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고들 한다. 정보기술(IT)의 획기적 발달이 추동해 전 지구적으로 구축된 인터넷망은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한계를 극복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의 시대는 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거대한 생명체로서보다는 여러 지점을 연결하고 그 실타래를 교차시키는 네트워크로서 경험하는 시기에 있음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근본적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으며 '건축' 또한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한국건축문화대상의 대상작으로 자천(自薦)된 건축 작품들은 문자 그대로 '다양'했다. 펼쳐진 포트폴리오들을 잠시 둘러보고 난 후 심사위원들은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심사의 기준에 대해 우선 논의했다.
같은 땅, 같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경쟁하는 '설계경기'의 심사기준은 구체적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땅,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고 지어진 집으로 경쟁하는 이 상의 심사기준은 어느 정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겠으나 가능한 실질적 비교가 가능한 가치를 설정하려고 노력했다. 논의를 거듭하면서 우리가 합의한 심사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 건물은 주변의 환경, 특히 자연환경과 어떻게(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둘째, 이 건물로 말미암아 새롭게 형성될(된) 사회적 관계는 어떤 것인가.
셋째, 이 건물로 말미암아 일상생활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으며 더불어 이 집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일상생활의 질(質)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넷째, 이 건물에서 실현된 새로운 기술은 어떤 것이며 그것이 건축의 질적 향상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다섯째, 여기에 세워진 건물이 표상하고 있는 세계관 또는 정신적 표상은 어떤 것이며 그것은 어떤 형상으로 구현되었는가. 특히 그것이 민족적인 기념비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인가, 아니면 코스모폴리탄적 장소로서의 성격을 갖는가.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가치로서 개연성을 누구나 인정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이 건물에 마련되어 있는가.
물론 이러한 기준들은 하나의 '건물'에 총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 기준들 간의 상호관계는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2014년의 대상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특히 민간부문에 탁월한 작품이 많아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으며 이 분야에 대상과 본상 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5박6일 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심사하는 동안 심사위원들 간에 있었던 즐거운 논쟁 몇 가지는 꼭 기록에 남기고 싶다.
첫째, 서두에서 밝힌 이 시대에 부응하는 '거주'의 형식에 관한 논의였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크게 바뀌고 있는 이 시대에 '거주'는 단순히 주택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에 따라 '주택'뿐 아니라 모든 건물에서 어떤 새로운 양상의 거주가 일어나고 있으며, 여기에 우리의 건축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였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랜드마크'에 대한 논쟁이었다. 아직도 우리는 높고 큰 거대함과 특별한 형태를 가지는 상징성에 대해 집착하고 있고, 이는 관(官)에서 행하는 건물들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다. 집중화 시대를 넘어 분산의 시대, 다원화 시대, 탈중심의 시대에 서로간의 차이가 존중되는 사회에서 랜드마크는 아직도 유효한가. 그리고 스펙터클의 사회가 우리에게 수동적인 자세만을 강요한다는 드 기브르의 비판에 동의한다면 이제 랜드마크에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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