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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수가 턱없이 낮고 힘만 든다" 분만실 10년새 절반으로 뚝

■ 분만 의사 부족… 갈 곳 없는 임신부<br>사고 위험성 큰데 보상은 낮아 분만실 대신 미용 등 돈벌이 몰려 산부인과 기피 의대생도 급증<br>대형병원 입원실 잡기 전쟁 고위험 산모도 대기 2~3시간 분만 수가 현실화 등 대책 필요




4년 만에 임신한 여성, 산부인과 갔다가 '기겁'
[이슈 인사이드] "수가 턱없이 낮고 힘만 든다" 분만실 10년새 절반으로 뚝■ 분만 의사 부족… 갈 곳 없는 임신부사고 위험성 큰데 보상은 낮아 분만실 대신 미용 등 돈벌이 몰려 산부인과 기피 의대생도 급증대형병원 입원실 잡기 전쟁 고위험 산모도 대기 2~3시간 분만 수가 현실화 등 대책 필요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이수민기자 noenemy@sed.co.kr
































결혼 4년 만에 아이를 가진 이혜인(34)씨. 만전을 기하고 싶은 마음에 이름난 산부인과를 택한 것까진 좋았는데, 진료 한 번 받기가 영 쉽지 않다. 평일에 예약을 하고 가도 30분은 기다리기 일쑤고 토요일에는 예약도 받지 않아 대기만 2시간을 넘었다. 7개월 뒤인 출산예정일의 산후조리실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됐고, 담당선생님은 진료예약이 꽉 잡혀있어 이것저것 물어보기 부담스럽다.

"저출산 때문에 난리라더니 순 거짓말이었어요."

오늘도 1시간을 기다려 파김치가 된 이 씨의 입에서 결국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아쉽게도 여전히 낮다. 예년보다 다소 나아졌다지만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는 평균 자녀 수)은 아직 1.2명 수준을 맴돌고 있다.

그런데도 산부인과는 연일 북새통이다. 왜 그럴까. 아이 낳기를 미루는 엄마들보다 아이 받는 일을 포기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수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10년새 분만실 절반으로 뚝, 산부인과 기피현상 심해져=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는 5,218명으로 결코 적지 않다. 26개 전문과목별 의사 수와 비교해도 내과(1만1,454명), 일반외과(5,237명) 다음으로 많은 인력을 자랑한다.

문제는 분만 의사 수다. 2011년 말 기준 전국에서 분만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총 763곳으로 10년 전인 2001년(1,570곳)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규모가 작은 개인 의원의 상황이 특히 심하다. 2001년 전국 1,161곳에 달하던 산부인과 의원 수는 지난해 기준 484곳으로 10년 만에 60%가 줄었다. 지난해 개인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3,062명이지만 막상 이들 10명 중 1~2명만이 분만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머지 8~9명은 분만업무는 하지 않은 채 여성질환, 피부ㆍ미용 등의 진료만으로 의원을 꾸려간다고 한다.

이런 '분만의사 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의대생들 사이에서 '산부인과 기피현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2007년 무렵까지만 해도 연간 200여명씩 배출되던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2010년 108명, 올해 90명까지 내려앉았다. 특히 남자의 경우 그 감소폭이 더욱 가팔라 2004년 171명이던 전문의 수가 올해는 10명에 불과했다.

최근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이 모씨는 "본교 출신 남학생이 전문의로 한 명만 들어오면 바로 교수 시켜준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5년째 한 명도 없는 상황"이라며 "타교에서 남학생이 조금씩은 들어오고 있지만 매년 1~2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한 모씨 역시 "산부인과에 오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학부 때 문제가 있던 애들이 많이 들어온다"며 "다들 의욕이 부족해보인다"고 전했다.

◇저(低)보상 고(高)위험, '분만 왜 하나' 회의감 커져=기본적으로 분만은 고강도의 체력을 요구하는 업무다. 야간 응급상황이 많기에 밤을 새야 하는 경우도 많고, 근무가 없는 날도 병원 근거리에 있어야 하는 등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이런 업무 강도에 비해 보상 수준이 너무 낮다는데 있다. 분만 수가는 건당 30만원 수준으로 한 달에 10건 가량 분만을 해서는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는데 드는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렵다.

