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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장자의 와각지쟁

기업의 사회적 책임 외면한 채 소유권 다툼 벌이는 롯데 일가

형제에겐 목숨 걸린 일이지만 여론은 양측 모두에 냉담해져



우리나라에는 연예인의 스캔들, 정치인의 비리, 재벌가의 분쟁 등이 일어나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최근 롯데그룹은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뉴스 취재원이 되고 있다. 롯데는 후계구도와 관련해서 '형제의 난'에 비유될 정도로 첨예한 갈등이 여과 없이 언론에 알려지고 있다. 특히 형제 양측은 여론을 잡기 위해 상대의 불리한 점을 폭로하면서 세인의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급기야 롯데가 일본 기업이냐 한국 기업이냐 라는 국적 논란에서 재벌의 순환 출자를 둘러싼 지배 구조를 개혁해야 하느냐라는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기업의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나빠지고 있지만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아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장자 즉양'에 보면 남들이 보기에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심각하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와각지쟁(蝸角之爭)'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의 발단은 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과 제(齊)나라 위왕(威王) 사이의 분쟁에 있었다. 두 사람이 맹약을 맺고 서로 우호 관계를 증진하기로 다짐했는데 위왕이 맹약을 어겼다. 이에 혜왕은 분노해 마지않으면서 자객을 보내 위왕을 해치우려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혜왕의 무도한 기도를 막으려고 했지만 고집을 피우는 혜왕을 말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마침 대진인(戴晉人)이 혜왕을 만나 달팽이 나라의 전쟁 이야기를 했다. 내용은 이렇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가 있는데 '촉씨(觸氏)'라 불렸고 오른쪽 뿔에 나라가 있는데 '만씨(蠻氏)'라 불렸다. 두 나라는 서로 영토를 빼앗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느라 수만의 주검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또 한쪽이 져서 도망가자 상대는 15일 이상 추격하고서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혜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말도 되지 않은 허언(虛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혜왕은 왜 달팽이 뿔 위에 있는 나라들의 치열한 전쟁 이야기를 허언이라고 생각했을까. 달팽이의 크기에 견줘

수만의 주검이라느니 15일 동안의 추격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몇 ㎝밖에 되지 않은 달팽이에게 촉씨와 만씨의 나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로 여겨질 수 있다. 이처럼 장자는 참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혜왕이 실행하고자 하는 복수극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진지한 말이 아니라 엉뚱한 이야기 안에도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 와각지쟁은 작은 나라끼리의 싸움이나 하찮은 일로 서로 옥신각신 승강이하는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당사자들은 목숨을 건 진지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입장에 따라 와각지쟁의 가치가 달라질 수가 있다.

롯데그룹에서 벌이고 있는 소유권 분쟁은 처음에 형제들 사이의 진지한 싸움으로 여겨졌다. 세인들도 분쟁이 어떻게 귀결될지 여러모로 점을 치는 등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소유권 분쟁은 점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소비자들의 권리를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간 불투명한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제 롯데그룹의 소유권 분쟁은 예상치 않은 확전을 부담스러워하며 긴급하게 화해의 드라마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그 드라마가 쓰이지 않는다면 분쟁은 소유권 장악을 위한 공격과 수비의 다툼이 아니라 기업의 경영과 비전이 어디에 있는가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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