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평등하다고 믿는 세르반테스는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는 바람에 신성모독죄로 지하감옥에 갇혀 종교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서 그는 죄수들을 설득해 그가 쓴 희곡 ‘맨 오브 라만차 돈키호테’로 즉흥극을 펼친다. 하지만 여관을 성이라며 성주를 찾는가 하면, 풍차를 괴물이라고 싸우는 비현실적이어서 우스꽝스러운 늙은 돈키호테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거리일 뿐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도의 허구성과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폭로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인기고전의 목록으로, 그리고 연극 텍스트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그 폭로의 실체인 돈키호테는 단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려고만 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서글픔에 고개 숙이지 않고 ‘희망이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사랑을 따르겠다’는 진실된 뜨거운 열정을 감추고 있다. 한때는 신선했지만 부패해진 기득권을 박차고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모색하는 곳에 항상 돈키호테의 꿈이 있다. 이념이 부패해질수록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것은 민중들이기에 돈키호테를 부르는 민초들의 바람은 애절하고도 서글프지만 끈질기다. ‘라 만차의 돈키호테’ . 이 시대의 라 만차는 어디일까. 지난달 29일 막을 올린 뮤지컬 ‘돈키호테’가 호소력을 갖는 데는 탄탄한 줄거리 전개와 함께 배역들의 조화로운 연기에 있다. 돈키호테 역을 맡은 류정한은 진지하고 우렁차면서 때로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해 현실적으로는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의 부조화성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알 돈자 역을 맡은 강효성은 브로드웨이 배역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났다.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의 캐스팅의 힘인지 배우 강효성의 연기력인지 사뭇 흥미롭다. 극 전체를 흐르는 스페인 플라멩고풍의 음악은 극 내내 객석을 즐겁고 들뜨게 만들었다. 무대장치도 눈길을 끌었다. 어두운 지하감옥의 암벽은 극의 진행에 따라 해바라기가 만발한 들판으로 바뀌는 등 영상미가 신선했다. 객석은 남성들을 위한 뮤지컬이라는 제작사의 기대를 저버리고 80%이상이 여성들로 가득했다. 현실의 각박함을 벗어던지려는 남성들의 기대보다는 둘시네아를 향한 돈키호테의 변함없는 충성심에 여성 관객들의 호응이 더 큰 듯 하다. 지금까지 돈키호테가 보지 못한 새시대의 돈키호테 후원자가 등장한 셈이다. 평일에도 객석점유율 70%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다.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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