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홀더(사진) 미국 법무부 장관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유임을 의식해 연일 강공 모드를 보이면서 월가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대형 투자은행(IB)들에 걸핏하면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하는가 하면 '대마 불기소(too big to jail)'는 없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홀더 장관이 월가에 말랑말랑하다는 기존 평가를 불과 몇달 만에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그는 전날 스위스 대형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를 탈세공모 혐의로 법정에 세워 유죄를 인정하고 26억달러의 벌금을 물게 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은행이 미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한 것은 지난 1995년 일본 다이와은행 이후 20년 만이다. 홀더 장관은 이에 앞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모기지 부실판매로 95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지난해에는 JP모건체이스 등에 무려 520억달러의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이는 홀더 장관의 과거 성향을 고려하면 일대 변신에 가깝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그는 지난해 3월 의회 청문회에서 "대형 은행들은 경제적 파장을 고려해 지나친 벌금을 부과하거나 형사 기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가 정치권으로부터 혼쭐이 난 바 있다. 그랬던 홀더 장관이 강경파로 돌아선 것은 중간선거 이후 유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월가에 비판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다수 미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홀더 장관의 정치적 줄타기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크레디트스위스에 대한 조치가 '대마불사 척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부 직원들이 불법행위를 인정했는데도 금융시장 혼란을 우려해 미국지점을 폐쇄하지 않고 경영진도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크레디트스위스 주가는 연기금 등의 이탈 조짐이 보이지 않자 오히려 0.72% 상승했다.
특히 크레디트스위스의 '범죄 혐의 인정'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지만 나머지 투자은행들의 처리 문제가 새로운 시험대로 등장했다. 블룸버그는 "13개 스위스 은행이 크레디트스위스처럼 탈세공모 혐의를 받고 있고 JP모건·씨티 등 미 은행들도 돈세탁·가격조작 등에 연루돼 있다"며 "이들 은행을 처벌하는 동시에 시장혼란 등 2차 피해도 방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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