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에 정통한 페페 세레르(46ㆍ사진) 대교바르셀로나 축구학교 총감독의 칼럼을 연재한다. 세레르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을 나와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ㆍ발렌시아ㆍ비야레알에서 측면 수비수로 활약했다. 은퇴 뒤에는 발렌시아 2군 감독으로 지내다 2006년부터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스카우트로 활약했고 지난해 경기도 시흥의 대교바르셀로나 축구학교에 파견돼 총감독으로 한국의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있다. <편집자 주>
라 마시아(바르셀로나 유소년팀 교육기관) 시절 신입 회원이 들어올 때만큼 반갑고 즐거운 시간은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포지션에서 뛰는지, 어떤 스타일의 축구선수인지 모든 게 궁금했다. 라 마시아에 페프 과르디올라가 처음 들어온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보자마자 모두가 하는 말은 "뭐야, 완전 애잖아"였다. 그랬다. 그는 열한 살짜리 꼬마였다. 하지만 꼬마의 눈빛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방금 부모의 품을 떠나선지 조금 슬퍼 보였지만 특별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날 밤 라 마시아에서는 축구 선수로서도 대단했지만(과르디올라는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바르셀로나 1군에서 미드필더로 263경기에 출전) 축구 감독으로서 명장 그 이상으로 기억될 꼬마가 설레는 첫날밤을 보냈다. 물론 라 마시아 신입 회원들의 전통인 베개 싸움을 한바탕 치른 뒤였다. 이튿날부터 나는 꼬마의 특별함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튀었다. 탁구와 여러 종류의 게임, 그리고 론도(1~2명이 중간에서 술래를 맡고 주변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볼을 돌리는 게임)에서도 특출했다. 그 어린 나이에 볼을 그냥 터치하는 게 아니라 쓰다듬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과르디올라가 술래를 할 때가 있었는데 그건 그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형들의 압박에 못 이겨서였다. 어쨌든 그는 다이아몬드 그 자체였다.
과르디올라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인간이다. 특히 감독으로서의 그는 단순히 기술을 지도한 것이 아니라 절제와 진지한 태도, 그리고 다른 이에 대한 존중을 축구를 통해 전파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과시하지 않았다. 자신과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을 통해 존중이라는 가치를 실현해왔다. 그는 선수들을 신중하게 다룰 줄 알며 좋을 때뿐 아니라 그렇지 않을 때도 과감하게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았다. 이번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좌절 뒤에도 과르디올라는 첼시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탓하기보다 패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상대에게 축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 사의를 표명했다. 바르셀로나 감독을 맡은 4시즌 동안 무려 72%가 넘는 승률을 남기고 말이다. 그는 모든 힘과 에너지를 바닥까지 짜내고 신사처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도 안 것이다.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페프.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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