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을 위한 불공정거래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한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보로서 매우 반갑고 고무적이지만 기업의 성장은 공정한 거래와 더불어 효율적인 거래에도 뿌리를 두기 때문에 낙관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 먼저 왜 여태껏 공정한 거래는 확립되지 못해온 걸까? 그 이유는 대기업의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중소기업이 널려 있다 보니 대기업이 성에 차지 않을 경우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쉽게 하청기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기업만이 가격교섭력을 가지게 되고 특히 경기가 나빠졌을 때 그 모습이 극명히 드러났다. 맞춤형 장기거래로 시너지 효과 중소기업대국이라는 옆 나라 일본은 불공정거래가 없을까? '하청대금지불지연등방지법' '하청중소기업진흥법'이 제정되어 있는 등 일본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근 20년이나 일본경제가 힘쓰지 못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의한 불공정거래가 득세를 할 법도 하지만 사회문제로는 부상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사실은 일부 불공정거래보다 훨씬 더 심각한 기업 간 격차를 포함한 사회전체의 격차확대라는 아주 짙고 두터운 먹구름이 버블붕괴 이후 일본경제 위에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일본경제가 잘 나가던 90년대 초까지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는 많이 축소됐다는 것인데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세우고 '중소기업기본법'에 바탕을 두고 '약자보호'의 관점에서 법을 정비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한 것도 주효하였지만 이것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첫째 요인은 일거리를 가져다 준 고도성장에 있었다. 버블붕괴 이후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현재 대기업과의 격차는 많은 산업에서 확대일로에 있다. 이것은 일거리가 중소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다음은 장기간에 걸친 거래다. 대기업의 일거리가 급증하다 보니 자사만을 위해 협력해줄 중소기업이 필요하게 되었고 대기업은 그 기업에게 기술을 지도해야만 자사의 최종제품의 품질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또 중소기업은 안정적으로 일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발주대기업 제품에 맞추어 생산설비와 기술개발을 특화해야 했다. 이러한 거래구조는 단기에는 비합리적이다. 대기업으로서는 가격교섭력이 떨어지고 일거리를 제공해야 하며 중소기업으로서는 특화에 따른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에 걸친 거래로 대기업은 생산량을 확보했으며 중소기업은 일거리를 얻고 기술력을 높였다. 이해관계 조율로 파이 키워야 마지막으로 '록인(lock-in)'효과 때문에 발생하는 높은 교체비용이다. 자사제품의 생산과 기술개발에 특화된 중소기업이 납품가격을 올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중소기업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자사(대기업)에 특화된 생산설비와 기술개발력이 그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고정시켜 버리는 자물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새로운 기업을 육성하는 비용보다는 거래를 고정화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에 지속돼 왔다. 이렇게 하여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고 상생의 틀이 잡혔다. 단기의 성과가 공정하게 분배되느냐는 중소기업에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중소기업의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납득이 가는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에 걸쳐 운명공동체(상생)가 될 수 있으며 뒷날 더 많은 파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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