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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말의 품격


나는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아버지에게는 존댓말을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반말을 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인 줄 알지 못했고 누구도 나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 어느 가을날 마당에서 일을 하시던 이웃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다 큰 자식이 버릇없이 엄마에게 반말을 한다는 지적을 받고서야 어머니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반말을 하다 존댓말을 하려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결혼 후 아내는 나에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하고 나는 아내에게 반말을 했다. 아이들은 유치원을 다니면서 존댓말을 배우고 쓰게 됐지만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점차 반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중학생이 돼서는 반말이 일상화됐다. 뒤늦게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라고 가르쳤지만 하루 이틀 어색하게 존댓말을 하다가는 이내 반말로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고심 끝에 나와 아내는 서로 존댓말을 쓰기로 했다. 오랫동안 반말을 해오던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려니 처음에는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자연스러워졌다. 그러자 아이들도 점차 존댓말을 하게 됐다.

자연과학자 만프레트 바우어와 구드룬 치글러의 공저 '인류의 오디세이'에 의하면 개코원숭이나 침팬지는 '털 고르기'로 상호 간의 결속을 유지하는데 평균적인 무리의 규모는 50~60마리 정도라고 한다. 이에 비해 사람은 말을 사용해 보다 효율적으로 정서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150명 정도까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말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말이 없으면 분위기는 서먹해지고 그런 만남은 지속되기 어렵다. 말에는 지식과 정보만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담기기 때문일 것이다.



반말에는 친근함과 편안함 그리고 애정의 마음이 담긴다. 그것이 친구 간이나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반말을 하던 선배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면 거리감이 생기고 무슨 섭섭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반말은 자칫 상대방을 경시하는 마음이나 무례함으로 변하기 쉽다. 한편 존댓말에는 존경과 조심스러운 마음이 담긴다. 그래서 우리는 윗사람이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쓴다. 조심스러운 마음은 불편함과 어색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존댓말도 계속하다 보면 불편함과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근함과 편안함 그리고 애정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는 태도는 습관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간 갈고닦아야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힐 수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말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요즘 들어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면서 지도층에서 오가는 말들이 점점 거칠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말이 거칠어지면 말하는 사람의 품격이 떨어지고 인간관계도 불편해지기 쉽다. 특히 지도층의 말은 우리 사회의 품격과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언제쯤 품위 있게 말하는 지도층을 가질 수 있을까. 새삼 말의 품격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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