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들이 수수료 부담과 투자정보 노출 우려를 덜기 위해 펀드 투자를 줄이고 대신 투자일임 비중을 대폭 늘리고 있다.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펀드 설정액과 투자일임 자산을 합친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전체 운용자산(설정원본 기준)은 지난 27일 현재 540조5,0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투자일임 자산은 229조211억원으로 지난 2008년말(136조636억원)에 비해 93조원이나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운용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4%에서 42.3%로 17%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문형랩 등 대체투자 상품 증가로 펀드 시장이 위축되면서 운용자산 내 펀드 규모는 약 361조원에서 311조원으로 50조원이나 줄었다. 이로 인해 펀드의 비중은 72.6%에서 57.7%로 급감했다. 운용사 고유의 상품인 펀드 비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대신 수익자 계좌로 자금만 굴려주는 역할을 하는 부수적인 업무인 투자일임의 비중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투자일임자산 비중은 지난 2009년 국내 연기금과 보험사들이 기존에 펀드로 운용하던 자금을 투자일임 자산으로 전환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2008년 감사원이 주요 연기금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이후 ‘수익증권 매입 관련 판매보수 지급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 운용업계 관계자는 “당시 감사원 지적에 따라 우정사업본부가 일임계약을 통해서만 수익증권을 매입하기로 했고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주요 연기금들도 일임계약 비중을 늘리고 있다”며 “판매보수 등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관들도 펀드보다 투자일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생명ㆍ대한생명 등 대형 보험사를 계열사로 둔 자산운용사들의 경우 보험사 고유계정 자금을 투자일임 계약으로 유치하면서 관련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한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보험사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거나 위탁 운용사를 선정해 자금을 배정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믿을만한 계열 운용사를 통해 자금을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계열 운용사는 자금 운용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 실익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도 투자일임에 대한 선호를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IFRS 도입으로 사모펀드 혹은 공모펀드 자산 50% 이상을 갖고 있는 수익자는 연결재무제표에 의무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이 경우 자신들이 자금을 어떻게 운용한다는 내용이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보유중인 공사모 펀드를 투자일임 계약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자문형 랩어카운트가 펀드를 대신하는 주요 대체투자처로 떠오르면서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증권사들과 계약을 맺고 자문에 나선 점 역시 영향을 주고 있다. 한 증권사 랩 운용 담당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문형랩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당수 자산운용사들이 자문형랩 시장에 뛰어들었다”며 “특히 지난해 8월 이후 변동성 장세에서 운용사들의 자문형랩이 투자자문사 상품 대비 안정적인 성과를 내면서 자금 유입으로 이어진 영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투자일임 계약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펀드업계엔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대형 운용사 법인영업 담당 임원은 “1대1 계약인 투자일임 계약은 수익자의 협상력에 따라 보수가 크게 낮아질 수 있는데 펀드 시장은 물론 투자일임 계약에서도 운용사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운용 보수는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라며 “투자일임 계약이 늘면 전체 운용자산 규모는 늘겠지만 그에 비례해서 운용사 수익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