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으로 유명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 옆 한강시민공원. 푸른 잔디밭 주위에 유난히 작은 나무들이 많은 심어져 있었다. 일부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듯 가지 마다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그 앞에 심어진 팻말들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이 숲은 소녀시대 데뷔 6주년을 기념해 만든 ’소녀시대숲‘입니다’ ‘이 숲은 EXO(엑소) D.O.의 22번째 생일을 기념해 팬들의 사랑으로 지어진 ’디오숲‘입니다’….
팬클럽이 변하고 있다. 그냥 달라진 게 아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팬들이 됐다. 예전의 팬클럽은 아이돌이나 연예인에게 고가의 선물 공세를 펴 ‘조공클럽’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아직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 ‘여동생’을 위해 독거노인을 찾아가고 숲을 만든다. 사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집착’이 이제는 사회를 바라보는 ‘공익적 팬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2~3년전부터 있었다. 앨범 발표나 드라마 제작 발표회 때 쌀 화환을 주던 게 대표적. 하지만 지금은 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스타숲’이 좋은 예다. 지난해 8월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인 ‘티파니’ 팬들이 생일을 기념해 여의도 윤중로 옆 330㎡의 땅에 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된 시초다. 이후 ‘엑소숲’ ‘인피니티숲’ ‘소녀시대숲’ ‘디오숲’ ‘소녀시대 숲’ 등이 가세하면서 지금은 총 3400㎡(1,150평)의 부지에 이팝나무, 조팝나무 등 3,800그루가 자라는 작은 숲으로 변신했다.
나무심기만이 아니다. 지난달 5월18일 그룹 빅뱅 멤버인 태양의 팬클럽 ‘너는 태양 나는 달’은 태양의 생일을 맞아 색다른 행사를 가졌다. “5·18 민주화운동 중등용 교과서 제작에 써달라”며 5·18기념재단에 518만원을 기부한 것. 정치권이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로 말싸움을 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망에는 태양 팬클럽의 대한 아주 특별한 생일선물에 ‘개념 있는 선물’ ‘어린 친구들이 이런 걸 생각하다니 기특하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연예인을 따라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배달 봉사(이효리 팬)에 나서는가 하면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을 건립(존박 팬)한 팬클럽도 있다.
팬클럽의 ‘개념 있는’ 변신은 한류를 타고 해외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배우 이민호의 중국 팬클럽 ‘미노즈 차이나(Minoz China)는 중국 내 빈곤 아동을 위해 ’이민호 도서관‘을 세웠고 바이두 민호팬클럽은 유니세프에 1,4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유노윤호의 일본 팬클럽은 지난 2011년 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지역 복구를 위해 7,000만원을 기부한 데 이어 최근 그의 모교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500만원을 내놓았다.
국내 팬클럽이 직접 해외의 숲 조성 사업에 참여하는 사례도 잇따라 아프리카 톤즈의 ’2NE1 숲‘을 비롯, ’신화 숲‘ ’티파니 숲‘ ’동방신기 숲‘ ’슈퍼주니어 숲‘ 등 알려진 것만 10여개를 훌쩍 넘는다.
팬클럽의 이러한 변화는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선물 보다 뜻있는 사회활동으로 스타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자는 뜻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스타숲 조성에 참여한 모 그룹의 10대 팬은 “오빠 이름으로 숲도 만들고 환경도 보호하는 활동이라 참여하게 됐다”며 “많은 돈을 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스타 숲 조성을 주관하는 트리플래닛은 “팬들이 스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등 공적인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성숙한 팬문화로 평가 받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연승 기자 yeonvic@ 이지윤 기자 zhirun@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