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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쿠바 54년만에 대사관 재개설 했지만… 경제제재 해제 등 관계회복 걸림돌 산적

국기게양식 쿠바 전역 생중계

워싱턴 성대한 기념행사와 달리 아바나 대사관 조용히 업무 시작

美 의회 장악 공화 반대 거세

금수조치 해제·관타나모 폐쇄… 주 쿠바 대사 인준까지 난항

자정을 갓 넘긴 20일(현지시간) 0시1분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밤하늘에 쿠바 국기가 54년 만에 공식 게양됐다. 주미 쿠바대사와 노령의 공산혁명가, 음악가 등 30여명의 쿠바 사절단을 비롯해 500명이 대사관 재개설 기념식에 참석한 가운데 쿠바산 럼주와 칵테일을 마시며 냉전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을 자축했다. 하지만 같은 날 쿠바 수도 아바나의 미 대사관은 성조기 게양 행사 없이 대사도 공석인 채로 공식 업무에 돌입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2년 뒤인 1961년 단절된 양국 국교가 정상화됐지만 미국의 대쿠바 경제제재 해제 등 완전한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19일 CNN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워싱턴DC 쿠바대사관 재개설 기념식은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호세 라몬 카바냐스 주미대사 내정자, 로베르타 제이컵슨 미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특히 대사관의 국기 게양식은 자정임에도 쿠바 국영방송을 통해 쿠바 전역에 생중계됐다. 카바냐스 대사는 "(게양식이 진행되는) 몇초간 우리는 양국의 모든 역사를 느끼면서 축하의 기회를 맞을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대사관 건물은 백악관에서 불과 2.5㎞ 정도 떨어진 16번가에 있다. 1977년 이익대표부가 설치되면서 그동안 영사업무를 담당해왔지만 이번에 대사관으로 승격됐다. 미 국무부는 현재 청사 1층 로비 아트리움에 내걸린 150여개 수교국 국기 사이에 쿠바 국기를 추가했다.

반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둘러싼 미국 내 불협화음을 반영하듯 아바나 주재 미대사관은 공식 행사도 없이 오전부터 조용히 업무를 시작했다. 성조기 게양식 등 공식 행사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방문하는 다음달 말에나 열릴 예정이다. 현재 쿠바와 달리 미국은 주쿠바대사 인준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공화당은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면서 대사관 재개설에 소요되는 일회성 예산까지 승인해주지 않고 있다.

양국 정부도 관계회복에 걸림돌이 산적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최근 "새로운 단계가 시작됐지만 정상화의 길은 길고 복잡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개관식에 이어 이날 오후 케리 장관과 회담하며 경제제재 해제, 미국 관타나모 해군기지 부지 반환,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겨냥한 대(對)쿠바 라디오ㆍTV 방송 중단을 요구할 예정이다. 카스트로 의장도 1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해 경제제재 해제를 거듭 요구한 바 있다.

금수조치 해제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게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이다. 공화당은 관계개선의 선행조건으로 쿠바의 정치ㆍ언론 자유화, 민주주의 도입, 쿠바로 도망친 미국인 범죄자 인도 등을 요구했지만 쿠바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아울러 공산혁명 이후 쿠바가 몰수한 미국인의 재산이나 경제제재에 따른 쿠바의 손실에 대한 보상방안도 남은 이슈다.

쿠바계 이민자 2세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독재정권에 굴복했고 쿠바 내 민주주의자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망명단체인 '쿠바애국연합'의 지도자인 호세 다니엘 페레도 "지난해 12월 양국 관계 정상화 선언 이후 (카스트로 정권이 미국 눈치를 덜 보게 되면서) 정치범에 대한 구금과 구타가 크게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쿠바 반정부단체들은 쿠바대사관의 국기 게양식장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일리애나 로스레티넌(이하 플로리다), 카를로스 커벨로, 마리오 디아즈 발라트 등 쿠바계 하원의원 3인방은 이날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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