 정부 방임도 한몫
최근 중소기업 경기는 침체국면을 넘어 무기력증이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중소기업자들이 일선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물론이고, 각종 통계수치를 근거로한 지수경기에서 조차 중소기업 경기는 밑바닥을 기고 있다.
한국은행의 당좌거래정지업체 현황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월에만 1천1백15개의 부도업체가 발생했으며, 2월이후 지난 12일까지도 1천1백52개의 부도업체가 발생하는 등 부도업체가 양산되고 있다. 또한 기협중앙회(회장 박상희)가 조사한 1월중 중소기업동향에 따르면 생산, 조업, 고용 등 전부분이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일선에서 느끼는 경기불황은 더욱 심각하다. 구조적 경영여건 악화라는 내부적 요인에 한보사태 후유증, 예측 불가능한 정국전개 등 외부적 요인까지 겹쳐 자생으로는 회복불능이라는 게 중소업계의 자체진단이다. 고금리 고임금 고지가 등 3고외에 고비용·저효율구조로 제조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인들은 비전불재는 물론 아예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다.
실제 충남에서 금속가공업을 영위하고 있는 B금속의 L사장은 『요즘들어 만나는 사람마다 아직도 제조업을 하고 있느냐며 안됐다는 표정을 지을 때면 기업가로서의 자부심을 고사하고 계속 제조업을 해야할지 회의가 든다』고 말할 정도다.
설상가상으로 한보사태 이후 전개되고 있는 정부의 대중소기업 방임도 중소기업 불경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들어 김현철씨 비리사건, 개각, 신한국당대표위원 임명 등 대형 정치사건이 잇따르면서 아예 한보사태 수습건은 관심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한보사태는 시간에 묻혀 버린 뇌관으로 오는 4∼5월이면 이에따른 부정적 효과가 반드시 가시화될 것이라는게 중소기업인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제도금융권은 정부의 시책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곤경에 빠진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사채시장에서도 한보와의 거래관계가 노출되기만 하면 대출했던 돈도 회수하는 상황이어서 중소업계 자금대란까지 예상되고 있다.
불안정한 정국의 지속도 중소기업 불황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올 하반기중 어느정도 대선구도가 잡혀 정국이 예측 가능한 수순을 밟게 되면 대기업의 투자마인드가 살아나고, 중소기업도 비로서 시설투자와 함께 판로모색을 기하는 등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지만 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중소기업인은 드물다. 돌파구 마련을 위한 하나의 계기는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의 판세를 본질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더 우세하다.
이같은 상황의 극복과 관련, 중소업계는 생산성과 균형을 이루는 임금체계의 구축과 함께 특히 산업자금 조달을 위한 무기명 중소기업채권 발행을 주장하고 있다. 즉 미실명자금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중소기업 긴급경영안정자금 및 시설투자자금으로 전환해야만 그나마 경기회복을 위한 「숨통」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정구형>
◎가전/심각한 판매난… 재고처리 급급
1가구 2기기이상을 보유함으로써 포화상태에 빠져있는 가전업계는 지표경기가 가리키는 이상으로 수요격감 속에 불황의 골이 깊이 패여있다.
대표적 가전업체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우전자·LG전자 등은 구체적인 매출실적을 공표하기를 꺼려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판매난을 겪고 있다. 일부업체들은 한동안 중단했던 냉장고·캠코더 등의 방문판매를 재개했으며 재 떨이를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명품플러스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품목이 매기부진속에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냉장고나 세탁기도 신형제품을 내놓아 판로개척에 주력하고 있으나 민간소비의 감소로 전자레인지나 VCR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남짓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급이 거의 끝난 카메라는 더욱 심각하다. 일부 업체는 어차피 팔리지 않는것 재고라도 없애자는 차원에서 절반값에 땡처리를 하고 있으나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전업계는 경기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선다해도 앞으로 3∼4년간은 고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이의춘>
◎의류/“대규모 할판준비 침체 타개”
『이번 겨울시즌동안 의류전문 대기업들은 판매율이 60% 언저리에 머물렀을 겁니다.』
의류는 마치 경기 선행지수처럼 본격적인 경기흐름을 예고하는데다 최종소비재라는 점때문에 경기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신사복업체의 한 임원은 겨울시즌 실적분석이 최종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임에도 불구, 최근 의류경기를 이같이 단적으로 설명했다.
