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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리스트' 공개가 禍키웠나

정부 불신… 뱅크런, BIS 5% 미만 저축銀까지 확산<br>우리저축銀등도 인출 사태

21일 부산의 한 저축은행 앞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금융 당국은“과도한 예금인출만 없다면 상반기 중 부실을 이유로 저축은행을 추가로 영업 정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부 지역의 예금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축은행 창구로 몰려들었다. /부산=이성덕기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부산의 우리저축은행을 찾은 21일. 쇄도하는 고객들 앞에 선 그는 "추가 영업정지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래서야 어떻게 믿겠냐"는 한 중년 예금자의 아우성을 들으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한 채 안타까움만 표했다. 불확실성을 초기에 제거하기 위해 '부실 저축은행 블랙리스트'까지 공개하는 등 극약처방을 썼던 당국의 노력은 이렇게 '불신'이라는 거센 후폭풍으로 다가왔다. 부산ㆍ대전저축은행의 영업정지 나흘째인 21일에도 뱅크런(예금인출)의 여진은 계속됐다. 특히 리스트에 오른 우리저축은행에는 오전부터 1,000명 넘는 예금자들이 장사진을 쳤고 도민저축은행에도 소액까지 찾겠다는 노인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뱅크런의 여파가 이처럼 블랙리스트는 물론 업계 전반으로까지 퍼지자 당국이 10곳의 리스트를 공개한 조치가 도리어 화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국의 블랙리스트 발표는 104개의 저축은행 중 10곳을 제외한 94곳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고객들의 불안감이 업계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임과 동시에 초동진화의 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빗나갔다. 당국은 94곳만을 대상으로 "더 이상 영업정지가 없다"면서, 그것도 '부실을 이유로'라는 이중장치를 걸었지만 고객들은 업계 전체에서 '추가 영업정지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고객들에게 '94곳'이란 의미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와중에 4곳이 추가로 문을 닫자 배신감을 갖게 됐고 이는 당국이 문제 없다고 밝힌 5% 미만 저축은행의 대규모 인출까지 불러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럴 것 같았으면 차라리 부실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는 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당국은 행정절차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연이은 영업정지는 우량고객들에게까지 불안감을 심어줬다. 초우량에 속하는 일부 저축은행은 결국 21일 정기예금 금리를 0.3%포인트 올려야 했다. '상반기에는 영업정지가 없다'고 시한을 설정한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당국의 신뢰도가 가뜩이나 떨어진 상황에서 하반기에 대형 저축은행이 추가로 문을 닫을 경우 파장은 부산사태 이상으로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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