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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어정 7월, 건들 8월

박정래 <시인ㆍ제일기획 미디어전략연구소 소장>

정확히 며칠부터 시작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올 장마는 유난이 길고 지루했고 변칙적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느 해처럼 한강 최고 수위가 얼마 남았고 홍수가 어느 지방을 휩쓸고 갔다느니, 수재의연금을 걷어야 한다느니 하는 판박이처럼 거듭되는 호들갑은 없었지만 집중적인 호우, 덥고 견디기 힘든 우기, 예측하기 어렵게 오르내리던 장마전선 등이 그 특징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한달 보름 정도 내외의 긴 장마가 아니었나 싶다(8월 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여름은 내실 키우는 시기 이제 여름휴가는 내 스케줄보다 아이들 스케줄에 의해 좌우되지만 장마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겠거니 하고 8월 둘째주를 휴가기간으로 골랐더니 그중 엿새가 국지적이고 집중적인 호우로 점철돼 결국 방콕(방에 콕 박혀 있음)과 방글라데시(방에서 뒹굴뒹굴함) 관광으로 일관한 신세가 됐다. 그러다 다시 반짝 나온 햇살이 유난스러워 달력을 보니 벌써 입추(8월7일)가 지났고 오는 23일이 처서라고 한다. 절기로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극성을 부리던 모기의 입이 삐뚤어져 공격을 멈춘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의 입담처럼 더위에 장마라고 어정쩡하게 지나가는 7월과 선선해지니 무엇을 해야 하는데 하다가 건들하고 8월이 간다는 말이 그럴듯해 보인다. 어느 곳을 가도 하늘 끝에 걸리는 듯한 쓰르라미의 마지막 고함을 행사처럼 듣노라면 어렸을 때 느끼던 여름 끝의 초조함, 누렇게 속을 드러내 놓고 끝물로 접어드는 수박과 참외밭 모퉁이에 있는 원두막에서 내지르던 할아버지의 탄식 같은 한 계절의 억울함이 밀려온다. 왜냐하면 이 여름의 끝에는 추수와 수확의 계절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어떻게 ‘어정 7월과 건들 8월’을 보냈느냐에 따라 추운 겨울의 안식과 평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7월과 8월,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지난 15일 광복절을 정점으로 올해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와 정체성 회복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어정쩡하고 건들건들 지나가는 세월이 아닌가 해서 가슴이 섬뜩해진다. 경기의 점진적 회복 논란은 차치하고 다시 휴지기에 들어간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든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자연환경에서 여름은 장마와 집중호우, 모든 것을 풀어헤치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산과 들의 초목과 곡식은 짙은 신록으로 우거지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속살을 키우고 부쩍 성장하는 내실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올 여름은 비록 복잡하고 미묘한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집중호우와 폭염처럼 우리를 괴롭혔더라도 이제 하나하나 정리되고 '어정 7월, 건들 8월'이 아닌 우리의 속살이 되기를 기대한다. 개인적인 아픔과 사회적 갈등도 세월이 가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속살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원칙을 바탕으로 가닥을 잘 잡아야 한다. 일시적인 방편에 의한 변칙적인 해결은 또 다른 아픔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가을엔 아픔과 갈등 극복하길 그토록 무더웠던 올 여름도 매년 찾아온 절기 변화의 순리 앞에 승복하는 것처럼…. 각종 문제의 본질을 정면 돌파하는 심정으로 인내심을 갖고 대처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이럴 경우 차후에는 희망적인 입장에서 맞이할 수 있지않을까. 진정 고난과 역경을 겪고 한층 더 강해지고 번영한 우리 역사처럼 슬기롭게 한 여름을 마무리하고 또 한해 결실의 가을을 여는 그런 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연일 사회생활에 시달리고있는 우리가 때때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면 큰 해답을 얻은 경우가 적지않다. 이번 가을에는 좀더 귀를 크게 열고 자연의 가르침을 배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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