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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밤의 부엉이, 낮의 부엉이

지난 겨울 삼청동 부엉이박물관에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해외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세계 각국의 부엉이 관련 조각품과 그림을 모았다는 중년의 여자 관장은 직접 부엉이의 특징을 방문객들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설명의 핵심은 부엉이만큼 영특한 동물이 없다는 것. 알량한 상식에 “낮에는 시체나 다름없는데 무엇이 영특하냐”고 반박했다가 돌아온 그 관장의 답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건 사람의 시각입니다. 부엉이는 밤에 활동하도록 창조됐습니다. 그리스ㆍ로마신화에서는 지혜의 수호자로 표현됩니다. 사람이 아닌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문에 대한 현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번 곱씹어봐야 할 비슷한 내용이 ‘퓨처싱크’라는 책에도 나온다. 외계인 두 명이 지구를 찾아온다. 이들의 임무는 지구의 지배자를 관찰해 보고서를 내는 것. 한달 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써낸다. “지구는 다리가 네 개 달린 자동차가 지배한다. 다리가 둘 달린 인간은 그들의 노예다. 인간은 밤낮으로 일하고 자동차는 주차장이라는 곳에서 어울려 논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둘러싸고 노사 분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ㆍ노조 모두 반발이 심하다. 시행된 지 보름도 채 안 됐는데 누구를 위한 법인지조차 모호해졌고 법을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비등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법을 뜯어고쳐 새롭게 갈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이미 시행된 법을 고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요구된다. 앨빈 토플러는 “기업은 100마일로 달리는데 법은 1마일로 달려 속도의 충돌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법의 허점이다. 보완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기업도 골병이 든다. 법이 잘못됐으면 개선하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 시급한 건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절충이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은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기존 정규직의 임금과 복지수준을 누리는 것. 비정규직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바람이다. 그런데 기업은 경영부담이 급증하고 생산성과 노동의 유연성이 훼손된다고 아우성이다. 일부는 반발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정규직을 외주로 돌리고 있다. 법이 허용하는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노사분규도 그래서 늘고 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보완책이 마련돼도 이런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부담이 다소 늘어나더라도 생산성 확대로 이를 상쇄하는 방법을 찾아야 그게 제대로 된 기업이다. 어렵다고 하소연만 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정규직 역시 마찬가지다. 정규직 수준으로 모든 것을 맞춰주면 좋겠지만 기업 현실이 그렇지 않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기피하는 최우선 이유로 노동유연성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볼 일이다. 임금과 복지 요구 수준을 낮춰 기업 부담을 줄이면서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평생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전공했던 요로 다케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인간의 뇌 속에는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벽, 이름하여 ‘바보의 벽’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벽으로 인해 인간들은 알고 싶지 않은 것, 자신과 반대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버리면서 갈등과 부작용, 그리고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둘러싸고 기업과 노조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상대방의 의견은 아예 차단해버리는 바보의 벽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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