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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우리들의 버려진 고향
입력1999-02-08 00:00:00
수정
1999.02.08 00:00:00
李建榮(전 건설부차관)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설은 설이다. 한때 이중과세를 억제하고 양력설로 유도하려고 정부가 무던히 애를 썼지만, 금번 양력설 연휴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이제 설은 음력설로 정착될 것이다.
설을 맞아 2,000만명의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리라고 한다. 전국의 도로는 고향순례자들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그래도 고향길에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다. 전 국민의 44%가 타향살이를 하고있다는 통계가 있다. 이들은 거의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는 실정인데 일시에 고향나들이에 나서면 그 혼잡이 어떻겠는가?
우리민족은 유난히 고향의식이 강하다. 우리는 원래 농본사회였다. 농본사회란 땅에, 즉 고향에 뿌리를 둔 사회다. 대가족이 고향의 품에 안겨 오손도손 살며, 대개는 고향에서 멀리 떠나보지도 못하고 한평생을 보내기도 하였다. 고향을 떠난 객지살이는 고생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욕 중에서 제일 몹쓸 욕이 ‘객사(客死)할 놈’이었다. 그리고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했다.
일제시대 때 고향땅을 빼앗긴 실향민들, 그리고 해방이후 산업화의 물결에 따라 고향을 등지고 도회지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우리의 타향살이 문화가 피어났다. 많은 유행가에서처럼 타향살이는 애타는 것이었다. 이민을 가서도 마냥「가슴 아프게」저바다를 원망하였다. 오랜 유학생활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우리나라 유학생들의 홈시크는 유별난 편이다. 그러면서 언제나 금의환향을 꿈꾼다. 어려울 때는 돌아갈 고향이 있고, 고향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의지가 되기도 한다. 서부로 서부로 신천지를 개척하며 정착해온 미국사람들에게는 발 닿는 곳이 고향이었다. 영국에서도 아이들이 10여세가 되면 고향을 떠나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훈련을 받아왔다.
나는 고향이 가까운 용인이라 오다가다 들리곤 한다. 그러나 찾아가도 도시화의 거친 물결 때문에 옛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여기서 나는 어린시절을 보냈고 국민학교 다니던 도중 부친의 임지를 따라가면서 고향을 떠났다. 내가 살던 집,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지금 흔적도 없고 주위에는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어찌 나 뿐일까? 우리들 마음 속의 고향은 자꾸 지워지고 있다. 가끔 멀리 지방에 가 보면 노인들만 살고 있는 우리의 지방은 너무나 황폐해가고 있다. 옛날에는 벼슬살이를 마치면 으례 고향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었다. 그러나 지금사람들은 설에나 찾아갈 뿐 낙향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고향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소중하다. 그런데 왜 고향이 서쪽이냐 동쪽이냐를 놓고 정치판은 그렇게 살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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