지난해 중반부터 본격적인 불황기에 접어든 의류경기는 겨울시즌을 지나 봄시즌이 되어서도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웃을 날이 없을 것 같다』고 이번 봄시즌을 전망했다. 의류업체들은 3월말∼4월말 봄시즌 제품이 본격적으로 구매되지만 봄시즌 초반의 매출이 극히 부진한데다 벌써부터 일부업체들이 대규모 할인판매에 나서고 있다며 우울한 표정이다.
복종별로는 숙녀복보다는 신사복이 예년에 비해 더욱 움츠러 들었고 주력 브랜드보다는 영업 역량을 집결하지 못하는 비주력 브랜드가 정도가 더 심한 편. 업계는 브랜드재정립, 서비스활동강화 등 기획력, 영업력강화를 통해 불황타개에 나서고 있으며 반짝경기, 틈새시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문주용>
◎석유화학/국제시황 호조불구 불황 유탄
석유화학산업은 최근 PVC를 비롯한 주요 제품의 국제가격이 상승하는 등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올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산업경기불황의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합성수지 제품이 최근 품귀현상을 보이는 등 시장전망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내수판매 물량 증가는 신통치가 못하다. 이는 중소 플라스틱업체 등 거래선들이 재고물량을 최소화하고 필요한 물량만을 주문해가고 있기 때문. 이 때문에 유화업체들은 최근 실제 판매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재고가 쌓이고 있다. 거래업체들이 가지고 있을 재고를 원료업체가 대신 갖고있는 셈이다. 또한 기업들의 불황대응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불경기 체감지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유화업체들은 올 예산편성에서 비용을 대폭 줄이고 한계사업 정리와 전진배치 등을 단행하고 있다. LG화학의 K대리는 『이달들어 대리급 이상에 지급하던 휴대폰을 회수하자 경기불황을 피부로 느끼겠다』고 말했다.
또 한화종합화학에 근무하는 P차장은 『최근 한계사업 정리를 단행하면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대거 영업부 등 일선으로 전진배치는 등 어수선해지는 회사분위기가 어려워진 산업경기를 대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민병호>
◎광고/10명중 7명꼴 감원·명퇴 불안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99.1%)은 광고주의 대폭적인 광고비 삭감, 광고수주량 감소 등의 영향으로 불황을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황은 연말까지(56.4%), 길게는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한국광고연구원과 중앙마케팅리서치가 서울지역 소재 광고회사 및 관련단체 임직원 1백1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9.1%가 현재 불황을 몸소 느끼고 있으며 과반수이상(62.7%)이 올 경기가 지난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같은 불황으로 「자신과 비슷한 직급의 직장동료들이 조기퇴직이나 명예퇴직을 당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10명중 7명이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 명예퇴직 등 감원조치로부터 불안해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감원비율에 대해선 감원가능성을 체감하는 응답자의 90.4%가 30%이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변화에 따른 광고예산 운영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7.3%가 경기변화에 관계없이 꾸준히 광고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불경기에 오히려 광고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25.5%)도 상당수에 달했다.<홍준석>
◎개인서비스/택시수입 급감 목욕탕 한산
개인서비스업계도 찬바람이 거세다.
『다들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들이지만 진짜 이런 불경기는 택시 핸들 잡은지 10년만에 처음입니다. 하루 주행거리가 2백㎞도 채 안되니 밥인들 제대로 먹고 살겠습니까.』
서울시청 후문 쪽 모범택시 승강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모범택시 기사 정석기씨(48)는 얼마전까지만해도 하루에 13,4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지만 요즘은 10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수입의 30% 정도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정씨는 『모범택시 기사들 사이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손님으로 통하던 심야 취객들도 모범택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잡기힘든 일반택시를 끝까지 기다린다』고 말해 최근의 불경기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엿보게 했다.
여의도 지역의 샐러리맨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C목욕탕 주인 강모씨는(55) 『전날 마신 술이 덜 깨 이른 아침부터 목욕탕을 찾던 직장인들의 모습이 최근에 눈에 띄게 줄었다』며 『점심시간이면 짬을 내 샤워를 하러 오던 직장인들도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이같은 불황의 여파는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각종 밑바닥 경제에까지 위협을 가하고 있다.<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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