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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자 증세보다 알뜰 나라살림 먼저


선거를 앞둔 정가에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 공약이 무성하다. 재원은 부자 증세(增稅)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한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부자는 누진 과세되는 근로소득 이외의 다양한 소득을 창출하므로 조세회피 능력이 필수인데, 부자 증세가 녹록할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도 "부자가 되려면 조세를 회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부자 증세가 쉽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상위 1%의 부자들을 유치하려고 조세경쟁을 벌이고 있다. 부자들에게 소득세나 법인세를 더 걷는 것보다 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완전한 이동성(perfect mobility)'이 특징인 세계화 시대에 '부자와 국가 간 세금전쟁'에서 국가가 승리하기란 쉽지 않다.

복지재원 확대 서민 부담 키울수도

둘째, 어느 나라든 근로소득자보다 고용을 창출하는 사업자나 법인에게 유리한 세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근로소득자 개인의 차량용 유류비용은 소득공제가 안 되지만 사업자에게는 비용으로 인정되고, 부동산 임대소득이나 금융소득 등 주로 부자의 소득에 과세특례나 저율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점이 그 예다.

셋째,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간접세 비중이 높아 납세자 전체가 아닌 부자에게서만 세금을 더 걷기가 어렵다. 국세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52%(지난 2010년 기준)나 되는 반면 전체 세수 중 소득세 비중은 16.5%로 낮다. 2009년에는 근로소득세(13조원)보다 유류세(20조원)가 7조원 더 걷혔다.

넷째, 국회에서 세율을 올린다고 부자에게 증세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조세행정이 따라줘야 한다. 부자들은 조세전문가ㆍ세무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적법하게 조세 회피를 할 수 있다. 개인소득세를 올리면 법인을 만들어 조세 회피할 수 있고, 의사 등 고소득사업자는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는 방법 등으로 과세표준구간을 낮출 수 있다.



다섯째, 부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탈세할 수 있다. 차명계좌 및 차명 영업, 허위 계약 및 허위 영수증, 유령회사, 심지어 세무공무원에게 뇌물 공여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탈세를 할 수 있다. 정치인과 국민들은 "탈세를 적발하라"고 국세청을 닦달하지만, 높은 지하경제 비율과 세무공무원의 높은 부패 수준 등 '낮은 사회 투명성'때문에 한국에서 탈세를 막을 단기 묘책은 아직 없다.

결국 복지 재원의 상당 부분은 '부자 증세'가 아니라 간접세수 증대나 근로소득자 소득공제 축소 등 모든 납세자의 늘어난 부담으로 조달될 것이다. 당장의 국민부담률 증가를 회피하려고 국채를 발행하거나 현 정권처럼 공채 발행의 꼼수를 부릴 수도 있다. 실제로 4대강 사업자금 조달에 동원된 한국수자원공사의 채권 발행잔액은 2008년 말 5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0조원으로 늘어났다. 국채와 공기업 부채 역시 납세자가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국공채 증가는 통화 증발로 인플레이션을 유발, 납세자들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을 안겨준다.

국공채 남발 막을 장치도 필요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에 속지 말자.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 증세를 거론하기에 앞서 공공 부문의 투명성을 높여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 현재의 예산범위 안에서 알뜰한 나라 살림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토건 예산을 줄이는 등 재정지출 순위를 시대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유류세 등 소득 역진적인 간접세 비중을 줄여 조세체계를 바로 잡고, 국공채 남발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적연금 미적립 채무와 공기업 채무 중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부채를 포함한 모든 국가부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민주적 기초, 즉 세금이 소수의 기득권이 아닌 다수 국민을 위해 쓰이는 기초를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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