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달린다. 칠십이 넘은 아버지가, 오십이 넘은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달린다. 아들은 태어나면서 탯줄이 목에 감기는 사고로 산소공급이 중단돼 중증 뇌성마비 환자가 됐다. 몸을 가눌 수도 없고 말도 못한다. 그런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아버지는 수십번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 마라톤뿐만이 아니다. 철인3종 경기도 여러 번 함께 했다. 바다에서는 고무보트에 아들을 싣고 자신의 몸에 맨 줄과 연결해 앞으로 나아갔다. 자전거 경기는 특별 제작한 자전거로 아들을 앞에 태우고 달린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아버지 딕 호이트(Dick Hoyt), 아들 릭 호이트(Rick Hoyt) 부자 얘기다. 달리기에는 관심도 없던 아버지가 이처럼 철인이 된 이유는 단 한가지. 특수컴퓨터 장치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된 아들이 15세 때 한 한마디 때문이다. "아버지! 나도 달려보고 싶어요."이후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릴 때는 내가 장애인이 아닌 것 같아요"라는 아들의 말에 더욱 신이 나 철인3종 경기까지 완주하게 됐다.
#호주로 요리유학을 떠났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을 당했다. 늦은 나이였고 비싼 등록금이었지만 요리로 제2의 인생을 꽃피우고 싶었다. 날카로운 칼과 불길에 손이 성하질 않았다. 그때마다 새롭게 펼쳐질 자신의 인생을 기대하며 어려운 시간을 견뎠다. 마침내 학업을 마치고 여기저기 취업을 시도한 끝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한 호텔식당에 취직이 됐다. 드디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구나 하고 흥분됐다. 호주에서 서울을 거쳐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아내와 헤어진 뒤 한동안 못 보던 딸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랜만에 본 딸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다. 아내와의 사이도 안 좋았다. 이제는 당신이 딸을 맡으라고 아내가 말했다. 거절할 수 없었다. 힘들어 하는 딸의 모습을 보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류 셰프의 꿈도 사라졌다.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오늘도 병원으로 향한다. 벌써 1년이 훨씬 넘었다. 환갑도 훌쩍 넘겨 일흔 가까이 된 나이. 젊은 사람도 병 간호하다 먼저 간다는데 아들부부 병간호로 1년 넘게 병실로 매일 출근한다. 자식들 대학공부도 다 마쳤고 결혼도 했고…. 별 일 없을 줄 알았다. 이렇게 노후를 보내다 가겠지 했다. 그러다 한 해 전. 둘째 아들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손자 하나는 잃고 아들 부부는 심하게 다쳤다. 며느리는 큰 뇌수술을 여러 차례 했다. 그나마 살아줘서 고마웠다. 아들도 심한 외상과 함께 머리도 다쳤다. 처음에는 자면서 허튼 소리도 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아버지는 아들 부부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아들이 회사로 다시 돌아가서 일은 할 수 있을까.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죽으면 아들 가족은 누가 돌볼까.
#결혼하기 힘든 시대다. 안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 결혼해도 아이 낳기 어려운 시대다. 역시 안 낳기도 하고 못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 당신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우리 아버지들도 그랬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경제개발의 역군이라고 칭찬 받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큰 비전이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자식을 위해 베트남의 밀림도 헤맸고 중동의 모래바람도 마셨을 뿐이다.
가정의 경제권과 교육권이 여성들에게 넘어가면서 지금의 '아버지'는 찬밥이지만 그래도 처자식을 위해 산다. 상사로부터 모진 소리를 들어도 새로운 거래처를 방문하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구조조정을 당해 갈 곳이 없어도 아버지는 오늘도 나간다. 처자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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