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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난을 바라보니....

사무실 책상 주위가 하도 어지럽다 보니 누군가 조그만 난(蘭) 화분을 하나 주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물을 주면 죽지 않고 자라니 크게 신경 쓸 일도 없다고 했다. 난을 키우는게 호사(好事)라는 이미지만 갖고 있었고 취미가 다양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난의 줄기가 시들해지고 누렇게 변색이 되어 사색(死色)이 눈에 띄니 신경이 쓰임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물 한 컵을 듬뿍 안기니 넘친 물이 자료들을 적시고 컴퓨터 밑으로 스며들어가는 꼴이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계속 누렇게 변색된 몇 줄기가 볼성 사납게 붙어있어 난을 볼 때 마다 신경질이 나날이 북돋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난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난은 사군자의 하나로 옛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문인화의 대표적인 소재였다. 깨끗하고 고결한 이미지 때문에 군자의 방에는 의례 난 화분 하나 정도는 있어야 어울렸고, 이른 봄 난이 꽃이라도 피운다면 정신을 맑게 하는 난향의 도움을 얻어 밤을 지새우며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동주 선생이 쓴 「우리 옛그림 읽기의 아름다움」를 보면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가 오랜 기간 신품으로 떠받들여왔음을 알 수 있다. 웅혼한 필치의 글씨와 어울려 위로 기세좋게 올라가는 난이 연한 물색에 실려 웬지 글씨에 담긴 억센 기운을 쓰다듬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이다. 구한말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던 민영익 역시 난을 잘 그려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고, 대원군의 난 역시 하도 유명해 그의 호를 딴 석파란(石坡蘭) 그림이 당대의 인기 컬렉션이었다. 이렇듯 옛 사람들은 난을 키우기도 하고 때론 그 형색을 물에 갠 먹물에 담아 화폭에 옮겨놓기도 했다. 아마도 난의 그 고결한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생각 탓이었을 것이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그린 조선조 유명한 선비화가 강희안이 꽃기르는 방법을 소개한 글 「양화소록」에는 난을 재배하는 방법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굵은 모래를 넣어 성기게 하면 통풍은 잘 되지만 많은 비가 내려도 뿌리를 적시지 못하고, 가는 모래를 넣어 촘촘하게 하고자 하면 젖어 있기는 하지만 무더운 날에도 마르지 않는다. 햇볕을 쐬고 차단하는 것. 이슬을 맞히는 것. 잎의 영양상태 등이 적절하면 난은 잘 자란다.」 난을 키우는 일이 마치 잔병치레 많은 아이를 돌보는 것 같다. 그러니 벅찬 일상 생활 속에서 난 화분 하나를 바라보며 작지만 큰 생명과 씨름하는 일이 어찌 녹록한 일이겠는가. 강희안이 「양화소록」을 쓴 이유를 읽어 보면 더욱 그렇다. 「화초는 지식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르는 이치와 갈무리하는 방법을 몰라 그 천성을 거스른다면 반드시 시들어 말라죽게 될 것이다. 식물조차 그러한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마음과 몸을 피곤하게 하여 천성을 해쳐서야 되겠는가.」 난 하나를 키우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 것을 달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이니 어느날 우연히 얻은 화분 하나를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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