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별 법령에 명시돼 있어야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금융거래와 '근로기준법' 등에 근거한 인사·급여관리,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근거한 취약계층 대상 요금감면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법에 적시돼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재난상황 등 피해자의 생명·신체·재산상 이익을 위해 긴급히 필요할 때도 제한적으로 주민번호 수집이 허용된다.
대신 정부는 본인 확인 수단으로 마이핀(My-PIN) 서비스를 제공한다. 1968년에 생성된 후 신원확인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쓰였던 주민번호를 대체할 수단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는 정부의 판단하에서다. 마이핀은 온라인상에서 개인 식별 번호로 쓰이는 아이핀(I-PIN)의 오프라인 버전으로 13자리 무작위 번호다. 마이핀은 동 주민센터 등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유출·노출이 의심될 때는 폐기 또는 변경이 가능해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을 줄이면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안행부는 설명했다.
이 같은 정부의 주민번호 수집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길시 1차는 600만원, 2차 1,200만원에 이어 3차에 2,4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죄질이 나쁠 때는 과태료가 최고 3,000만원까지 올라간다. 적법하게 수집했더라도 안전하게 관리하지 않아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면 최고 5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엄격한 법을 집행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에 더 주의를 기울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기업들은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이 가운데 자동차와 항공, 정유 업계의 대기업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주민번호 수집을 중단한 상황이어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같은 대기업과는 달리 업무 성격상 주민번호 처리가 필요한 분야는 곤혹스런 모습이다. 당장 우려의 소리가 들리는 곳은 병원 쪽이다. 앞으로 주민번호를 이용한 인터넷·전화 예약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진료 예약부터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에 병원들은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병원들은 진료 예약시 주민번호를 쓰지 않으면 신원확인 오류로 환자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주민번호 수집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의 경우 이름이 같은 환자가 10만3,000명이어서 각기 다른 주민번호로 신원확인이 안 되면 개인정보보호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한 병원 관계자도 "의료급여를 받는 환자가 3차 병원에 올 때 요양급여 의뢰서를 가져와야 하는데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하지 않으면 저소득층 환자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안내해줄 수 없다"며 "환자가 진료를 제때 못 받거나 다른 자격으로 진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등 혼선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도 불가피한 상황에 한해 주민번호를 취급할 수 있으나 범위가 불분명해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콜센터 상담, 대출 모집인 등록, 자동차보험 비교 견적 등과 관련해 주민번호 처리가 불가피하다. 사고 출동, 구상권 행사 등 보상 처리와 외부 협력업체 계정 관리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업 측도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통사는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돼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있지만 용도가 본인 확인으로 대폭 제한된 상태다. 이에 요금 연체자의 신용정보 조회나 채권 추심 등 업무에 더는 활용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미납요금 회수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이통사 측은 말한다. 변경·해지 등 업무 역시 주민번호를 사용할 수 없어 명의 도용이나 휴대폰 대출 사기, 스팸 발송 등이 증가할 여지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주장했다. 게다가 중소업체와 영세 사업장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제도의 변화를 맞게 돼 큰 혼선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영세사업자와 국민의 불편을 고려해 6개월간 계도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 주민번호 무단 수집·활용으로 적발되면 두 번째까지는 개선권고 또는 시정명령을 받게 되지만 첫 적발이라도 유출피해가 생겼거나 3회 이상 거듭 적발되면 계도기간에라도 과태료 600만원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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