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6층 회의실 벽에 걸린 시계는 10분 늦게 맞춰져 있다. 집권당 지도부가 국정 현안을 논하는 곳에 시간이 한 발 느리게 흐르는 셈이다. 별 일도 아닌데 괜한 호들갑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헌을 둘러싸고 벌이는 한나라당의 모습과 10분 느린 시계는 묘하게 겹친다. 잔뜩 기대를 부풀려 놨던 개헌 의원총회 첫날인 지난 8일. 의원들은 말 그대로 꾸벅꾸벅 졸았다. 개헌에 반대하는 의원뿐 아니라 찬성하는 의원들도 매한가지였다. 신문 기사를 보거나 자리를 뜨는 의원들도 있었다. 반응이 신통치 않자 주최자 격인 김무성 원내대표와 개헌 필요성을 발제한 의원들은 준비가 미비했다며 '네 탓 공방'을 하는 장면도 보였다. 이튿날 역시 개헌 찬성론자들이 나와 비슷한 주장을 반복할 뿐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발언을 독려했던 김 원내대표도 의견이 중복된다며 말을 자른 뒤 당내 특위를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특위를 만들자는 의원들도 그동안 당내에 구성된 특위 중 성과를 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의총장에서 입을 다물었던 친박근혜계 서병수 최고위원은 이튿날 계파 대표로 나서 개헌 의총을 왜 했냐며 뒤늦게 타박을 놨다. 개헌은 꼭 필요하다는 점을 누구나 인식한다. 시기에 반대할 뿐 친박계 의원도 개헌 자체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 개헌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오히려 "의총을 연다" "특위를 구성한다"며 변죽만 울리다 개헌 자체의 가치가 상처를 입었다. 안상수 대표는 이번 의총을 품격 있는 토론이었다고 자평했다. 한 친이계 지도부 인사는 큰 흐름에서 우리가 의도한 방향대로 갔다고 말했다. 국민은 둘째치고 당내 의원조차 시들한 개헌 의총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기업도 그렇지만 정치는 세상보다 반 발 앞서야 성공한다고 한다. 집권당이 앞서기는커녕 늦게 흘러간다고 느끼는 게 기자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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