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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적폐의 역습


적폐(積弊)는 어렵고 무서운 말이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악'이라는 뜻의 잘 쓰이지 않던 이 한자어가 얼마 전부터 대통령, 여당 지도부, 부총리, 장관들의 발언에 감초처럼 이용되고 있다. 적폐가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단언컨대 지난 4월27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참사 발생 11일 만에 사퇴할 때다. 정 총리는 대국민 사과를 겸한 사퇴 기자회견 끝 부분에 다음처럼 말한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다양한 비리와 잘못된 관행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런 '적폐'들이 시정돼서…."

그날 이후 정부의 유행어로 자리 잡은 적폐가 총리의 사퇴 회견문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총리의 사퇴가 청와대와 치밀한 사전조율 끝에 일요일 아침 전격 발표된 것처럼. 미국 백악관이 빌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 간 치명적 섹스 스캔들을 덮기 위해 '부적절한 관계'라는 단어를 찾는 데 밤을 샌 것처럼 말이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합작해 등장한 적폐는 실제 세월호 참사의 수많은 원인을 단어 하나로 웅변한다. 무엇보다 출범 1년이 막 넘은 정권을 삼킬 듯한 참극의 책임을 어떻게든 피해 가는 데 적폐는 '희생양 총리'와 함께 딱이다.

집권 후 하루가 됐든 한 달이 됐든 한 나라에서 발생한 국민의 일은 현재 정부의 책임이다. 뜻밖의 후진국형 초대형 참사에 과거 정권의 나태와 무능력을 부각시키고 싶겠지만 '누워서 침 뱉기'다. 국정은 그런 것이어서 이제 적폐의 역습이 본격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을 국정의 맨 앞에 둔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했지만 세월호 참사로 공염불에 그쳤고 적폐를 거론하며 국가개조를 외쳤지만 또 가슴을 철렁하게 한 사고들이 지상과 땅 밑, 바다에서 속출했다. 하늘과 땅, 바다의 일이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다면 온갖 구타와 비인간적 처사로 숨진 윤 일병 사망사건은 어떠한가. 군(軍) 내 악행이 그토록 뿌리 깊고 심한 줄 미처 몰랐다고 한다면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부터 줄기차게 비판해온 낙하산 인사를 이제는 비판하기도 지치게 만든 폐단에는 눈감아야 하는가.



적폐는 힘이 세다. 장관을 두 번 지낸 한 전직 관료는 장관직에 대한 평가에서 "더 이상 폐단이 쌓이지 않게만 해도 장관이 일을 제법 한 것인데 100가지 문제 중 1~2가지라도 걷어냈다면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긴 시간 한편에서 겹겹이 덩치를 불린 폐해 하나와 싸우는 데도 옷 벗을 각오와 모든 문제를 햇빛 아래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책임감과 소통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박 대통령의 5월19일 대국민 담화 중 오직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언급한 대목과 국민을 함께 울게 했던 대통령의 눈물, 그 두 가지를 앞세워야 적폐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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