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라니… 세종시 참담한 실상 '충격'
장관이 직원집에 세들고 과외교사는 외지서 원정■ 세종시 생활 천태만상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사진 아래) 세종청사로 첫 출근하는 공무원들 /서울경제DB
아파트 디지털화 지나쳐… 노인에겐 창살없는 감옥
공사장서 하루종일 먼지 방진기능 마스크 불티
지역 중산층 대거 이주… 구도심 슬럼화 우려도
올해 초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 아파트로 이사온 자영업자 이재호(가명)씨는 수년간 모셔온 노모를 다른 지역의 형제 집으로 보내야 했다. 첫마을 아파트가 과도하게 디지털화된 탓이었다. 노모는 이씨 부부가 장사하러 나가고 나면 디지털 설비를 다루지 못해 문밖 출입은커녕 집안에서 전등을 켜고 쓰레기를 버리거나 싱크대 수돗물 트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얼마 전에는 가게 단장하느라 새벽에 들어왔더니 어머님이 보일러 조절기를 잘못 눌러 끄시고는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 계시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주요 부처 이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세종시 생활의 단면이다. 미래형 스마트 시티를 만들겠다는 이상이 지나쳐 노인들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고 말았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도 세종시 입주 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사장에서 하루 종일 먼지가 날려오고 약국과 대형 병원이 부족하다 보니 건강에 민감한 영유아를 키우기가 수월하지 않다. 학원시설도 미비해 학령기 자녀를 둔 가정은 성적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이 같은 생활환경은 천태만상의 생활사를 연출한다. 우선 과외교사들의 원정이 줄을 잇고 있다. 한솔동 세종명품공인의 한 관계자는 "현재는 단지 인근에 학원이 적다 보니 과외 수요를 노리고 외지에서 원정을 오는 강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겨울철이라 약국 등에는 마스크를 찾는 내방객들이 많은데 특히 세종시 일대 약국에는 일반 마스크보다는 방진 기능을 겸비한 마스크가 더 잘 팔린다고 한다. 공사장 먼지 때문이다. 세종시 일대 공사장에는 제3국 출신 노동자도 많아서 출퇴근길 인근을 지나는 여성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몸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심도 일고 있다.
그럼에도 충남 지역 구도심에서 세종시 일대로 이주하려는 학부모들의 수요는 이어지고 있다. 세종시 지역 학교에서 새로운 개념의 '스마트 교육 프로그램'이 실시된다는 기대감 덕분이다. 반면 서울∙경기권에 거주해온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세종시로 거주지를 완전히 옮기는 것을 망설이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수도권 인구 분산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을 기대했던 세종시가 도리어 지방 내 불균형만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충남의 구도심은 세종시로 중산층 인구를 빼앗기면서 슬럼화하고 서울에서의 인구이동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경기 지역에서 거주 중인 공무원들 중에서는 근무 부처의 세종시 이주 후 '한 가족 3~4살림'을 각오한다는 경우도 적잖다. 한 중앙부처 간부인 A씨는 자녀 둘을 두고 있는데 한 자녀는 서울의 자가에서 모친과 거주하고 다른 자녀는 해외 유학, A씨 본인은 세종시 인근에서 원룸 전세로 살아야 할 판이다. 장관급도 최소 두 집 살림이 불가피한데 세종시에서 관사로 쓸만한 주택 매물이 많이 않다는 게 문제다.
그러다 보니 C부처 직원 D씨는 자신이 분양 받은 첫마을 아파트의 한 복층형 아파트를 관사로 세를 놓아 자신이 모시는 장관을 세입자로 두는 웃지 못할 촌극마저 겪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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