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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73>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가


“신어(Newspeak)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려는 데 있다는 걸 자넨 모르겠나? 결국에 가서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해놓자는 걸세. 왜냐하면 그걸 나타낼 말이 없으니까 말이야.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하게 단 한 마디로 표현될 거고, 그 의미는 정밀하게 뜻을 나타내고 다른 보조적 의미는 지워져 잊게 될 테니까 말이야…해가 갈수록 낱말은 자꾸 그 수가 줄고 그러면서 의식의 범위도 계속 좁아지는 거지. 지금도 물론 사상죄를 범하는 데 이유나 구실은 붙일 수 없어.” - 조지 오웰 <1984>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6세기부터 시작됐다.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그의 제자 벤자민 리 워프는 ‘언어는 확실히 사고를 지배한다’는 ‘언어결정론’을 주장했다. 워프는 “우리는 우리 모국어가 그어놓은 선에 따라 자연세계를 분단한다”고 이야기한다. 언어가 생각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그 한계까지도 결정짓는다는 해석이다. 예를 들면 이누이트어(에스키모의 언어)에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400개나 있기 때문에 에스키모가 훨씬 섬세하게 눈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프의 언어결정론이 구체화된 세계는 1949년 출판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찾을 수 있다. <1984>에서 신어(Newspeak·新語)는 글의 체계를 단순화시키고 어휘를 줄여 사상범죄를 없애는 수단이다. 신어를 적용하면 춥다(cold)의 반대말은 덥다(hot)가 아니라 ‘안춥다’가 된다. 이런 식으로 언어를 제한하면 사고의 폭이 줄어들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생각 역시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세계적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사람은 모국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중국 사람이든 모국어 안에 존재하는 똑같은 언어 ‘멘털리즈(mentalese)’가 있고 이를 활용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핑커는 모국어와 사고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만, 모국어가 사고를 가두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극단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워프의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얼마 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나눴다는 대화가 공개됐다. 어찌 된 일인지 대화의 내용보다 일본어로 이뤄졌다는 점이 뭇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기업의 총수 일가가 일본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한국어는 매우 서투르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대중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롯데가 일본 기업인지 한국 기업인지 정체성이 모호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어를 쓰는 걸 보니 일본적 사고를 하는 게 분명하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워프의 극단적 언어결정론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양새다. 지난 2일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한국어를 못하는데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듯 “일본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일이 바빠서 잊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툰 한국어로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언어는 중요하다. 당연히 사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워프의 주장처럼 정말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믿는 것인지 묻고 싶다. 혹시 당신의 언어결정론은 재벌 총수 일가에만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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