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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일본, 엔고 왜 방치하나

해외 M&A 지원? 미국 눈치보기? 엔 위상강화?



최근 일본 엔화가 달러화 대비 13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외환시장 불안정은 경제 운영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각국이 극도로 경계하는 사안. 이미 도요타, 소니 등 일본 경제를 끌어왔던 대표적인 수출 기업들은 휘청거리고 있다.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급감도 배겨내기 힘든 판에 눈앞에서는 엔고라는 카운터 펀치가 윙윙대는 형국이다. 사정이 만만찮은데도 일본 외환 당국은 현재까지 엔고흐름을 사실상 방치하는 모습이다. 현재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달러당 89엔대로, 지난 1995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지난 2007년 여름 달러당 125엔대를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1년6개월새 30%가량 오른 것이다. 엔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지난 2002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을, 영국의 파운드화와 비교해서는 역대 최고 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경기 진작 방안과 통화 정책 카드만을 꺼낼 뿐 외환 시장 개입이라는 효과 빠른 처방전을 내밀진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외환 시장에 마지막으로 개입한 시점은 지난 2004년 3월. 당시 일본 정부는 달러 매입을 위해 15개월간 3,900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정부가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만한 상황이다. 엔고 흐름을 방치하는 것을 놓고 일부에선 일본 정부가 풍부한 보유 현금을 바탕으로 해외기업을 인수하려는 국내 기업들을 우회 지원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인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들이 해외 기업을 사들이는 데 쓴 자금은 전년 대비 231% 급증한 778억달러로, 역대 최고로 집계됐다. 지난 몇 년간 구조조정을 거치며 1조2,500억달러라는 막대한 현금을 쌓아둔 기업들이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락한 해외 기업을 거둬 간 셈이다. 일본정부가 일찌감치 외환 시장에 개입했더라면, 일본 기업들이 지금처럼 염가에 유수의 해외 업체들을 사들일 호기를 잡을 수 있었을 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측면에선 일본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보호주의 성향이 뚜렷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지난달 20일 공식 출범함에 따라 외환 시장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최근 의회에서 “일본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는 일본은행(BOJ)이 지난달 초순 엔고 저지를 위해 외환 시장에 개입할 것임을 시사한 데 대해 “묵과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답신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일본 정부가 통화 정책을 통해 수출기업을 줄곧 간접 지원해 왔다고 비판해왔다. 메릴랜드대학의 피터 모리시 교수는 “일본은행은 제로금리 유지를 통해 엔캐리트레이드를 조장했고, 이것은 직접적인 시장 개입의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초기에 소신 있는 환율 정책의 집행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당분간 일본 외환 당국으로부터 구두 개입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의 엔고현상에 대한 제 3의 시각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는 틈을 타 엔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일본 정부의 장기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엔화 강세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미스터 엔(Mr. Yen)’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 그는 최근 “기축 통화인 달러가 갑작스럽게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다극화된 시스템을 향한 점진적 이동이 있을 것”이라며 “일본은 엔화강세로 성장 잠재력이 더욱 확장될 수 있도록 잠재적인 기반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기에는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화를 본격 추진하는 데 대한 견제 심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엔고 현상이 도를 넘어 국제수지 악화→실물경기 침체→주가하락 등으로 귀결되는 데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위안화 등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일본 정부가 반기지는 않을 것이란 셈법이다. 정책 효과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도 외환 시장 개입이 부담스러운 이유로 꼽힌다. 일본 정부로서는 과거보다 경제 체질이 강해진 마당에 굳이 환율 방향을 바꾸기 위해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려면 다른 국가들의 협조도 절실한데, 경제 위기로 여타 국가들도 도움을 주기엔 너무 여유가 없다는 점도 외환 개입을 주저하게 하는 원인이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마냥 엔고를 방치할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마지노선 아래로 엔 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즉각 시장 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향후에도 엔고가 지속될 것으로 보면서 달러당 80~85엔선이 시장 개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 비해 경제 여건이 상대적으로 건실하고, 엔화 가치도 과거와 비교할 때 아직 상승할 여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오바마 정부 출범이라는 이벤트가 일단락된 것도 엔화의 본격적인 강세 흐름을 유인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일본경제연구센터는 ‘2009년 일본경제 전망’에서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는 지난연말 대비 10% 정도 더 상승해 올 연말에는 달러당 80엔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과 일본 간에 ‘통화 전쟁’ 전운이 감돌고 있다는 관측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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