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권력교체·경기둔화등겹쳐, 국내 불만 국외로 돌려 민심잡기
美 "환율 조작국" 중국 때리기에 시진핑 체제 '대국굴기' 내세워
영토·무역 등 전방위 충돌 가능성
올해 동시에 정권 교체기를 맞는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패권을 놓고 새해 벽두부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오는 11월 대선이 예정돼 있으며 중국도 가을에 열리는 공산당 대회에서 10년 만에 최고 지도부가 대거 교체될 예정이다. 이들 주요2개국(G2)은 그동안 국제무대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갈등과 협력 사이에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해왔지만 올해는 대립 쪽으로 급격하게 무게중심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
경기둔화 여파로 서민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는 가운데 정권교체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양국 모두 내부 불만을 대외 갈등으로 해소해 민심을 잡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란 핵 문제 등 글로벌 주요 현안과 관련해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시니카'의 충돌이 예상된다.
◇정권 교체기 앞두고 격돌 심화될 듯=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자국 경제가 쉽게 회복되지 못하는 데는 중국의 탓이 크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다. 이에 따라 미 대선 후보들은 이 같은 반중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중국이 환율 조작을 통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훔치고 있다"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가장 먼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중국은 10월 중순 개최되는 제18차 당대회에서 4세대 후진타오(胡錦濤) 시대를 마감하고 5세대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자 시진핑 부주석은 16일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협력관계를 논의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건국 이후 세대로서 중국의 G2 부상에 강한 자부심이 있는 5세대 지도부가 본격 출범할 경우 '유소작위(有所作爲ㆍ할 수 있는 곳에서 능력을 발휘한다)'라는 기존의 유화적인 외교 노선을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시진핑 시대에는 '대국굴기(大國堀起ㆍ큰 나라로 우뚝 선다)'를 내세워 경제위기로 힘이 빠져가는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에 나서면서 미중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경제ㆍ군사ㆍ외교 등 전방위 충돌=이미 글로벌 권력체계의 지형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unipolar)에서 중국 등이 참여한 다극체제(multipolar)로 급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양국은 교역, 경제블록 구축,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립하고 있다.
10일에는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이란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으나 중국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튿날인 12일 미국은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주하이전룽이 이란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제재 방침을 밝히며 즉각 보복조치에 나섰다.
양국은 자동차ㆍ철강ㆍ가금류ㆍ태양광 패널 등의 교역품목을 놓고 상대국 기업이 덤핑 행위를 하거나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했다며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분쟁도 벌이고 있다.
경제블록 구축에 있어서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16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를 순방하면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을 추진하는 한편 '아랍의 봄'에 대해 "관련 국가 인민의 변혁에 대한 욕구를 지지한다"며 '중동 끌어안기'에 나섰다. 또 미국이 지난해 한국과 FTA를 체결한 데 이어 중국을 빼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에 나서자 중국은 '아세안(동남아시아 10개국)+3(한중일)'을 강조하며 아시아 지역에서의 패권 잡기에 나서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도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필리핀ㆍ베트남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중국은 분쟁 당사국과 대화와 협상을 통한 양자해결을 모색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안방처럼 여겨졌던 미얀마와의 외교관계 개선에도 나서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유리 다두시 이사는 미국의 경제 성장이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면서 "미국은 세계를 주도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질 것이며 다른 국가들은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권력과 동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약해지는 미국 vs 떠오르는 중국=양국의 대립은 미국의 위상이 추락한 반면 중국의 세력이 확대되며 G2 체제가 구축된 데 따른 것이다.
냉전시대 이후 미국은 달러라는 글로벌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경제적 권력,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권력을 동시에 확보해 일극체제를 누려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 부상 등의 여파로 이 같은 글로벌 권력지도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8월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최고등급이었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수모를 겪은 것이 상징적인 사례다. 반면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입김은 한층 세지고 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막대한 외환보유액 등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은 국방 부문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으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1월 미 국방장관 방중에 맞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20의 첫 시험비행에 나서며 군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 미국ㆍ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우주 도킹에 성공했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회복 지연, 달러화의 약세 기조 지속 및 중국의 G2로의 부상 등으로 일극체제 시대는 막을 내리고 국제통화체제가 다변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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