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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얻어맞은 일본 제국주의는 무조건항복을 선언한다. 핵무기는 세계대전을 끝낸 결정적 한방이었다. 2011년 10월 프랑스 주도의 다국적군은 무아마르 카다피가 통치하고 있던 리비아를 침공, 결국 카다피의 40년 독재를 끝장낸다. 앞서 카다피는 2003년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핵무기 연구개발을 포기한다. 만약 핵무기가 있었으면 서방이 리비아를 쉽게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핵무기가 국가와 세계의 운명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주장의 몇 가지 사례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70년동안 핵무기는 천하무적의 '절대 무기'가 됐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최종 해결책'이 됐다. 이후로 핵무기가 실제 사용된 적은 없었지만 최소한 심리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신화를 받아들였다.
'신화'의 역사는 이렇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충격, 그리고 이어진 일본의 항복으로부터 '핵무기는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준다'는 신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수소폭탄이 보여준 핵무기 파괴력의 도약으로부터는 '파괴는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는 신화가, 베를린봉쇄·쿠바 미사일 위기·한국전쟁·제4차 중동전쟁·걸프전쟁 등의 위기로부터 '위기시 핵억제는 효과가 있다'는 신화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대전쟁 없이 60여년간 평화가 이어진 것으로부터 '핵무기는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한다'는 신화가, 그리고 이 네 가지 신화로부터 '핵무기의 대안은 없다'는 최종적인 신화가 나왔고 세계는 이를 기반으로 핵무기 관련 정책 및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신화들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우리는 근거 없는 믿음 아래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을 해왔다면 어떻게 될까. 핵무장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 심리적 긴장, 국제관계의 모순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를 쓴 워드 윌슨은 "신화가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분명히 말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항복은 원자폭탄 때문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에 따른 것이다. 나폴레옹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등에서 봐도 상대방의 영토를 파괴한다고 해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핵억제 성공사례라고 알고 있던 베를린 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한국전쟁, 걸프전쟁이 사실상 핵억제 실패사례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가 사실이 아니며 막연한 선입견에 근거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핵무기 논쟁의 핵심은 핵무기가 불변의 무시무시한 위협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핵무기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운명같은 것이 아니다. 핵무기는 안전과 효과를 정상적으로 측정함으로써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일상의 평범한 문제로, 신중하게 조치하면 이를 다룰 수 있다."
이를 통해 핵무기의 위협으로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기존 보유국은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고 새로운 보유국이 생기는 것을 막으면서 모든 핵무기의 폐기방안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1945년 핵보유국은 1곳(미국)이었지만 1949년엔 2곳(미국·소련), 지금은 전세계 9개국에 2만여개의 핵폭탄이 있다. 참고로 카다피의 몰락은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40여년간의 철권통치와 폭정이 국민들의 인내의 한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갖고 있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북한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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