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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2월14일] <1319> 아스베스토스 파업


1949년 2월14일 밤, 캐나다 퀘벡주 남부 아스베스토스. 4개 석면 광산의 광부들이 파업과 가두행진에 나섰다. 요구조건은 작업장 분진 제거와 급여 인상 및 휴일수당 지급. 파업은 현지 언론과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받았다. 요구가 1945년 제정된 노동법에 적시된 내용인데다 미국인 또는 영국계이던 광산주들에 대한 프랑스계의 반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광산주들은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요구를 한마디로 물리쳤다. 프랑스계에 대한 억압적 통치로 악명 높았던 당시 퀘벡주 총리는 ‘요구가 합법적이라도 파업은 불법’이라며 파업분쇄에 폭력배까지 동원한 광산주들의 손을 들어줘 더 큰 반발을 낳았다. 결국 광부 5,0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이 5월 초까지 이어진 끝에 노사 양측이 피해를 입었다. 급여는 소폭 올랐지만 수백명의 광부가 직장을 잃었다. 아스베스토스 파업의 종결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프랑스계 주민들이 파업을 계기로 단합하기 시작해 피 흘리지 않는 독립운동인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졌다. 퀘벡주 분리독립운동은 두 차례 주민투표에서 부결됐으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다. 퀘벡주 독립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독립시 경제난 심화 가능성을 우려하는데다 ‘복합문화’라는 틀 속에서 번영할 수 있다는 일말의 믿음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동일한 지위를 부여한 공용어법(1969년)을 제정하는 등 캐나다가 자랑하는 복합문화의 씨앗을 뿌린 주역인 트뤼도 전 총리도 아스베스토스 파업 당시 노동자 편에 섰던 변호사 출신이다. 트뤼도(2000년 사망)가 역대 캐나다 총리 중 가장 존경 받는 인물로 손꼽히는 이유도 파업에서 시작된 분열 위기의 한복판에서 양보와 화합을 이끌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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