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집회서 폭탄테러로…정정불안 고조될듯<br>美·佛등 "혐오스런 사건" 일제히 비난
베나지르 부토(54) 전 파키스탄 총리가 폭탄테러로 사망했다.
27일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반 정부집회를 개최하던 중 자살 폭탄테러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날 폭탄테러는 라왈핀디의 리아콰트 바그 공원 후문 근처에서 부토 전 총리가 연설을 마치고 퇴장한 직후 발생했다. 이번 폭발로 현재까지 최소 2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사상자의 수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부토 전 총리 세력의 파키스탄인민당(PPP) 관계자인 와지프 알리 칸이 “부토 전 총리가 오후 6시16분 수술을 받던중 숨졌다”라고 밝혔다. 현지TV와 내무부 고위 당 간부도 부토 전 총리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부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부토 지지자들은 라왈핀디 병원으로 몰려들어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연임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 군중은 정문 유리창을 부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토 전 총리가 사망함에 따라 파키스탄의 정정불안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했지만 자신에게 비판적인 대법관들을 대거 해고하는 등 노골적인 독재를 행사해 내년 1월 총선에서 승리를 유도해왔다.
따라서 반(反)무샤라프 세력의 희망이었던 부토 전 총리의 사망은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킬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역시 전 파키스탄 총리였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딸로, 지난 79년 부친의 처형이후 PPP의 중앙위원으로 반정부운동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8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귀국해 민주화개혁을 주도했었다.
이런 가운데 무샤라프 대통령은 부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정부 고위 관료들을 긴급 소집해 이와 관련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한편 미국ㆍ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은 부토 전 총리의 사망을 애도하는 동시에 폭탄테러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이번 사태를 매우 비난한다”며 “이는 아직도 파키스탄에 민주화를 향한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간 무샤라프 군부정권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온 부토 세력간의 화해를 이끌어 내기위해 정치적ㆍ재정적 노력을 지속해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부토 암살이 있기 바로 하루 전인 26일 파키스탄에 3억달러 원조를 의회로부터 승인받았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미국의 대테러리즘 정책에 있어서도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도 이번 테러를 강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이탈리아의 로마노 프로디 총리도 “광적인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바티칸도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이라고 밝혔고, 인도는 이를 “혐오스러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 부토 여사는 누구
이슬람권 첫 女총리… 파키스탄 민주화운동 주도
부토 여사는 파키스탄의 수도 카라치에서 태어나 이슬람권에서 최초로 여성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그녀는 당시 총리로 있던 부친이 군사쿠데타로 실각되고 1979년 처형되자, 부친이 창당한 파키스탄인민당(PPP) 중앙위원이 되어 반정부운동을 주도했다.
1981년 하크 정권에 의해 체포돼 3년여간 옥고를 치른 후 유럽으로 망명, 현지에서 계엄령 철폐와 대통령 하크의 사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후 1986년 4월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2년뒤 대통령 하크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11월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에 취임했다. 취임 후 11년에 걸친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민주화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군부와 야당의 견제로 좌절됐다. 1991년 총선에서 패배, 총리직에서 해임되었으나 이듬해 재기를 노리며 현정권퇴진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주도,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군부정권인 무샤라프 정권이 출범하자 다시 망명길에 오른 그녀는 결국 폭탄 테러로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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