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ㆍ프랑스 등은 차(茶)를 재배하지 않지만 무관세로 수입 가공해 (로네펠트ㆍ포숑 등) 최고급 차 제품을 만들어 수출합니다. 한국도 관세 보호막을 걷어내고 고부가가치 차 제품을 개발ㆍ수출해야 합니다."
정승호(40ㆍ사진)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대표는 "우리나라는 전통차 보호를 명분으로 외국산 차에 높은 관세(홍차 60%)를 물리고 있지만 세계 고급 차 시장에서 우리 제품을 찾기 어렵다"며 "적어도 관세를 커피(6%)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보기술(IT)기업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다 국내 유일의 티소믈리에(teasommelier) 양성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 대표는 차를 국가의 주력상품으로 키운 대만을 예를 들며 차산업 개방론을 폈다. 그는 "대만은 일찍이 차산업을 개방하고 다양한 명품 차를 개발해 세계시장에서 인정 받고 있으며 다구(茶具) 등 관련 산업도 경쟁력을 갖췄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중국 등에서 밀수된 가짜 차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팔리는 등 국내시장이 왜곡돼 있다"고 꼬집었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가 지난 2000년 IT기업 경영컨설팅을 위해 국내로 돌아온 정 대표는 커피 마니아였다. 하루 5~6잔씩 마시던 커피로 숙면을 이루지 못해 커피를 줄이던 중 주변을 보니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들이 30% 정도로 꽤 많았다.
"스타벅스의 진출을 시작으로 국내 에스프레소 커피의 수직성장을 보면서 다음은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중 차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커피는 각성효과가 크고 향이 좋아 한번에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면 차는 은은하면서도 오래 가는 게 매력이죠."
IT 붐에 힘입어 30대 초반에 고속승진한 그는 남들이 마흔 넘어 시작하는 제3의 인생에 대한 고민도 서둘렀다. 일본ㆍ독일ㆍ스리랑카 등에서 교육을 받아 티소믈리에가 됐고 이후 유럽에서 티마스터 인증을 받았다. 2009년 캐나다 밴쿠버에 커피ㆍ차 관련 교육기관인 '스페셜티 커피&티'를 설립하고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키우려면 티소믈리에 같은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세계 차 시장이 두 배 성장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앞으로는 5년으로 단축될 것입니다. 스타벅스는 차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 기존의 차 브랜드 타조 외에 나스닥에 상장된 티바나를 최근 6억2,000만달러에 사들였어요. 북미 지역은 2년쯤 전부터 차 소비가 급성장하고 있고 홍콩ㆍ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차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때문이죠."
티소믈리에는 와인소믈리에처럼 고객의 기호에 맞는 차를 추천해주고 차를 블렌딩하는 전문가로 차의 종류는 물론 맛과 향, 산지별 특징 등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에서 4개월 과정을 마치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인증하는 티소믈리에 2급 자격증을 받게 된다.
"차는 한국의 다례(茶禮), 일본의 차노유(茶の湯ㆍ차를 대접하는 예의범절), 영국의 애프터눈 티 등 고유문화를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죠. 스피드에 지친 현대인들이 '슬로 라이프'에 관심을 가지면서 화두가 된 소통과 힐링의 연결고리도 차입니다. 전통다례를 계승하면서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차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