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편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나 국가유공자 등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의료급여를 통해 거의 모든 비용을 지원 받는다. 지원대상만 무려 157만명에 달한다. 돈이 없어 병원을 제때 찾지 못하는 극빈자에게는 의료급여가 천사의 손 같은 존재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이후 의료수가 상승과 보장범위 확대 등으로 지출액이 늘어나면서 예산액을 초과해 지난해 외상진료대금은 6,138억원까지 불어났다.
돈이 안 되는 환자를 병원이 반길 리 없다. 의료급여가 바닥나는 매년 11월 이후마다 일부 병원들이 극빈층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는 올해 미지급금 청산을 위해 4,919억원의 예산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 예산에 무자비한 칼날을 들이댔다. 국회를 통과한 의료급여 미지급금용 예산은 2,695억원에 불과하다. 2,224억원을 잘라버린 것이다. 여기에 일반 의료급여액도 600억원 줄이면서 올해 총 의료급여 예산은 당초 정부안보다 2,824억원이나 깎인 4조2,47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무상교육과 의원연금에는 관대했던 여야 국회의원들이 선거 기간 동안 그토록 떠들어댔던 사회적 약자 보호에 대해서는 철저히 고개를 돌렸다.
국회는 새해 복지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 이상으로 결정했다. 사실상 보편적 복지 시대를 선언한 셈이다. 그러면서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은 차디찬 병원 밖 거리로 내몰았다. 보편적 복지가 이런 것이라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에게 소외감까지 안겨주는 게 과연 복지인가. 가장 필요한 곳에 최소한의 지원이 주어져야 하는 복지의 원칙부터 살린 다음에 선택적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논쟁을 펼치는 게 순서다. 국회의원들은 심판이 두렵지도 않는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