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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사업자의 책임을 인정한 선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26일 경북 구미의 한 작은 법원에서 나온 판결이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작년 7월 회원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네이트ㆍ싸이월드 해킹'사건 피해에 대해 사업자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대구지법 김천지원 구미시법원으로부터 "SK컴즈는 피해자에게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낸 주인공은 유능종(사진ㆍ47ㆍ연수원 30기)변호사.
파급력이 큰 사건이었지만 정작 유 변호사는 처음 소송을 제기했던 당시에는 "부담 없이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사업자의 책임을 인정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집단소송으로 시작하기는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여러 명 보다는 혼자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집중도가 높겠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유 변호사는 혼자 소송을 진행한 것이 승소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부담 없이 시작했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소송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SK컴즈의 소송 대리는 국내 최대 로펌(법무법인)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가 맡았다. 원고인 동시에 변호인이었던 유 변호사는 모든 변론을 혼자서 해야 했다.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데만 수 주일이 걸렸다. 도중에 재판부가 양 측의 화해를 권고했지만 SK컴즈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의무를 다했다며 화해권고도 물리쳤다.
유 변호사는 "어차피 하나의 재판이고 또 변호사 간의 공방이기 때문에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하나의 공략 포인트에 집중했다.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사업자의 과실 책임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논리를 부각시킨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일부나마 그의 손을 들어줬다.
유 변호사의 말대로 중요한 선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이 해당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은 '지거나 혹은 지지부진하거나'둘 중 하나였다. 지난 2008년 회원 1,800만여 명의 개인정보가 빠져나간 '옥션 해킹 사건' 피해자들이 이베이옥션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유 변호사 외에 다른 피해자들이 재경지법에 낸 네이트ㆍ싸이월드 소송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재판부가 해킹에 대한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를 기다린다며 재판을 일시적으로 중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 변호사가 받아낸 1심 승소는 고등ㆍ대법원을 거치며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또 구미시법원의 판결이 다른 법원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유 변호사는 현실을 낙관적으로 보자는 입장이다.
그는 "기업이 그 동안 개인정보 보호를 말로만 외치고 정작 시스템 보완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지 않았는지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면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며 "선례가 생겼으니 앞으로 인식이 변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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