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한국 정부·시민사회 25년 노력의 결실

1990년 정대협 결성, 해결 노력 본격화

1991년 첫 피해자 기자회견, 참상 폭로

올해 11월 한일정상회담 계기로 절충점 찾기 속도

28일 한일외교장관회담에서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와 함께 한일청구권협정이 체결된 이후 ‘잊혀진 과거’로 남아 있었다.

1990년 6월 일본 국회에서 일본 정부가 정부 차원의 책임을 회피하는 입장을 밝히자 피해자들이 반발했고 같은 해 11월 시민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결성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8월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실상을 폭로하면서 문제 해결 노력이 본격화됐다.

일본정부는 1992년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 4일 전인 1월 13일 가토 관방장관 담화를 통해 일본군 관여 사실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이후 1993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관방장관 담화, 1994년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총리 담화 등 일본정부 차원의 해결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정부 차원의 법적 책임 인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피해자들은 일본정부가 1995년 조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지원을 거부했다.



2011년 8월 우리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우리정부는 일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요청했다. 2014년 4월 제1차 한일 국장급협의를 시작으로 지난 27일까지 1년 8개월 간 12번의 국장급 협의가 이뤄졌다.

그 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일본정부는 우경화 흐름 속에서 법적 책임 인정을 거부했으나 결국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조기에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타결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진 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은 11~12월 연이은 국장급 협의 등으로 절충점을 모색한 끝에 최대 난제의 타결에 이르렀다. /박경훈기자 socool@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