간신히 분만실을 유지해갈 만한 경영상태를 유지한다고 해도 복병이 있다. 바로 의료사고다. 출산은 특히나 불가피한 의료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영역이다. 통계상으로도 산모 1만 명당 1.5명, 신생아 1,000명당 3.3명은 분만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 신생아 1,000명당 2.7명은 뇌성마비가 발생한다.



최안나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 대변인은 "어떻게든 분만실을 꾸려나가겠다고 열심히 하면 할수록 분만사고의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는데 30만원씩 받아서 사고 한 번나면 1억~2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 10년 일해서 사고 한번 나면 그대로 무너지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올해부터 과실이 없는 의료사고에 관해서도 의사들의 책임(보상 재원의 30%는 의료기관이 마련)을 묻는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되며 산부인과 의사들의 회의감은 더욱 커졌다. 신정호 고려대 산부인과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는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로서 자존심이 달린 문제다. 잘못이 없는데도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그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내 자식 아이는 누가 받아줄까 고민해야=분만실과 분만의사 수가 줄어 생기는 문제점은 벌써 많은 예비 엄마들이 체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산부인과에 가기 위해 차량으로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분만취약지가 전국 50여 곳에 이른다. 분만산부인과가 1곳뿐인 곳도 많다. 경기 일산에 거주하는 최윤미(31)씨는 "이 근방에 젊은 부부들이 얼마나 많이 사는데 막상 믿고 갈만하다고 얘기되는 분만산부인과는 2~3곳이 전부"라며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고 아쉬워했다.

고위험 산모들이 몰리는 서울의 대형 전문병원의 경우 대기시간만 2~3시간을 넘어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사들은 이미 우리의 출산 인프라가 빠르게 붕괴되고 있으며 위험 상황을 막기 위해 하루빨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등 선진국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한 분만 수가를 현실화하고, 일본처럼 과실이 없는 의료사고는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 산모들은 물론 의료인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 교수는 "일본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 빠진 산모를 어느 병원도 맡지 않으려고 해 25차례 진료 거부를 당한 끝에 숨진 사고가 있었다"며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는 우리나라도 이런 불행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 명의 의사가 나오기 위해 최소 10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고위험 수술 건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려면 최소 15년은 필요하다. 우리 자녀들의 출산을 누가 도울 것이냐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 심각한 산부인과 여초현상선호도 낮고 인식 나빠 남자 전공의 거의 없어"여자 산부인과 선생님 있는 병원 좀 알려주세요"

아무리 성에 개방된 사회라지만 산부인과 진료는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불편해 하는 영역중 하나다.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출산뿐 아니라 각종 부인과 진료에 여자 선생님을 찾고 있으며,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병원이 여의사들로만 의료진을 구성했다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기도 하다.

최안나 진오비 대변인은 "여성환자들의 여자 선생님 선호가 워낙 높다 보니 솔직히 여의사들은 굳이 분만을 안 해도 항상 손님이 많다"며 "30~40대 의욕에 넘치는 남자 선생님들이 조금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분만실을 운영하곤 하는데 결국 낮은 수가와 분만사고 스트레스로 문을 닫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남자 산부인과 선생님이 살아남기 힘든 현실은 남자 의대생들로 하여금 산부인과 전공을 기피하도록 만든다. 전공의 시절 야간 당직이 잦아 피곤한 일이 많은데다 막상 개업하면 환자 선호도가 떨어져 병원 운영이 힘들어 진다는 말이다.

한 남자 산부인과 전공의는 "요즘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남자 전공의 1명 찾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특히 요즘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의 진료행위에 대해 성희롱이다, 불편하다라는 식의 말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더욱 가기 싫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렇게 줄어든 남자 전문의 수는 전체 분만의사 수에 큰 영향을 준다. 분만 일은 워낙 신체적ㆍ정신적 소모가 큰 업무 중 하나다 보니 아무래도 여성, 특히 가정을 꾸린 여성에게는 부담이 크다. 대한산부인과 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산부인과 의사의 경우 처음부터 아예 분만업무를 하지 않은 경우가 남자의 3배(남자 2.7%, 여자 7.9%)에 달했고 분만을 하다가 그만둔 경우도 26.3%로 남자보다 6%포인트 높았다.

분만의사로서의 은퇴 연령 역시 여자의 경우 46.2세로 남자(55.9세)에 비해 10년 가까이 빨랐다. 지금처럼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의 80~90%가 여자인 상황은 향후 분만 의사 인력의 감소를 앞당길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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